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121번지에 위치한 위니아만도. 아산지역 최대기업이자 국내 최초로 김치냉장고를 개발한 곳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10일. 위니아만도 공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문에서부터 ‘정리해고 반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정문 바로 앞 노조 천막농성장은 노사갈등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갈등은 지난 2월 불거졌다. 회사는 2월26일 희망퇴직 시행공고를 낸 뒤 이튿날부터 3월11일까지 126명에게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회사는 목표치(220명)에서 모자란 94명은 4월6일자로 해고했다.

공장은 그날부터 가동을 멈췄다. 금속노조 위니아만도지회(지회장 임주홍)는 파업을 진행하면서 납품차량의 회사 진입을 막았다. 8일부터는 생산시설을 점거했다. 9일에는 생산을 강행하려는 회사 관계자들과 이를 저지하는 조합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잘린 자’와 ‘남은 자’가 함께 지키는 공장

350여명의 조합원들은 16개조로 편성돼 해당 생산구역을 지키고 있었다. 350명에는 정리해고를 거부하고 있는 94명이 포함돼 있다.
오전 10시, 기자는 공장 2층의 딤채 조립 1라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와 에어컨을 생산하는 업체다. 김치냉장고는 ‘뚜껑형’과 ‘스탠드형’으로, 에어컨은 ‘천장형’과 ‘스탠드형’으로 구분된다. 주력제품은 김치냉장고다. 매출의 70~80%를 차지한다.

제품생산은 하청업체로부터 공급받은 부품을 위니아만도가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1개 조립라인에는 60명가량의 작업인원이 일한다. 완제품은 생산관리부서의 검사를 거쳐 시판된다.
기자가 왔다는 소식에 흩어져 있던 정리해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우리가 왜 잘렸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회사가 하는 일을 믿을 수가 없어 늙은 내가 이렇게 나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너무 괘씸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정리해고 대상자 가운데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박경식(56)씨가 대뜸 화를 냈다. 끊임없이 볼트를 조이며 에어컨과 김치냉장고를 조립한 세월이 벌써 24년째다. 위니아만도의 정년은 59세. 86년에 입사한 박씨는 정년을 3년가량 남겨 두고 있다.

“투기자본이 우리 돈 다 가져갔어”

박씨는 옛 만도기계에 입사한 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위니아만도는 93년 한라그룹 계열사였던 옛 만도기계의 냉동기사업부로 출발했다. 만도기계가 흑자부도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99년 스위스계 UBS컨소시엄에 매각됐다. 2005년에는 씨티그룹 벤처캐피털(CVC)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위니아만도는 2000년 49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2005년 말까지 6년간 누적당기순이익만 2천11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의 대부분은 주주배당과 유상감자 형태로 외국계 대주주들이 챙겼다.

외국자본은 이른바 ‘돈 빼가기’에 열을 올렸고, 투자를 외면했다. 당연히 회사 경영이 악화됐다. 위니아만도는 2007년 19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적자는 760억원대로 급증했다. 회사는 경영악화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조가 지난해 복지기금으로 만든 사원아파트를 매각해 유동성자금으로 제공했음에도 회사는 해고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가 번 돈은 외국자본한테 고스란히 들어가고 사원아파트 판 돈도 다 줬어. 그런데도 우리보고 나가래. 기가 찰 노릇이지.”
해고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박씨와 같이 정년이 임박한 사람도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근속연수가 많은 사람, 노조 경력자 등이 해고 명단에 올랐다. 어느 누구도 근무 성적과 태도를 기준으로 해고자를 선정했다는 회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86년에 입사한 박규석(43)씨는 나이에 비해 근속연수가 길다. 정년을 채우면 근속 40년이 된다. “근속이 길면 기본급도 높으니까 인건비 줄이려고 나를 (해고) 명단에 넣었겠지.”
투기자본에 당한 두 번째 해고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정병대(41)씨는 벌써 두 번째 해고를 당했다. 정씨는 옛 만도기계가 5개로 분리돼 분할매각될 때 해고된 경험이 있다.
십여 년 전 외환위기 당시 무분별한 순환출자를 했던 한라그룹이 부도나면서 견실한 기업이었던 만도기계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된서리를 맞았다. 정씨는 희망퇴직(300명)·정리해고(14명) 대상자 중 한 명이었다. 옛 만도기계 전체로 보면 무려 1천100명이 희망퇴직·정리해고로 회사를 떠났다.

정씨가 다시 복직한 것은 2001년. 해고 기간에는 경기도 평택에서 해장국 장사를 했다. 주물업체에서 1년여 직장생활을 하다 위니아만도에 재입사했다.
“요즘은 마누라가 왜 위니아만도로 다시 돌아왔냐고 핀잔을 줘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겠죠.”

