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동판매기의 원리. 뭐를 뽑을까 확인한다. 가격대· 종류· 일단 정해지면 동전을 넣는다. 다음,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생각한 것을 누른다. 그리고 1~2초 후 자판기의 구강으로 손을 집어넣어 상품을 꺼낸다.
자, 이 원리를 응용해 보자. 골치 아픈 사건이 있다. 가격대·종류 등을 고려해 판사에게 사건을 넘긴다. 그리고 재판중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오면 재판 시작한다. 원고와 피고는 생각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몇 달, 혹은 몇 년 후 판결문을 손에 넣게 된다.

2. 요즘 법원, 판사들 힘들겠다. 대법관이 재판개입 했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 사건배당을 어떻게 했건, 위헌심판제청이 어찌 됐든 간에, 윗선에서 까라면 까야 되는 알밤법칙. 이젠 사법부에선 안 먹히나 봐. 그 이유인고 하니 “젊은 좌파 판사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라는 삐라가, 인터넷에선 애국 누리꾼들이 소위 ‘좌파 파르티잔, ‘좌빨’ 작위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법부 인사들을 지목하고 제보에 나서고 있으니. 실로 비통하도다. 나라의 안보가 이렇게 뻥 뚫려 있었다니. 그게 또 사법부라니. 그 동안 국정원은 왜 이 왕건이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오호 통재라.

3. 가끔 자판기에 동전이 걸린다. 해결방법, 통상 손이나 발로 약 2~3회 정도 가격을 하면 자판기 소화불량이 해소된다. 작금의 사태도 마찬가지. 원리는 같다. 근데, 판결이 나오기 까지 뭔가 걸려 있어 몇 대 꽝꽝 쳤는데, 어라, 왜 안 나와. 약발이 안 듣는데. 약한가? 그건 좀 아닌 거 같고. 이 고장의 원인은 뭔가. 그럼 좌파 판사? 삐라와 제보가 사실이란 말인가. 정녕 이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4. 이 사건, 본지 이 꼭지에서 십계명처럼 다뤘던 ‘근로계약 만료로 인한 해고사건’이다. 말머리를 장황하게 늘어뜨린 건 꼭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어서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나라의 안보와 구국의 심정으로 과감히 필자가 사법부의 ‘좌빨’을 검증하는 일선에 서서 본 판례 또한 부검을 실시하고자 한다.

이 사건, 병원측이 병원에 고용된 약사를 자르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이 병원에선 모든 직원이 1년 계약을 체결하면 스트레이트로 쭉 계약이 갱신되었단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문직종 특히, 약사들의 경우 아니꼬우면 아쉬울 거 없다, 이런 태도로 이직이 잦아 약사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거다. 어찌 됐든 간에 매년 계약이 갱신된 거니까, 계약만료일에 맞춰 나가라고 한 건 문제없다는 말씀이겠다. 게다가 이 약사의 의약품 조제실수, 이건 환자 생명직결 사항. 행여 야채인간이나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상조회사 서비스를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받을 수도 있는 일. 봐주기는 곤란하고. 웬걸, 병원에서 지각까지? 또한 재고 확인하랬더니, 시간 없고 사람 없다? 무슨 배짱이냐. 결국 병원측, 약사 가운 강제탈의, 불가피했다는 얘기.

5. 자, 여기서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을 소개해 본다. 어떤 판결을 내릴지 예상해 보시라.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제13부(정형식·장찬·허이훈). 이 팀은 최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욕도 어지간히 비벼 드신 걸로 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집행정지신청 또한 ‘출국을 못하게 된다고 해서 최 대표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하는 용단을 보이셨다.

최근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뉴스9’에 대한 주의조치 처분이 부당하다는 방송제재 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도 ‘KBS가 자사를 옹호하는 정치권이나 단체의 입장만 중점 보도하고 반대 견해는 거의 전하지 않았다’고 기각판결을 내렸다.

마지막 굳히기 하나. 몇 년 전이기는 하지만 정형식 부장판사가 형사부, 그것도 형사 제13부에 계실 때 북한에 몰래 다녀와 인터넷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간증수기를 올린 민주노동당 당원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쯤이면 대충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되시나?

