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다. 복 받자, 보다는 남은 복이라도 뺏기지 마시라. 남은 복 지키는 다이제스트. 대통령 말 믿고 주식 사지 말 것. 정부 대책 발표 때마다 집값 떨어진다. 기다려라. 대책 안 나올 때까지. 감세한다고 술빨 세우지 마시라. 감세분의 누적분, 언젠가 새 정부의 증세로 이어진다. 모아두라. 덕담 끝. 지난 12월 말, 국회는 재활용센터, 아니 쓰레기집하장을 방불케 했다. 이 글이 독자의 손에 쥐어져 읽힐 시점이면, 반대편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지난 한 해, 조선백성들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국가 원수에게 ‘공약 불이행’을 허하노라며, 촛불 문화제까지 열어준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뿌리치시며, 청와대에 홀로 앉아 큰 삽 옆에 끼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얼리버드 변신하사 근태관리 애쓰시다 주마등 같이 공사현장 뇌리스쳐 공약관련 불문하고, 평소 꽂힌 아이디어 12월말 무더기로 법안처리 강행하사, 다시 촛불 들게 하네. 어찌됐든 MB정부 최대수혜, ‘양초공장’임은 분명하네.

2. 이 사건, ‘근로자성’과 관련된 것인데 이 판례의 원천 줄기세포는 ‘제일씨티리스 사건(대판 1994. 12. 9. 94다22859)’.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기 위한 요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판례가 현재까지 근로자성 판단의 금과옥조 되겠다. 굴비처럼 엮인 열 몇 개의 기준은 ‘소림18동인’과 견주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이 판례의 기준에 따라 근로자가 됐다가도 다시 근로자가 아닌 자로 유체이탈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기준을 적용하는 판사의 해석독점에서 기인하는 바다. 그러나 이 사건, 근로자성이 인정된 사례이다. 어떻게?

3. 근로자성 문제, 이건 사실 근로자 아니면 자영업자라는 이원 방정식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불거질 문제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거리나 법정에서의 투쟁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뭐니뭐니해도 자영업자라면 ‘자영’을 하도록 둬야지, 종속관계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일시켜 먹었으면, 종속한 대가로 노동법을 준수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사업자등록증’을 핑계로 “당신 원래 자영업자야”하고 ‘레드썬’을 수십 번 외친다고 근로자가 자영업자가 될 수는 없다. 얄팍하게 노동법의 그물을 피해가면서, 종속관계의 이점을 죄다 챙기는 업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별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있는 규제의 그물도 앞으로 죄다 찢어 발겨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4. 다시 사건으로 유턴. A회사와 용역계약을 맺어 물류배송을 담당하는 B회사. B회사와 위·수탁계약을 맺어온 A씨. A씨는 물류배송과정에서 고객과 마찰이 생겨 A회사가 수차례 주의를 주었음에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B회사를 통해 배차정지, 그리고 위·수탁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게 그냥 계약해지인가, 아니면 해고인가가 이 사건에서 다퉈진 것이다. 부당해고를 다투기 이전에 근로자성 문제, 짚고 넘어가야 한다.
A회사는 이 양반이 ‘지입차주’라고 주장하지만. A씨는 ‘근태관리·징계·휴가통보·매월 기본수수료 및 수당 지급·업무 평가후 인센티브 및 견책조치’ 등에 있어 A회사의 직접관리 모드 아래 있었다. 법원은 A사와 A씨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다. 앞서 나열한 바와 같이 제반 지휘·감독을 B회사가 아닌 A회사가 실질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포인트. 한편, B회사는 형식적으로 독립된 사업자 지위를 가지고는 있지만, ‘바지사장’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례에서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B회사는 A회사와의 관계로만 볼 때 ‘노무대행기관’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판례에서 B회사의 실체를 밝히는데는 주력하고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을 거론하기는 어려울 성 싶다.

5. 여기서 다룬 판례는 사안이 비교적 명백해 앞서 언급한 ‘금과옥조’에 넣으면 바로 답을 토해내는 사례이다. 지방법원의 노고를 치하할 사안까지는 아니라서 별도로 가타부타 덧붙일 말 없지만. 지난 정부 때부터 근로자성 문제, 꽤 오랫동안 쟁점이 돼 온 것이 사실. 진전이래 봐야 2008년 7월부터 경기보조원(캐디)·학습지교사·레미콘운전자·보험설계사가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는 정도. 물론 대법원도 최근 들어 몇 가지 판단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의 변화조짐은 보인다(대판 2007.1.25. 2005두8436 등). 그러나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에는 노동법이 미리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고용형태와 그에 따른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고 있으나, 이후 대책은 없는 실정. 법이 스스로 가랑이를 찢어도 별 수 없고. 보호법 마련이 요구된다. 이 겨울, 대리운전·퀵서비스·택배 종사자들에게 부는 칼바람을 노동법으로 막아줄 수는 없을까.

6. 특수형태 고용종사자인 경기보조원에게 산재보험적용의 길이 열린 이후 이런 일이 있었다. 골프카트가 뒤집혀 척추가 접힌 경기보조원, 산재적용을 못 받는단다. 회사측이 미리 경기보조원들에게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받아뒀기 때문. 이런 짓이 가능한 이유, ‘갑’의 압력이 먹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영업자처럼 ‘자영’할 의사도, 권력도, 힘도, 돈도 없는 ‘종속적’ 지표를 보여주는 물증. 한편, 특수형태 고용종사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률(68.5%)이 높단다. 왜냐, 업주의 압력도 있거니와 일반 근로자들의 경우 사업자 전액부담인 산재보험료를 업주와 반반 부담하기 때문. 또한 당연가입이 아니라서 가입 안할 수도 있다는 말. 결국 사회보험제도로는 근로자성에 따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반증. 결국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7. 사용자들이야 당연히 규제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 규제의 틀을 벗어나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영역을 찾아다니기 마련. 그 영역이 바로 특수고용직이라는 형태의 사각지대다. 허나 정부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법(공정거래법·약관법·하도급법 등)의 질서를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에게 갖다 대잔다. 이런다고 당사자의 지위가 대등하게 되나. 안 된다. 이것도 본질과 무관하다. 경제법은 상인들간의 공정한 자유시장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근로자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결국 근로자성이 강한 직업군일수록 노동법 범주에, ‘어떤 부분’을 ‘어느 수준’으로 보호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문제해결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8. 학철부어. 수레바퀴가 지난 간 물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그걸 본 놈이 수로를 내어 너를 살려줄테니 기다려 보라고 한 장자(莊子)의 우화. 지금 정부가 하는 꼴이 딱 이 꼴이다. 특수고용직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등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면, 정부는 운하를 파게되면 사정이 나아질테니 기다려라는 식이다. 주제와는 얘기가 좀 멀어지지만 말머리에서 밝혔듯 정부의 공약이라는 게 죄다 있는 놈들의 편향이고, 근로자와 근로자의 언저리에 걸쳐 있는 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들이다. 그러니 집권 만 1년이 안되는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최소안전망을 망가뜨리는 건, 이들을 우습게 보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도 각종 법안들을 세트로 묶어 온갖 규제완화 조치와 함께 버무리고 으깨면, 국민들이 모를 것 같은가. 다 안다. 그래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새해, 해 뜨기 전에 국민들이 촛불로 세상을 먼저 밝히고 있지않나.

<매일노동뉴스 2009년 1월6일>

김가람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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