“채권금융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대응으로는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시장의 불확실성만 확대될 뿐이죠. 은행도 기업도 구조조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답은 공적자금밖에 없습니다.”  김상조(47·사진)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공적자금 조성을 주장했다.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소장은 “정부가 현재 상황을 위기라고 인정하는 것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성장률에 집착한 정책에 치우친 나머지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치는 구조조정에 나서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중심의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재무구조개선지원단’을 금융감독원 산하에 설치했다. 또 정부가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구조조정기금’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조성했고, 한국은행·산업은행이 출자하는 형식으로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했다.

“자율 가장한 관치”

“정부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방법에서는 시장의 기능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빠져 나갑니다. 누가 봐도 아는 공적자금 만들어 놓고 그것이 공적자금 아니라고 말합니다.”  김 소장은 구조조정기금과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유사 공적자금’으로, 정부의 구조조정 방식은 유사 공적자금을 이용한 ‘관치금융’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정부가 유사 공적자금을 이용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적자금에 대한 관련규정은 현행 ‘예금보험공사법’과 폐기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나와 있다.

두 법에는 공적자금을 사용할 경우 ‘최소비용의 원칙’을 적용하고, 국회 보고와 감사원 감사를 받도록 했다. 김 소장은 “유사 공적자금은 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며 “민간 자율을 가장한 관치 구조조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저하는 이유를 성장률을 고집하는 정책으로 원인을 돌렸다. 또 외환위기 시기와는 달라진 경제위기 전이방식에서도 원인을 찾았다. 자영업·중소기업에서 불거지고 있는 현재의 위기는 외환위기에 비해 사회적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분명이 밑에서부터 썩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죠. 그런데 ‘이거 큰일 났구나’라고 하는 충격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도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도 위기상황을 믿고 싶지 않는 국면인 거죠.”

11년 전 교훈 되새겨야

김 소장은 지난해말에 43개 대기업집단(주채무계열) 가운데 6곳이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MOU)를 체결했다고 소개했다. 김 소장은 또 “4월 중으로 두 자리 수 이상의 대기업집단에서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며 “수출마저 막힌 상황에서 외환위기보다 심각하고 장기적인 위기가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소장은 “정부의 구조조정 태도는 외환위기 과정을 답습하고 있다”며 “11년 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외환위기 과정에서 법·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고 “유사한 위기가 미래에도 도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급박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족했던 △노조와의 협의틀 △대량실업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 △공적자금에 대한 법적 근거 구체화 등은 현재의 과제로 제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 MB노믹스는 결코 양립하지 못합니다. 경제관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서지 않고 있는 거죠. 당장 공적자금 조성에 필요한 법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2009년 3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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