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 어린 동심 곁으로…"

노동해방의 불꽃으로 기억되고 있는 전태일 열사가 태어난 지 60년이 흘렀다. 살아있다면 회갑을 맞았을 나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인 60여명이 힘을 모았다. 전태일 열사 탄생 60주년 기념 시집 「완전에 가까운 결단」(갈무리. 7천원)<사진>을 발간한 것이다.

시집 제목은 전태일 열사의 일기 일부분에서 따왔다. 전태일 열사의 숭고한 마음을 담은 일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시다. 민중문화계열 시인들은 열사의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80년대 민주화운동부터 최근 촛불집회와 용산참사까지의 사건들을 시로 형성화하는 고된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시인들은 시집 서문에서 "우리는 밥의 문제며 사회정의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추운 겨울 속의 램프에 불과할지라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그 푯대로 전태일 정신을 삼았다"고 밝혔다.
독자들은 이 시집에서 실업·해고·구조조정·비정규직·도산·폐업·물가폭등이 몰아치는 현실에 처한 민중들의 어려움을 시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시인 이소리씨는 '예쁜 그 여자'라는 시를 통해 여성 비정규 노동자를 노래했다. "늦가을 낙엽 투둑투둑 지는 거리를/ 어깨 추욱 늘어뜨린 채 눈물바람으로 걸어가는 그 예쁜 여자/.../봄 노을 지는 바닷가 갯벌에 퍼질러 앉아/ 스러지는 노을 바라보며 꺼이꺼이 울고 있는 그 예쁜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도, 딸내미를 기다리는 여자"도 아닌 '비정규직'이라는 네 글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을 시로 노래했지만, 그 노래는 결코 흥겹지 않다. 현실이 그렇다.

88년 제1회 전태일 문화상을 수상했던 시인 정인화씨도 “언제까지나/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이 모멸의 거리에서/ 뒹굴고, 넝마처럼 흩날려야 하나”라고 비정규직의 절망을 노래했다.

금융노조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시인 공광규씨는 '대답해보세요'라는 시를 통해 '국가유공자마저 노숙자로 처박은' 현실을 비판했다. "지하철 종각역 지하도 종이상자 위에/ 국가유공자증서 제10-18069호가 누워있다/.../그는 한때 잘 나가던/ 선글라스 끼고 권총 찬 육군 중위였다/ 이 사람의 공헌과 희생과 애국정신을/ 노숙자로 처박은 자는 누구인가?"

공 시인이 종각역에서 우연히 본 국가유공자 증서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으로…"라고 쓰여 있었다. 이 시는 과거에 잘 나갔던 장교이자 국가유공자조차 노숙자로 내모는 나라라면 다른 이들은 어떻겠냐는 상상을 불러온다. 또한 공 시인은 시 안에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적시하고 있다. "초국적 금융자본인가?/ 고시에 합격한 매판관료와 법조인인가?/ 사이비 학자와 노동조합 지도자인가?/ 숨겨놓은 돈이 많다는 전직 대통령들인가?"라고 물으면서.
교사 출신으로 시집까지 냈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시 한 편을 내놓으면서 시집 발간에 힘을 보탰다. 이 위원장은 '이 위원장'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의 대화를 전했다.

"눈 돌려 저 은행나무를 봐/ 아 빛나는 잎/ 가을비 한번 지나면/ 모두 떨어질 수천수만의 고운 노랑/ 봐, 이 위원장/ 저 나뭇잎들도 저렇게 멋지게 죽어가지 않아/ 난 두려워/ 더 늙는 게 힘들어/ 인간도 저 정도로는 가야 되는데 말이야/ 그러질 못해/.../맑은 날 저녁노을을 봐/ 하루해가 어둠속으로 들어가면서/ 저렇게 멋진 하늘을 만들잖아/ 이 위원장/ 우리도 저렇게 죽자고"

어느 덧 저물어가는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듯하면서도 진보와 노동운동의 수장이었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뒤편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 백기완 선생님과 이수호 전 위원장 두 분의 심정이 묻어나는 듯하다. '어둠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멋진 하늘을 만들고'자 하는 두 분의 대화는 끝맺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삶 자체로서의 완성이요, 후배들에게 끝까지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4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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