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태국 여성노동자 8명에게 이른바 ‘앉은뱅이병’이 발병했던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노말헥산에 중독돼 팔다리가 마비되면서 걷지 못하는 ‘말초신경병증’ 진단을 받았다. 이 사건은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와 화학물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1년6개월 동안 입원과 통원치료를 마친 노동자들은 이듬해 6월 태국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일한 곳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주)디디산업(가칭). 노트북 컴퓨터의 부품 중 프레임을 생산하는 회사로 50여명의 노동자가 일했다. 태국노동자 8명은 프레임을 출하하기 전 노말헥산을 이용해 부품의 얼룩 등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했다. 헝겊에 노말헥산을 적셔 손으로 프레임을 닦는 단순작업이었다. 하루 4리터 이상의 노말헥산을 이용해 5천개 정도의 프레임을 닦고 또 닦았다.

밀폐된 작업장에 무방비 노출

작업은 너비 3.5미터, 길이 85미터, 높이 3미터의 밀폐된 ‘청정실’에서 진행됐다. 청정실 내부 양쪽으로 작업대가 놓여 있었고 책상위로 형광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다. 사방이 온통 막힌 천장과 벽면에는 소형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작업대 위에는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공기 중 노말헥산이 빠져 나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태국 여성노동자들은 매일 만지는 액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마스크나 보안경 등 개인보호구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부터 자각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냄새로 두통이 자주 생기고 구토를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일어서기 힘들 정도였고, 숟가락을 들거나 혼자 옷을 입기 어려워졌다. 쉽게 넘어지기도 했다.
2004년 11월에는 8명 모두에게 보행장애가 나타났다. 이들이 노말헥산을 취급한 기간은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32개월이었다.

신경계·간기능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노말헥산은 사업장에서 세척액 등으로 많이 사용하는 물질이다. 2005년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노말헥산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367곳으로, 종사 노동자수는 2천600여명이다. 노말헥산은 메틸부틸케톤과 더불어 말초신경(팔과 다리의 신경)에 독성질환을 일으키는 유기용제다.

노말헥산은 무색인 데다 냄새도 없어 고농도가 아닐 경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휘발성이 강해 몇 리터의 액상 노말헥산은 밀폐된 공간에서 순식간에 고농도로 공기 중에 증발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개폐장치 없이 노말헥산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노말헥산을 취급하는 사업장의 노동자는 1년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 신경계와 근전도·간기능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앉은뱅이 병’ 말초신경병증
말초신경병증은 신경독성물질에 노출돼 감각이 둔해지고 운동신경이 손상돼 다리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결국 걷지 못하게 되는 신경계질환이다. ‘앉은뱅이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말헥산은 콩과 목화씨 등으로부터 식용유를 추출할 때나 코팅·도료·제약·화장품·접착제·섬유나 가죽제품의 세척제·온도계 내부물질 등으로 사용된다. 피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자극·건조·갈라짐과 피부발진이 발생한다.
고농도의 노말헥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손발이 따끔거리고 저리다가 점점 감각이 없어지면서 걷기가 어려워진다. 60년대에 일본과 이탈리아·대만 등에서 집단적으로 환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74년 신발제조 공장 노동자들에게 노말헥산에 의한 중추신경계증상을 동반한 말초신경병증이 확인된 바 있다.
최근에는 노말헥산 노출로 인한 업무상질병은 드물게 보고되고 있다.  조현미 기자


<2009년 4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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