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총기사용은 드물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업무상재해 역시 총상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의 신분이 ‘선원’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선원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마찬가지다. 대신 선원은 선원법에 따라 근로조건을 보장받는다. 선원의 업무상재해도 선박소유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 대개 선박업체는 민간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선원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계약에 가입하고 있다. 만약 해적 출몰지역에서 선장이 불법소지한 총을 오발사해 선원이 총상을 당했다면 업무상재해로 볼 수 있을까.

선장이 잘못 쏜 총알이 정강이뼈 관통

2001년 5월29일. 2등 항해사 선원 ㄱ씨가 탄 배 한척은 아프리카 기니국 영해를 지나던 중이었다. 해적 출몰이 잦기로 유명한 곳에다 어업허가도 받지 않아 선박 안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조타실에서 조타업무를 보고 있던 ㄱ씨 옆에는 선장 ㄴ씨가 M16을 꺼내 손질하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총기소지를 허가받지 않았으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해적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했다. 그때 기니국 해양경비대가 불법어업행위를 발견하고 추격해 왔다. 그 순간 ‘빵’하고 총알이 발사됐다. 선장이 쏜 총알은 조타석에 있던 ㄱ씨의 정강이뼈를 뚫고 나갔다. 선장 ㄴ씨와 선박소유회사는 불법 영해침범과 총기소지 사실을 덮기 위해 선원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사에 거짓으로 보고했다. 어로작업 중에 그물에 연결된 와이어로프가 터지는 바람에 ㄴ씨가 발목부근 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입었다고 한 것이다.
보험회사는 보고내용에 따라 ㄱ씨에게 치료비 4천15만과 재해보상 합의금 3천200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사고조사 과정에서 거짓이 들통 나자, 보험회사는 약관에 따라 보상에서 제외되는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라고 주장하며 선박회사와 선장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불법소지 총기 오발사고도 업무상재해

이 사건의 원고는 ㄷ보험회사다. 피고는 선박회사와 사장 ㄹ씨·선장 ㄴ씨다. 부산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면서도, 불법행위로 보험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사고를 당한 ㄱ씨에게 피고들이 연대해 7천305만원을 보상하라고 밝혔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해적 출몰이 빈번하고 피랍사고가 잦은 지역에서 조업하는 선박의 선장으로서 안전을 위한 자위수단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 이러한 지역에서 허가받지 않은 총기를 소지한 것은 중대한 법령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ㄱ씨의 사고는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선박회사와 선장이 공동으로 불법어업행위를 하다가 발생한 사고다. 선박회사는 치료비지급채무를 피하기 위해 보험회사에 허위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보상금을 청구했으므로 이에 대한 보험회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각각 다른 판단

이 사건에서 나타난 불법행위는 3가지다. 일단 법원은 허가받지 않은 총기소지는 ‘중대한 법령위반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불법어업행위와 사고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선장 ㄱ씨의 불법 총기소지에 대해서 법원은 선장 역시 선박회사로부터 고용된 노동자에 해당하며, 위험지역에서의 자위수단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봤다. 반면 불법어업과 보험사기행위에 대해서는 선박회사와 선장이 공동모의해 보험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피고들에게 공동으로 물린 것이다.

<관련 판례>
부산지방법원 2008년9월18일 판결 2007가단162753
부산지방법원 2009년4월8일 판결 2008나18502 손해배상(기)
 
<2009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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