6. 서울행정법원 제13부 판사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판단했다. 1년 계약이 형식에 불과한 것이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이 계속 연장되었기 때문에 일단 계약직이 아니란다. 게다가 이 약사가 국소마취제 처방을 잘못하는 등 의약품 조제에 있어서도 실수가 잦았고, 의료사고도 생길 수 있었다는 병원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거 불충분일테고. 의약품 재고지시를 인원과 시간부족을 이유로 거부한 것도 환자치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출근시간에 있어서도 오전 10시까지 출근인데, 자주 지각을 했다는 건 인정하면서, 업무에 차질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측의 해고가 정당하지 않다, 결론이 이렇다. 약사, 승소. 조금 실망스러운가? 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7. 판결문 자판기에 문제가 있다며, 원인을 좌파 판사들로 지목하는 발상, 놀랍다. 더 놀라운 발전은 친북과 좌파를 분리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북, 쓰고는 싶어도 명예훼손 걸릴까봐. 더구나 판사님인데. 인간은 더디게 진화하긴 하는가 보다.

판사는 법정에 제출되는 증거들로 사실관계 규명과 법리적용을 하는 존재다. 그건 헌법이 그렇게 규정지어 놓았다. ‘자유심증주의’라고. 물론 판사도 사이보그가 아닌 한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다. 그건 삶의 태도다. 삶의 태도는 자신의 철학이고 그게 간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법리’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판결문에 옮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판결을 했다고 좌파고, 우파고 할 수도 없거니와 개인의 신념이나 생각과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을 삐라 신문들은 기억하기 바란다.

8. 앞서 몇 가지 판결례만 가지고 이 판사들 되려, 우파적인 사람들로 단정 짓지도 말지어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의 판결례 몇 가지만 소개하면, 얼마 전 한국외대 노조가 파업 중에 징계는 부당하다고 낸 소송사건이 있었다.
이 재판부는 ‘징계에 따라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고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단체협약 조항에 근거해 징계는 부당하고, 학교측 징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보았다. 또한 노동조합 전임자가 회사측의 인사이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된 것에 대해 ‘회사의 전출 명령을 따르지 않고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실적부진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도 부당하다, 지나치게 높은 업무능력 평가기준으로 시용근로자를 해고하는 것도 부당하다, 2005년 현대차 취업비리 사건에 연루된 조합원을 회사명예 실추로 해고한 것도 부당하다, 부장이나 점장 등 2차 평정권자로부터 직원들의 노무관리를 위임받은 ‘과장급’ 직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노조의 단체교섭위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어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쯤이면 슬슬 두뇌를 좌우로 도리도리하면서 혼란스러울 찰나에, 굳히기 하나 들어가면 또 관점이 변할지도 모른다. 이 재판부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북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던 중 부상을 입은 노인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청구소송에서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는데. 또 좌파 냄새 나냐? 그건 니네들 코가 문제야. 코가.

9. 판사가 판결로 말하든, 성대로 말하든 간에 이들에게 어떠한 개입과 간섭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권교체기에는 늘 그 독립성이 문제되어 왔다. 이건 몇몇 판사들의 문제가 아니다. 판결문 자판기 고장, 소위 사법부 파동이 일어난 대부분의 이유는 사법부 내부 관료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좌파·우파 이게 문제가 아니라. 결국 언론·정치꾼들이 좌파 판사 들먹이는 건 대법관 옹호의 외피를 둘러쓴 채, 정권유지 차원의 계산된 로그값이다.

본 사건도 이 재판부를 색안경을 끼고 봤다면 결과가 뻔할 것이다. 그러나 판결로 말할 수 있는 입을 봉하고 멀쩡한 판사를 좌파로, 꼴통으로, 반동으로 몰아간다면 기대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더 나아가 사법부의 신뢰. 내부의 개혁, 중요하다. 그러나 더 기본은 양심과 소신을 걸고 판결할 수 있는 판사를 괴롭히지 않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판사 개인의 양심과 소신을 대내외의 압박으로 짓뭉갠 결과가 우리 역사에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으로 남지 않았던가. 여전히 문제의 대법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신했다고 하지만, 이건 청와대의 ‘법과 원칙’이라는 삽언과 다를 바 없다. 불현듯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음성이 아련하게 들려온다. “히틀러의 만행은 당시 합법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09년 3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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