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구역을 통폐합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뒤 지금까지 5개의 관련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표 참조>
지난 3월에는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나라당은 내년 지방선거까지 개편을 마무리한 뒤 통폐합된 지방구역에 따라 선거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국공무원노조와 경실련이 19일 공동주최한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안 대토론회’에 참가한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지방행정체제 개편작업이 지방자치만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풀뿌리 정치 말살할수도”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인 이기우 인하대 교수(법대)는 권 의원 등이 제출한 5개 법안에 대해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초자치의 폐지나 포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 의원 법안을 포함한 4개 법안이 도폐지와 시·군 통합을 주 내용으로 하는 반면, 이 의원 법안은 시·도 통합과 시·군 행정구역 조정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명수 의원 법안은 광역시와 도의 통합을 통해 정치적인 이유로 분할된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역 역량 강화를 위한 법안이기 때문에 지역균형발전에도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다른 4개 법안의 경우 도를 폐지해 중앙집권을 가중시키고 기초지방자치 폐지로 주민불편과 지역공동체약화를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행정학과)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강 교수는 “시·군 통합은 현재의 시·군을 출장소나 구청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합으로 넓어진 기초자치단체 구역 때문에 쓰레기처리·보육시설·노인시설·소규모 체육시설 등의 설치와 관리를 위해 시·군 청사에 출장소를 개설해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도를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도가 수행하던 광역행정 기능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면서 중앙권력만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 교수는 “업무가 많아져 중앙정부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역단체는 통합해야”

따라서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자제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강 교수는 “지방행정구역 개편은 정치권이 임의로 시한을 정해 놓고 하향식으로 추진할 주제가 아니다”며 “꾸준하게 논의를 전개하고 공감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도를 폐지해 여러 개로 쪼개는 방안보다는 현재의 광역자치단체를 통합해 넓히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비슷한 의미에서 지자체의 중복된 기능을 맡고 있는 특별지방행정기관의 기능을 시·도로 이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희우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현재 지방행정체제의 문제점은 지방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지자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체제 개편을 위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5월20일>

정치인들의 전유물된 지방행정체제 개편
지방행정체제 개편논의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처음 언급된 것은 95년. 당시 민자당 초·재선 의원 16명이 서울의 한 음식점에 모여 최초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체제 개편을 논의했다. 이들은 “현 행정체제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중앙집권시대의 유물”이라며 도 폐지를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지방선거 연기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제기되는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논의라는 점도 비슷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주장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주로 정략적인 목적으로 진행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전공노 관계자는 “지방행정체제 개편논의는 중앙의 정치권력이 지방의 정치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제기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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