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애는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동생 학교도 보내고 생활비도 보태겠다고 취업했다. 지난 2003년 10월, 수원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 보냈다. 2005년 5월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속이 계속 울렁거리고 체한 것 같다고 했다. 며칠 뒤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애 할머니는 “애를 몹쓸 회사에 보내 이렇게 됐다”며 걱정하시다 결국 돌아가셨다. 골수이식을 했는데 같이 일하던 이숙영씨도 병에 걸렸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병이 아닌 것 같아 회사에 산업재해보상 신청을 해달하고 했더니 펄쩍 뛰면서 유전적인 질병이라고 했다. 2006년 10월에 회사측 관계자가 찾아와 사표를 쓰라고 했다. 치료비를 다 주면 사표를 쓰겠다고 했는데 고작 500만원 줬다. 2007년 3월6일에 아주대병원에서 치료 받고 오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아이가 죽었다. - 고 황유미(당시 22세)씨 아버지 황상기(55세)씨

#2. 기흥공장에서 직접 일해 본 작업자로서 삼성반도체의 작업환경에 대해 말하겠다. 에어샤워를 하고 방진복을 입고 작업장 안으로 들어간다. 방진복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품을 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부직포 재질의 마스크를 썼는데 말을 하면 침이 그대로 베어 나왔다. 작업장에 입실하면 화학약품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내부의 압력이 엄청 세서 한 두 시간 일하다 보면 피로감을 느낀다.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 지 잘 몰랐다.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렸다. 생산물량에 따라 상여금도 나오고 승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몸을 버려가면서 일을 했다. - 고 황민웅씨(당시 31세)의 아내 정애정(31)씨

#3. 지난 2005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현재 재발 여부 검사를 받으면서 치료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안 좋다. 91년 온양공장에 입사할 당시 공장 건물이 모두 가건물이었다. 칸막이 하나를 쳐놓고 공정별로 나눠 놓았다. 방진모와 방진복, 장갑 정도를 끼고 근무했는데 장갑도 구멍이 나야 교체해 줬다. 방진복은 기숙사에 가져가 개인적으로 세탁했다. 화학물질의 냄새를 그대로 맡았고, 반도체 마킹에 쓰이는 레이저 빛도 다 맞아가며 일했다. 이물질을 제거하는 투명한 액체를 썼는데 그게 화학물질인지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체력이 국력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했다. 6년 동안 2교대로 12시간 근무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병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 검사를 받았는데 70만원 정도 들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치료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달라.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 - 현재 백혈병 투병중인 김옥이(40)씨

#4. 95년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입사한 딸은 6년간 일하다 그만뒀다.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을 때 교수님이 암의 깊이를 봤을 때 7~8년 정도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에서 일하니까 딸이 좋은 환경 속에서 일한 줄로만 알았다. 병이 직업 때문에 생겼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애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뇌를 다쳐 아이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 소뇌가 다치면 장애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나. 엄마의 바람은 딸이 예전처럼 돌아올 수는 없지만 돈 걱정 안하고 살아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 삼성전자 LCD 사업부 퇴사자 한혜경(32)씨의 어머니 김시녀(51)씨

빠르면 다음달 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들의 증언대회가 열렸다.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삼성백혈병 충남대책위·민주노총·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실·보건의료단체연합·발암물질정보센터는 21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삼성전자 직업성 암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인정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피해 당사자들은 “살아있는 기간만이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절규했다.

피해사례 하나 둘 늘어나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노동자들의 사례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7년 6월에 고 황유미씨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 신청을 하면서부터다. 고 황유미씨는 2003년에 삼성전자반도체 기흥공장에 생산직으로 입사한 후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에 숨졌다. 같은 해 11월에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발족됐다.

이후 황유미씨와 함께 작업을 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6년에 숨진 고 이숙영(당시 30세)씨, 기흥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다 2005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 온양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다 2004년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현재 투병중인 박지연(23)씨,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2005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중인 김옥이씨의 사례가 드러났다. 추가 피해 사례도 잇따랐다. 김옥이씨의 동료인 송창호(41)씨는 지난해 악성림프종(혈액암의 일종)이 발병해 같은 해 11월 공단 천안지사에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했다. 삼성백혈병 충남대책위에 따르면 최근 이들의 동료인 현직 노동자가 가운데 림프종(임파선 암) 환자가 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반도체공정과 유사한 삼성전자 LCD부서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뇌종양에 걸린 사실도 소개됐다. 한혜경씨는 지난 1995년에 입사해 6년 동안 LCD모듈과에서 솔더크림(납크림) 등 유기용제를 취급했다. 입사 후 3년이 지나면서부터 생리를 하지 않다 2005년에 소뇌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현재 지체장애1급 장애인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의 림프조혈기계암 피해자 규모가 최소한 22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해물질 노출되는지 모르고 일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은 현장에서 온갖 유해물질을 다루면서도 정작 그 사실을 모른 채 일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의 경우 자동화가 되지 않은 노후된 라인에서 작업을 하면서 직접 손으로 화학물질이 담긴 수조에 제품을 담그고 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는 증언이 제기됐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이숙영씨가 딸과 함께 일하기 전에 딸과 같은 작업조에서 근무했던 여성도 임신을 했다가 유산해 사표를 냈다”며 “들어가기만 하면 꼭 병에 걸리는데 그것이 직업병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지만 회사측의 안전교육은 미흡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숙이씨는 “교육이라곤 생산량과 작업일지를 기입하는 것, 안전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다였다”며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전혀 모르고 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애정씨는 “죽은 사람에 대한 진상 규명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말 못하고 힘들게 일하는 여성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인권을 지켜가면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지부진 산재보상, 치료비에 절망하는 가족들

고 황유미씨의 유가족들은 산업재해 유족보상 신청을 한 후 3년째를 맞고 있다. 현재 치료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늘어나 경제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검사를 받았다는 김옥이씨는 “한번 검사를 받는 데 70만원가량 든다”며 “검사를 받아야 하나 순간적으로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빨리 산재로 인정받아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뇌종양 제거 수술 후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는 “산재를 인정받아 떼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치료만이라도 제발 마음 편하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반올림과 삼성백혈병 충남대책위는 근로복지공단에 △자문의사협의회 개최 시도를 철회할 것 △역학조사보고서를 당사자에게 공개할 것 △산재보상보험법 역할에 맞게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산재로 인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근로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다’라는 국제산업안전보건 서울선언서에 서명했던 정부가 이제 기본적인 인권을 짓밟혀 고통 받은 이들에게 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2009년4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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