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산 과자 봉지에서 기준치의 5배가 넘는 톨루엔(Toluene)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포장지의 인쇄잉크 용매로 사용되는 톨루엔이 포장지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식품에서 톨루엔이 검출된 것은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95년에도 과자와 라면봉지에서 톨루엔이 검출됐다. 톨루엔은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유기용제다.
톨루엔은 기름을 녹이는 특성이 있어 페인트나 시너·접착제 등의 용제나 원료로 많이 사용된다. 톨루엔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취급하는 노동자들은 호흡기와 피부로 흡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기름때 제거에 톨루엔 함유 시너 사용

도장작업을 오래한 신수한(가명·51)씨는 톨루엔에 장기간 노출돼 소뇌가 손상됐다. 그는 88년부터 99년까지 경기도 안산의 ‘백은기계공업’(가칭)에서 도장작업을 했다. 백은기계공업은 사진인쇄용 기계를 제조하는 회사로 73명의 노동자가 일했다.
신씨는 입사 후부터 도장작업을 했다. 도장할 표면을 연마하는 작업과 시너를 이용해 기름을 제거하는 ‘탈지작업’, 표면의 흠집을 메우는 작업, 표면에 녹이 슬지 않도록 ‘광명단(망간을 산화시켜 만든 무광색 물질)’을 바르는 ‘하도 도장작업’, 그리고 페인트칠을 하는 ‘상도 도장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 과정에 참여해 일했다. 이 과정에서 표면의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물질이 시너였다. 시너에는 톨루엔이 70%정도 함유돼 있었다.

환기장치 있어도 가동 안해

작업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진행됐다. 잔업이 있을 경우 밤 10시30분까지, 철야작업을 할 때는 새벽 2시30분까지 일했다. 회사가 동남아로 인쇄기계를 수출하면서부터 작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작업시간이 월 100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신씨가 일하던 도장작업 현장에는 환기장치가 설치돼 있었지만 가동은 되지 않았다. 작업을 할 때는 방독마스크가 아닌 일회용 유기용제 마스크를 착용했다. 보호장갑과 보호의는 없었다. 때문에 톨루엔이 신씨의 호흡기와 피부로 흡수됐다.
어느날부터인가 신씨는 동료들로부터 업무시간에 술을 먹었냐는 소리를 들었다. 숨을 쉴 대마다 술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그는 과로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런 증상은 톨루엔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였지만 그 때까지 신씨는 톨루엔에 노출됐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도장작업 10년째, 소뇌 손상 진단받아

신씨가 도장작업을 한 지 10년째되던 98년 9월3일. 평소와 다름없이 잔업을 하던 그는 오후 7시30분쯤 페인트 도색작업을 한 후 휴식시간을 이용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를 눌렀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동료에게 전달하려는 순간 신씨는 오른손 마비증세와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도 심하게 아팠다.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바로 종합병원에 입원한 신씨는 정신기능장해와 보행장애·기억장해·언어장해 등의 증상을 보였다. 소뇌가 손상된 것이다. 평소 특별한 질병이 없었던 신씨의 뇌손상은 10년간 도장작업을 하면서 노출된 톨루엔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널리 쓰이는 유기용제, 톨루엔
톨루엔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무색 투명한 휘발성 액체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유기용제 중 하나다. 화학과 고무·페인트·제약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시너와 잉크·향수·염료·온도계 등에 용제 또는 원료로 사용된다. 톨루엔은 페인트나 염료·살충제 등을 취급하는 공정과 화학물질·인조고무제조·종이 코팅·자동차나 항공기 연료 취급 공정에서 노출될 수 있다.
톨루엔은 주로 호흡기를 통해 흡수된다. 액체나 가스 상태면 피부로도 흡수된다. 단기간에 고농도로 노출되면 중추신경계의 기능이 저하되고 피로와 두통·감각이상과 함께 반사기능이 느려진다. 신경정신과적 수행능력이 저하되고 시력저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만성적으로 노출된 사람에게는 심근병과 저칼륨혈증(혈청 속의 칼륨이 정상치 이하인 상태)·신세뇨관성산증·신장병 등이 생긴다. 피부에 노출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지방이 감소해 탈지방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다. 색을 혼동하는 색각기능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09년 5월27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