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으로 인정된 것은 지난 86년 방송국에 근무하는 타이피스트가 처음이었다. 이후 90년대 초에 국제전화교환원·은행창구·워드프로세스 작업 등과 같이 컴퓨터 입력 작업자를 중심으로 개별적인 연구들이 시작됐다. 근골격계질환자가 공식적인 통계(산업재해 통계)로 처음 보고된 것은 93년(2명)이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94년에 20명, 95년에 128명, 96년에 506명 등 VDT 작업자를 중심으로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로 자동차·조선업종 등과 같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근골격계질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2007년에는 7천723명이 직업병으로 인정됐다.
 
낯선 직업병, 노동자 문제로 부각

이미 과거부터 문제돼 왔던 근골격계질환자가 90년대 들어서야 직업병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건강권 확보를 위한 노조의 끊임없는 요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5년에는 수백 명의 한국통신(현 KT) 전화번호안내 작업자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근골격계질환 직업병 인정과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 당시로는 거의 보고되지 않은 대단히 낯선 직업병이었다.
작업자들은 하루 7교대~12교대를 하면서 매우 부적절한 작업조건과 매달 공개되는 업무실적 경쟁에 내몰리는 등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체 작업자 3천714명 중 총 3천3명이 의학적인 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420명이 근골격계질환 요주의자로, 498명이 근골격계질환자로 진단돼 유병률이 무려 24.7%에 달했다. 바로 이들 질환자에 대한 직업병 인정과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이 투쟁 결과 노조 산업안전국장이 구속됐으나 작업장에서는 휴게시간이 늘어났고, 작업환경이 개선됐다. 결국 345명이 집단으로 직업병이 인정된 한국 최초의 사례가 됐다. 정부에서는 이를 계기로 97년 ‘영상표시단말기 취급자 작업관리지침’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99년에는 자동차공장(구 현대정공)에서 노조가 주관해 의학적 검진을 실시한 사례가 있다. 그 결과 전체 작업자 중 근골격계질환자 유병률이 14.2%로 나타났다. 이들 중 일부(56명)가 집단 요양신청을 해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이 사례 이후 2000년대 들어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 사업으로 확대됐고, 근골격계질환 인정과 대책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2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사업주 의무사항’이 법제화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평소에 있었던 ‘질환자 드러내기’를 위해 회사와 싸워야 했다. 직업병 인정을 꺼려 하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건강권을 위해 구속과 해고를 겪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했다. 즉 한국에서의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아니라 노조 요구로 사회문제로 부각됐고, 문제 해결에 노조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부 정책변화 이끈 현대정공 투쟁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해 한국에서 사업주에게 관리 책임이 법적으로 부여되기 시작한 것은 90년이다. 이때 새롭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규칙에 비록 한정된 작업내용이긴 하지만 컴퓨터 작업장과 정밀작업과 같은 정적인 단순반복 작업에 사업주의 보건상 조치 의무가 마련됐다.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별다른 사회적 이슈가 없었던 시기였으나 일본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참고해 법을 개정하면서 그 내용이 그대로 추가된 것이다.
이후 95년부터 시작된 전화안내 작업자의 근골격계질환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정부 정책에 변화가 시작됐다. 97년에는 ‘영상표시단말기(VDT) 취급 작업자의 작업관리지침 (노동부·1997)’이 비록 노동부고시 수준이지만 현장 관리 중심으로 처음 제정됐다. 한편 88년에는 ‘단순반복작업 작업자 작업관리지침(노동부·1998)’이 노동부 고시로 발표됐다.
99년에는 자동차 제조업체인 현대정공(지금의 현대자동차 제5공장) 노조가 제조업 최초로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56명)을 신청했다. 이를 통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던 시기에 적극적인 현장투쟁으로 구조조정에 대응한 성공적 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근골격계 문제를 금속 사업장 전체로 확대시켰으며 정부 정책 변화를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0년 들어 근골격계질환자가 급증하는 등 노동자 건강권 문제의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사회 문제가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많은 사업장에서 집단요양 신청이 줄을 이었고, 많은 개별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2002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제24조(보건상의 조치)에 ‘단순반복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사항’을 추가했다. 2003년에는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9장)에 6가지의 사업주 의무사항을 규정했다.<표1>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게 돼

근골격계질환 예방사업에 노조가 참여한 이후 작업 현장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를 4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건강권 인식 항목에서 만족도 점수가 3.3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노사관계에 긍정적인 영향(3.1)을 주고 작업환경개선(2.8)에 도움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노조가 현장 활동과 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 문제를 공론화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하고 치료를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노조가 근골 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근골격계질환을 직업병으로 인식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보고할 수 있으며 △치료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확대됐다고 할 수 있다.<그래프1>
 
노조 있으면 환자도 많이 발견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할 때 노조의 참여 정도에 따라 질환자 발생률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한 결과 회사측이 주도했을 대보다 노조가 적극 개입해 조사 대상을 노조 혹은 노사공동으로 선정한 경우 근골격계질환자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2>
노조가 없는 사업장과 비교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한계가 있지만 이러한 결과는 유해요인 조사 과정에 노조가 적극 개입할수록 근골격계질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드러나는 것을 설명해 준다. 노조가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프로그램에 직접 개입한 사례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그래프2>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각 연도별 근골격계질환자를 보면 노조가 개입하기 이전인 2001-2002년에는 오히려 환자수가 가장 적게 나타났는데 이는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이라는 인식이 아직 확대되지 않은 저평가 시기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후 노조가 개입하면서 인식이 확대되고 결국 2004년에는 총 400명으로 늘어나 그동안 현장에 내재된 환자들이 드러나는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예방관리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2년차(2005년)에는 질환자수가 21% 감소, 3년차(2006년)에는 36%로 감소하는 긍정적인 예방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기사제휴 : 관점있는 노동안전보건 인터넷뉴스 ‘일과건강’

<2009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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