투기자본의 회사분할로 ‘2사 1지회’ 형성

그는 ‘매각’이나 ‘분할’이라는 말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보였다. 위니아만도 공장에는 2개 건물이 있다. 정문에서 가까운 곳이 모딘코리아고, 뒤편이 위니아만도다. 원래는 같은 기업이었다. 위니아만도의 경영권이 2005년 CVC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동차 공조부문은 미국계 모딘(Modine)으로 분할매각됐다.

두 회사 생산직 노동자들은 같은 노조에 속해 있다. 산업별노조인 금속노조에 소속돼 있다. 소속 기업이 다른 ‘2사 1지회’ 형태다. 다른 회사 소속이지만 일상활동은 같이한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좋지 않다. 위니아만도에서 분할된 모딘코리아가 생산부문 분할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설에 일부 조합원 파업이탈

오전 12시. 점심시간이다. 조합원들은 조립라인이 위치한 건물 2층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밥맛이 없을 겁니다." 기자를 안내하던 한 생산직 노동자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당초 위니아만도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던 식당의 정규직 5명도 최근 해고됐다. 정규직이 나간 빈자리는 용역직 2명으로 대체됐고. 회사 총무과 직원들이 부족한 일손을 채우고 있다.
구내식당도 노사갈등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회사 경영진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400여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한산했다. 한 조합원은 “2~3일 동안 전체 조합원들의 참여 열기가 높았는데 정리해고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 일부 이탈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파업참가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9일부터다. 회사는 “생산중단이 계속되면 부도사태를 피할 수 없다”며 대표이사 명의의 유인물을 배포했다. 같은날 저녁, 회사는 지회에 “생산재개를 전제로 노사대화를 열어 현안을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94명과 250명, 공존을 위한 모색

오후 2시. 식당 옆 집결지로 조합원 200여명이 모였다. 향후 지회의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지회 집행부는 13일부터 일부 생산을 재개하고, 14일 회사와 대화를 갖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조합원들의 의견이 잇따랐다. 지회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는 ‘열성당원’들이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조합원들의 의견이 주로 개진됐다.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고 94명의 해고자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임금을 50~60% 줄이고 복지부문 달라는 거 다 줍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고자들을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생산재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생산이 허용되면 해고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조합원 사이에 이질감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조직력이 무너집니다.”
“지금까지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하나씩 다 줬습니다. 생산을 재개한 뒤 대화하면 또 다른 요구사항이 나올 게 뻔합니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던 임주홍 지회장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임 지회장은 “생산을 일부 허용해 주는 것이 투쟁의 끝이 아니다”며 “결단코 단 한 사람의 조합원도 내보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총회가 끝난 뒤 조합원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파업현장을 나서는 기자에게 정병대씨가 “파업하고 있다고만 보도하지 말고 왜 파업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투기자본이 뭔지도 몰랐어요. 어느날 일어나 보니 회사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요놈의 투기자본이 이렇게 무서운 줄 알았으면 두 팔 걷고 막았을 텐데….”

 
<매일노동뉴스 4월13일>

줄어든 성수기, 얇아진 지갑
위니아만도는 특정 시기에 생산을 집중하는 ‘계절산업’에 속한는 업체다. 주요 생산품은 김치냉장고와 에어컨이다.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 ‘딤채’의 생산이 본격화되는 9월부터 3개월, 에어컨 생산이 본격화되는 4월부터 3개월이 각각 성수기로 분류된다. 나머지 기간은 비수기다.
그런데 최근 위니아만도의 성수기가 달라지고 있다. 생산제품의 구성도 바뀌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투자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해외매각 이전에 위니아만도는 국내 에어컨 시장에서 3위권을 유지했지만 2000년대 들어 5위권으로 내려앉았다.
실제로 ‘벽걸이형’ 에어컨은 중국에서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들여온다. ‘스탠드형’과 ‘천장형’만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다. 에어컨 생산비중이 줄면서, 회사 전체 매출의 70~80%를 김치냉장고가 담당한다.
이로 인해 ‘시즌’이라고 불리는 성수기는 9~11월로 국한됐다. 김장을 하는 시기에 김치 보관을 위한 김치냉장고 판매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액의 대부분을 3개월 동안에 올리고 있다. 공장은 성수기에는 24시간, 나머지 기간에는 주간 8시간 가동된다.
때문에 시급을 받고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도 유동적이다. 잔업과 휴일특근이 많은 성수기에는 400만~500만을 받지만, 비수기에는 기본급만 지급된다. 20년차 생산직의 기본급은 120만원~130만원에 불과하다.
김치냉장고에 대한 생산직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자동차용 에어컨과 가정용 에어컨 등 위니아만도의 냉동공조 기술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위니아만도는 93년부터 3년가량 연구한 끝에 김치냉장고 ‘딤채’를 개발했다. 95년 출시된 딤채는 새로운 가전제품 시장을 만들어 냈다.
초기 김치냉장고 시장은 위니아만도의 독주체제였다. 그러나 삼성전자․LG전자 등 대형 가전업체가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가열됐다. 최근 김치냉장고 시장은 삼성전자․LG전자․위니아만도가 분할하고 있다.  정청천 기자

