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을 썼다. 이 책은 자살이라는 현상을 심리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이론서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살을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
이기적 자살은 사회와 개인 간의 통합이 약화될 때, 반대로 이타적 자살은 자신이 속한 사회 또는 집단에 지나치게 밀착했을 때 발생한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가 각 개인이 만족할 만한 조건이나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해 일어나는 복합적인 결과다. 뒤르켐은 “자살은 도와 달라는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너무 늦은…”이라고 썼는데, ‘자살의 원인은 개인과 사회 간 통합 정도에 있다’는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자살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회사에서 ‘왕따’로 괴로워하다 자살

99년 김포시에 위치한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회사에 입사한 이아무개씨는 2000년 9월10일 강화도의 자택 옥상 난간에 목을 매 자살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자살 직전 회사 내 왕따로 괴로워했고, 자신이 원치 않는 부서로 또 다시 전보 발령이 나 극도로 불안한 증상을 보였다며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씨 어머니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씨는 같은 공정(CDMA 휴대폰 가공)의 직원들과 사소한 문제로 자주 싸우고, 퇴근시간에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동료를 붙잡아 큰소리로 야단을 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동료들과 마찰이 있은 뒤에는 이씨의 어머니가 근무시간에 해당 동료에게 전화해 욕설을 퍼부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갈등이 점점 깊어지자 2000년 4월 회사는 이씨를 MP3 다운로드 공정으로 전보조치했다가 MP3 포장 공정으로 다시 전보했다. 전환배치한 부서에서도 이씨가 사소한 문제로 직원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모습이 자주 발생하자 회사는 그해 6월에도 두 차례 전보조치했다. 그럼에도 1주일에 1회 간격으로 이씨와 동료 간 싸움이 발생하자 9월 회사는 이씨를 휴대폰 포장 공정으로 전보조치했다. 그러자 이씨는 ‘불공평한 대우’라며 ‘철회하지 않을 경우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회사는 이씨의 요구를 회사가 거부했고, 이씨는 자신의 방에서 식음을 전폐하다 자살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 어머니의 유족보상 및 장의비 신청을 불승인 판정했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는 증거가 없어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의 어머니는 소송을 제기했다.

자살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

이 사건의 원고는 이씨의 어머니이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대법원은 “이씨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부서로 전보 발령이 나자, 집단 따돌림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오해한 나머지 극도의 좌절감‧흥분‧우울감 등의 증세를 보이면서 자살에 이르렀다”며 “사망 전 우울증 등의 정신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치료약을 복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실 자살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가 매우 까다롭다. 법원은 자살이 △업무상 질병의 악화로 말미암은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에서 이루어졌거나 △과중한 업무의 수행으로 누적된 과로 또는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심화돼 정신병적 증상이 발현됨으로써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이뤄져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때 업무상재해로 판단한다. 물론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쪽에 있다. (대법원 1993년 12월14일 선고 93누9392판결, 2001년 4월13일 선고 2001두915 판결 등 참조)
특히 자살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망인이 생전에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 여부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신과 치료 기록이 없으면 대체로 자살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4년 3월11일 2004두60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서울고법 2003년 12월12일 선고 2003누1419 판결
서울행법 2002년 12월12일 선고 2001구52458 판결

 <2009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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