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말에는 현대미포조선사건을 필두로 코스콤과 KTX여승무원 사건 등이 법원에서 ‘위장도급’으로 인정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KTX 여승무원과 현대미포조선 사건 등은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3~4년의 장기간에 걸친 투쟁과 지루한 법적 공방이 있었고, 노동법 분야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하에서는 위 대상 판결에서 인정된 위장도급과 그에 따른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인정의 법리에 대해 살펴본다.

대상판결의 쟁점

대법원은 원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제3자의 사업장에서 제3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어떤 사실관계와 법리를 근거로 제3자의 근로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하여, “원고용주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여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은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또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대법원 1979.7.10. 선고 78다1530 판결; 1999. 11. 12. 선고 97누19946 판결; 2003.9.23. 선고 2003두3420 판결 등 참조) 이와같은 법리에 따라 법원은 ①원고용주의 경영상 독립성이 없는지, ②사실상 당해 제3자와 사용종속적 관계에 있는지, ③제3자가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등 피고용인과 제3자간에 묵시적 고용관계가 존재하는지 등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하였다.

2. 대상판결에 나타난 위장도급의 징표

먼저 현대미포조선사건(서울행정법원 2004구합25397 판결)의 경우 법원은 ①원청이 하청 소속 근로자들에 대하여 기능시험을 통해 채용여부를 결정하고, 징계를 요구하거나, 원청 인사기준에 따라 승진대상자를 결정하도록 한 점, ②원청이 주도하여 하청 근로자들이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방법, 작업순서, 업무협력방안을 결정함으로써 근로자들을 실질적으로 직접 지휘한 점, ③원청이 직접 상여금과 퇴직금 등을 지급하는 등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점, ④하청은 독자적 장비를 보유하지 못하였고, 사업경영상 독립적인 물적시설을 갖추지 못한 점 등의 사실관계를 인정하였다. KTX여승무원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08카합3449 결정)에서는 ①철도공사가 여승무원들을 채용함에 있어서 채용면접관으로 참석하고 워크숍을 개최하였으며 ‘접객서비스 시행세칙’을 만들어 여승무원들의 복장이나 업무방법 등을 규정한 점, ②철도공사가 우수 여승무원을 선발하여 해외연수를 보내주고, 수시로 교육을 실시한 점, ③철도공사 소속의 관리자가 평가 및 통제의 수단으로 시정요구서를 하청인 철도유통측에 전달한 점, ④여승무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는 열차팀장의 평가를 토대로 개인별로 차등화하고 4대보험료를 실제 부담하며 피복비와 새해선물을 지급한 점, ⑤철도공사의 각종행사에 여승무원들을 수시로 차출한 점, ⑥업무에 필요한 무전기, PDA, 승차증 등을 무료로 배부하거나 숙소를 제공하고 기기 등이 손망될 경우 직접 변상을 요구한 점, ⑦하청이 철도유통에서 KTX관광레져로 변경된 것은 철도공사가 그 필요에 따라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인정하였다.

이와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법원은 두 대상판결 사례에서 하청 회사가 “실질적으로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고, 오히려 원청이 하청 근로자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수준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원청이 하청 근로자들을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위장도급에 있어서 직접 고용관계의 인정

노동부 고시 ‘근로자파견사업과 도급 등의 구별기준’에 따르면, 노무관리상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이 있는지를 판단하여 위장도급에 해당하면 “그것이 법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고 하여 근로자파견법상의 불법파견으로 보고, 이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명시적으로 파견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고, 도급의 형태로 위장도급을 공급한 경우에 근로자파견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부정적이다.
즉 대법원은 “참가인과 원고들 사이에 바로 실질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이 사건에 파견근로자법상의 근로자파견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전제로 그 제6조 제3항의 고용의제규정이 적용된 결과로서 비로소 그와 같은 고용관계가 성립된 것이라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적절하지 아니하다”(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3두3420 판결)고 판결하였다. 물론 이와같은 판례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도 법원은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 실질적 근로관계 성립의 법리를 인정해 왔다(대법원 1979. 7. 10. 선고 78다1530 판결; 1999. 11. 12. 선고 97누19946 판결 등). 그리고 대상판결에서도 노무관리상의 독자성과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위장도급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위장도급에 해당되면 곧바로 실질적 근로계약관게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비판론자의 논지

대상판결이 제시하는 실질적 근로계약관계의 법리는 근로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명쾌한 반면, 비판론자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로 법인격부인론에 관한 대법원의 기존판례에 비추어 볼 때 하청회사의 법인격을 너무 쉽게 부인한다는 비판이다. 법인격부인의 법리란 회사의 법적 독립성, 즉 회사가 그 구성원인 사원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법인격체라는 원칙을 관철하면,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반하는 결과로 되는 경우에, 그 특정한 사안에 한하여 회사의 독립된 법인격을 부인하고 ‘회사=사원의 결합’으로 보아 직접 사원(임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위장도급에 있어서 형식적으로 법인격 있는 하청회사가 실질적으로 원청의 일개 사업부서에 불과하다는 판결은 바로 법인격 부인의 법리에 터잡아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법인격제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다.

둘째로 법원이 대상판결에서 말하는 위장도급의 인정이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지가 불분명하여, 법원에 의해 자의적으로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는 비판이다.

셋째로 대상판결은 위장도급으로 인정되기만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원청과 하청 근로자들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하청 사업주가 실질적인 근로자파견계약을 도급계약으로 위장하게 된 배경, 법률위반의 정도 및 효과, 당사자의 의사 등 제반 사정을 일체 고려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다.

실질적 근로계약관계 인정의 필요성

그러나 위와같은 비판론자들의 견해는 위장도급을 통해 도급의 이점(일반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이나 파견근로자법상 사용사업주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은 그대로 누리면서 도급의 단점(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해서 직접 지휘·감독할 수 없다)을 제거하는 법률관계(이를 위에서 본 원래의 진정한 도급과 구별하여 ‘위장도급’이라고 부르는 것임)를 창출하려 하는 사용자들을 옹호하기 위한 편향적 견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9조, 직업안정법, 민법 제657조 등이 규정한 노동법의 대원칙은 ‘중간착취배제’와 ‘직접고용원칙’이며, 이와같은 대전제에 터잡아 위장도급에서 직접 고용관계를 인정한 법원의 태도는 정당하다고 본다.

따라서 대상판결과 같이 위장도급이 인정될 경우 곧바로 실질적 근로관계를 인정하더라도 법인격부인의 법리가 갖는 한계와 최후성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법인격의 보장이 법인격의 절대적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위장도급은 현행 근로기준법 등 법령은 물론 법인격남용과 신의성실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법원이 “갑회사가 법률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병회사가 갑회사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는 회사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거나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88.11.22. 선고 87다카1671 판결)고 판결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원하청관계에서 위장도급에 이르게 된 제반사정을 살핀다면 그 이유는 원청이 도급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누리기 위한 것이므로, 위장도급의 제반사정을 살피더라도 위장도급을 주도한 원청의 입장에서 득이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위장도급의 인정과 관련하여 법원이 일정한 인정기준을 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위장도급은 사용자의 노동법상 책임 회피라는 의도에서 교묘하게 이용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확실한 규율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노동관계법을 관통하는 ‘직접고용원칙’은 위태로워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의 : www.hrpro.kr>


<2009년 1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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