【현장분석】투기자본 ‘먹잇감’, 옛 만도기계의 굴욕사
투기자본에서 투기자본으로 매각, 국부유출의 대표적 사례
위니아만도는 외국자본의 투기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위니아만도는 옛 만도기계 아산공장이었다. 한라그룹의 계열사였던 만도기계는 한라그룹의 도산으로 97년 흑자부도를 냈다.
한라그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곳이 미국계 로스차일드펀드(Rothschild Fund)였다. 당시 로스차일드펀드는 브리지론 형태로 10억달러를 투자해 계열사를 정상화하겠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브리지론은 단기 차입금으로 부채를 청산한 후 매각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는 기법이다. 하지만 1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던 로스차일드펀드의 실제 투자액은 3억4천500만달러에 그쳤다. 나머지는 한라그룹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국내 은행에서 조달됐다.

◇6개로 쪼개진 만도기계=로스차일드펀드는 99년 초부터 한라그룹 계열사를 팔기 시작했다. 한라시멘트는 프랑스 라파즈에, 한라펄프는 미국 보워터에, 만도기계는 5개 회사로 분할돼 매각됐다. 로스차일드펀드는 분할매각 전에 1천100여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몸집을 줄이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만도기계의 3개 섀시공장(평택·문막·익산)은 (주)만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미국 JP모건 계열사인 선세이지(Sun Sage B.V)에 팔렸다. 아산공장(위니아만도)은 스위스계 UBS컨소시엄으로, 경북 경주 자동차 전장부품공장은 프랑스계 발레오(Valeo)로, 충북 청원 자동차용 모터공장은 독일계 보쉬(Bosch)로, 강원도 문막공장 다이캐스팅 부문은 미국계 깁스(Gibbs)로 각각 넘어갔다.
아산공장은 2005년 자동차 공조기부문은 미국계 모딘(Modine)으로, 김치냉장고·에어컨부문은 씨티그룹 벤처캐피털(CVC)로 팔렸다. 분할에 분할을 거듭한 셈이다.

◇투기자본에서 투기자본으로=위니아만도의 수난사는 해외매각 이후 본격화됐다. 위니아만도는 UBS컨소시엄에 2천350억원에 매각됐다. 매각대금 1천400억원은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 방식으로 조달됐다. UBS컨소시엄은 위니아만도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인수대금을 대출받은 후 자산을 팔아 갚는 방법을 사용했다. 실질 투자금액은 950억원에 그쳤다.
UBS컨소시엄은 위니아만드를 인수하자마자 투자금 회수에 들어갔다. 위니아만도는 2000년 492억5천9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시작으로 2005년 말까지 6년간 2천110억9천200만원의 누적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같은 기간 UBS컨소시엄은 2000년(300억원)·2003년(252억원)·2004년(170억원) 등 세 차례 주주배당으로 무려 722억2천만원을 챙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유상감자로 750억원과 601억원을 회수했다.
2005년 3월, 위니아만도의 경영권은 다시 UBS컨소시엄에 참여했던 CVC로 넘어갔다. 인수금액은 2천300억원으로 알려졌다. CVC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인수 이듬해부터 자본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CVC는 종이회사 만도홀딩스(주)를 설립해 위니아만도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어 만도홀딩스와 위니아만도를 합병했다. 만도홀딩스의 부채 1천159억원이 그대로 위니아만도에 전가됐다. CVC는 위니아만도 주식 1천40만주를 유상감자해 529억원을 벌어들였다. 업계에서는 CVC가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합병을 통한 부채전가와 유상감자 등을 통해 1천600억원가량을 회수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량회사가 부실덩어리로 전락=무차입 경영을 자랑했던 위니아만도는 투기자본의 잇단 자금회수와 투자외면으로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다. 현금유동성 문제를 겪은 것도 이때부터다. 2007년 이후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위니아만도의 현금유동성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8월에는 현금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사합의로 사원아파트를 매각해 부도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인력감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노동계는 CVC의 최근 움직임을 재매각 또는 청산을 위한 선제조치로 보고 있다. 단물을 빨아먹은 뒤 구조조정으로 매각가치를 높여 처분하는 전형적인 ‘먹고 튀기’(먹튀)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UBS컨소시엄과 CVC의 행보는 조세특례제한법의 세금 감면혜택과 무관치 않다. 조세특례제한법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외국자본에게 5년 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100% 감면해 주고 추가로 2년간 50%를 감면해 준다. 99년에 위니아만도를 인수한 UBS컨소시엄은 세금 감면혜택이 유지되는 기간인 2005년에 CVC로 경영권을 매각했다. 경영권 인수 5년째를 맞고 있는 CVC의 향후 행보를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청천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