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지난 2005년 9월 한국을 찾은 다우(가명·24·베트남)씨. 한국의 한 대학교 국제교육원에 입학해 1년간 한국어를 배운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2006년 4월 인천시 남동공단에 위치한 수포산업(가칭)에 취업했다. 수포산업은 숟가락과 포크 등을 제조하는 업체로 12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다. 이 회사의 공정은 △프레스기에서 숟가락과 포크 등이 찍혀 나오면 연마기를 이용해 표면을 다듬는 공정 △가공된 숟가락 등을 세척하는 공정 △검사와 포장 공정 등으로 나눠진다.

다우씨는 세척공정에서 일했다. 숟가락 등을 세척기에 넣어 씻은 뒤 건조시키는 일이다. 이 과정에 TCE(트리클로로에틸렌)이 사용됐다. TCE는 무색의 달콤한 향기를 내는 휘발성 액체로 세척력이 뛰어나다. 주로 드라이클리닝, 금속의 기름때·페인트의 시너·커피의 카페인·면과 모의 지방과 왁스 제거에 쓰인다. 일반 산업현장 노동자들은 주로 금속부품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TCE 증기를 흡입하거나, TCE 액체에 피부가 오염된다. 흡수된 TCE는 혈액을 따라 중추신경계에 전달돼 두통·현기증·구토·졸음 등을 유발한다. 고농도 TCE에 노출되면 급성간염이나 피부홍반이 나타나며, 최악의 경우 스티븐스존슨증후군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다우씨는 수포산업에서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일했다. 1주일에 3일 정도는 저녁 8시까지 잔업을 했다. 공장에는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다우씨는 세척작업을 하면서 제대로 된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장갑을 끼긴 했지만 유기용제용 장갑이 아닌 목장갑을 사용했다. 마스크도 방독바스크가 아닌 베트남에서 가져온 일반 마스크를 착용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다우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과 현기증을 느꼈다. 입사 한 달 뒤에는 손과 팔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반점은 하루 만에 온몸으로 퍼졌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다우씨는 며칠 뒤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병세는 악화됐고 그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TCE에 의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붉은반점 방치하면 순식간에 죽음으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은 피부와 점막이 심하게 부어오르면서 손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미국인 스티븐스 존슨이 최초로 이 병에 걸렸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1년에 100만명당 1~2명에게 발생하는 희소병이다. 피부에 작고 붉은 반점이 여러개 생기다가 이것이 수포로 바뀌고, 심한 경우 온몸이 부스럼이나 딱지가 생기고 피부가 벗겨진다.
피부에 나타나는 이러한 증상은 체내의 면역체계가 파괴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소한 균에 노출돼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면역결핍 상태가 된다. 전신 피부가 벗겨지면서 온몸의 수분이 증발해 탈수에 의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바이러스나 세균의 감염, 약물복용, 화학물질 노출, 전신질환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약물은 항경련제와 피니실린계 약물이며, 화학물질은 TCE·니켈·코발트·포름알데히드·살충제 등이다.
TCE에 의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TCE에 노출된 지 2~3주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 치료를 하지 않고 TCE에 계속 노출되면 1~2개월 안에 사망한다. 이 때문에 TCE를 취급하는 사업장의 사업주(관리감독자)는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노동자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또 TCE를 취급하는 노동자에게 TCE의 위험성·취급시 주의사항·비상시 조치사항 등을 교육하고,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TCE 취급 공정은 6개월에 한 번 이상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해 TCE의 농도를 관리하고, TCE 증기 발생지역에는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를 TCE 취급업무에 배치하기 전에 건강진단을 실시해 간기능을 확인하고, 배치 후 6개월 안에 첫 번째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이후 1년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 간기능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TCE 취급 노동자에게 피부발진이나 간기능 이상 등 소견이 나타나면 반드시 산업의학 전문의와 상의해야 하며, 건강이상이 확인되면 업무를 중단하고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2009년 4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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