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여·31)씨가 사회과목 강사로 일하는 서울 관악구 소재 한 보습학원은 올 들어 강사들의 월급을 1인당 10만원씩 삭감했다.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학부모들이 지난달부터 수강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시작한 것도 학원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세금이나 수수료를 떼이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두 번, 세 번은 신용카드로 결제하다 결국은 자녀들의 수강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씨는 “강남이나 목동의 잘나가던 학원들이 문을 닫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만일을 대비해 학원강사 구직사이트를 뒤져 보지만 자리가 확 줄었다”고 말했다.

‘불패신화’로 불리던 학원가도 불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강남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폐업 신고한 학원은 13곳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학원전문 웹사이트인 훈장마을에는 올해 1월에만 학원매물이 140여건이나 나왔다. 전년 동기 대비 채용공고는 20% 줄었고 강사 이력서는 40%가 늘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부금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봉사가 늘고 있는 것도 경제불황으로 나타난 새로운 광경이다.

사단법인 연탄나누기 사랑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후원회에 가입한 기업과 시민은 3배 정도 늘었고 그만큼 올 겨울 불우이웃 연탄배달 등의 자원봉사자 수도 증가했다. 반면 기부금은 20% 정도 줄었다. 경기불황으로 돈보다는 몸으로 어려운 이웃돕기에 나선 것이다. 본부 관계자는 “기부금은 줄어드는데 봉사자는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은 깨고 발길은 슈퍼마켓으로

외국계 생명보험회사 영업사원인 김태호(33·경기도 성남시)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해약건수가 늘어난 데다 계약건수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오는 4월 팀장 승진을 위해 면접을 앞두고 기준 이상의 상품예약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김씨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만약 팀장 승진면접에서 탈락하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제위기가 닥친 뒤 잘 팔리는 보험상품의 종류도 달라졌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노후를 준비하는 저축성 보험보다는 건강 악화 등에 대비하는 보장성 보험이 상대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

고객들이 투자보다는 만일을 대비하는 심리가 높기 때문이다. 의료실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실손보험 상품 비중이 높아졌다. 불황 때는 보험을 깬다는 통설은 이미 입증됐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4~9월 사이 1년 이상 유지된 보험계약률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포인트 떨어졌다. 카드대란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신규 계약률도 확 줄었다. 최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영업 중인 22개 생보사들의 지난해 10월 기준 최초 납입 보험료 액수는 4조1천915억원으로 전년 동기 6조89억원 대비 30.2%나 줄었다. 서민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대형할인마트로 가는 발길도 줄어들고 있다. 대신 자동차 없이 걸어가 기름을 아낄 수 있고 충동구매 가능성이 적은 슈퍼마켓이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원 조아무개(35·인천 남동구)씨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가족나들이처럼 드나들었던 대형할인마트 출입을 중단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해 왔던 아내가 경기불황 여파로 2개월 전부터 일을 못해 소득도 줄었기 때문이다. 자녀 둘에 주택담보대출까지 남아 있는 조씨로서는 긴축 재정을 펼 수밖에 없다. 그는 “할인마트에서 생필품도 구입하고 쇼핑도 했지만 이제는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가끔 가는 것 외에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는 마음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할인마트 3사의 지난해 3분기 매출 신장률은 1.8%로 같은해 1분기 3.1%보다 대폭 하락했다. 올해의 전망도 어둡다.

결혼도 자동차 구입도 나중에

지난해 10월 결혼한 정아무개(34·서울 천연동)씨는 올해 설 연휴에는 자가용을 마련해 폼 나게 고향에 내려가자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각종 선물꾸러미와 짐가방을 양손에 들고 열차를 타고 고향인 경상북도 포항에 내려갔다가 올라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연말 자동차회사들이 각종 할인 상품을 내 놓고 정부는 개별소비세 등 세금을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경기 위축으로 소비심리까지 움츠러들었다는 정씨는 “결혼 때문에 늘어난 빚에다가 자동차 할부금까지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기불황으로 어려워진 자동차 회사들이 더 좋은 할인 상품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다.

지난해 연말 완성자동차회사들의 휴업과 감산에 나타났듯이 경제가 어려울 때 자동차 구입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한 전체 신차는 124만6천86대로, 2007년 연간 신규등록 대수인 125만8천539대보다 1만2천453대가 줄었다. 신규등록 대수가 감소한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신차 구입이 줄어든 만큼 폐차 빈도도 줄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폐차와 도난·수출 등을 포함해 자진폐차 대수는 지난해 7월 9만43대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8월 이후에는 월 평균 8만대 밑으로 뚝 떨어졌다. 반면 98년 외환위기 때도 인기를 끌었던 경차 선호도는 다시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제10차 에너지총조사에 따르면 2005년 3.5%에 그쳤던 경차 구입 선호도가 2008년에는 7.7%로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경제위기에 따른 펀드 판토막 등의 영향을 받아 혼인건수도 줄었다는 통계청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혼인건수는 2만7천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6%인 6만600건이 감소했다. 11월은 결혼 성수기로 통하는데도 2004년 이후 역대 11월 중 혼인건수가 가장 적었다. 이런 현상은 결혼·예식업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용산 C웨딩홀의 경우 다른 예식장보다 수십만원 정도 비용이 저렴한데도 예식장이 비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웨딩홀 관계자는 “지금이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년이면 이미 꽉 찼을 봄철 계약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2월2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