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안이 없지 않느냐.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복수노조 허용을 5년간 유예키로 한 배경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장영철(張永喆)위원장은 9일 이렇게 말했다.

이 두 가지 쟁점은 노사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한국노총은 노조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며 관련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 99년 사상 처음으로 전경련 회장실을 기습 점거하고 지도부가 민주당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반면 재계는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토록 하려면 해봐라. 대신 우리 시체를 밟고 넘어가라”면서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 규정(97년 3월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양보할 수 없다며 버텨 갈등이 증폭됐다.

노사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노사정위 공익위원이 ‘처벌조항을 삭제하되 전임자 수 상한선을 두자’는 중재안을 내놓았고 정부는 개정안을 지난해 초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재계의 눈치를 보던 국회가 이를 처리하지 않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복수노조〓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와 달리 재계가 먼저 반대했다. 복수 노조가 설립될 경우 노조간 선명성 경쟁 등으로 노사관계가 더 꼬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도 국제 노동기준에 맞춘다는 명분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며 기존 노조의 기득권과 사용자의 유령노조 설립 가능성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돌파구〓두 현안을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이달 초였다.

노사정위 안영수(安榮秀)상임위원과 노사정 대표를 중심으로 한 간사회의가 1월초부터 열렸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이를 유예하고 더 논의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2일 노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김대중(金?中)대통령은 조기 합의를 지시했다. 노사 양측은 각자 실리를 챙기는 ‘빅딜’을 했다.

▽노사의 손익 계산과 남은 과제〓노동계는 재계보다 더 많은 실리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향후 5년간 전임자 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신설 노조의 전임자 임금지급도 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노사정 상무위원회에서 한때 전경련 대표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일단 현안은 봉합됐지만 5년 뒤 현행법대로 시행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재계는 마뜩치 않다는 표정이다.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태세다.

복수노조 유예는 노사 모두에 명분이 약하다. 국제노동기구(ILO)의 9차례에 걸친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였는데 시행을 늦춤으로써 국제적으로 ‘노동 후진국’이란 인상을 주게 됐다.

또 사용자측의 유령노조,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조 등에 관한 문제를 풀기 힘들게 됐다.

정부는 노사 갈등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사분규의 몇 가지 불씨를 없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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