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노조 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각각 5년씩 유예됨에 따라 올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은 일단 봉합됐다.

노사정위원회는 9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오는2006년12월31일까지 5년씩 유예하고 97년이후 생겨난 노조의 전임자에게도임금지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에합의했다.

이에따라 노동계는 앞으로 5년간 전임자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고, 경영계는 복수노조 허용 유예로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열매를 챙길 수 있게됐다.

정부는 지난 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제정하면서 내년1월1일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해 임금지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사업주를 처벌하도록 했으며, 복수노조도 전면 허용키로 한 바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그동안 전임자가 임금을 받지 못하면 노조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이 규정을 삭제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며, 경영계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이 규정을 그대로 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복수노조 허용의 경우 노동계가 노사자율에 의한 교섭이나, 모든 노조의교섭참여를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단체교섭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배타적 교섭제 등교섭창구 단일화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맞서왔다.

노사정위가 합의도출에 발벗고 나서고 김호진(金?鎭) 노동장관이 이례적으로경제5단체장 및 노총 지도부와 잇따라 접촉을 가진 것도 경제가 어려운데다 정부의강력한 구조조정 드라이브에 따른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들 2대 쟁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올 노사관계의향방을 가름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지난 2일 노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대중(金?中) 대통령이이들 양대 노동현안에 대한 조기 합의를 지시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와 노사정의 활발한 물밑접촉으로 올해 최대 쟁점에 대해 합의가 도출됨에 따라, 정부의 4대 부문 구조조정 추진과맞물려 날카로운대치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온 노사관계는 상당부분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숙원사업의 하나인 전임자 임금을 확보한데다 지난 97년이후생겨난 신규노조도 사용자와의 자율교섭에 따라 전임자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기때문이다.

경영계로서는 노사불안의 불씨가 사라져 노사분규라는 악몽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됐으며 복수노조가 설립되면 교섭창구가 다변화돼 노사협상이 큰 혼란에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털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도 지난해말 단체협약실효성 확보방안 합의에 이어 2가지쟁점에대해 ‘시행유예’라는 성과를 이끌어냄으로써 집단적 노사관계와 관련된 현안이 모두일단락돼 노사정위가 오랜만에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당장은 노사안정에 기여할 지 모르나,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 노사 담합에 의해 무작정 뒤로 미뤄 놓는 등 미봉에 그쳤다는비판의 목소리도적지 않다.

노조전임자 급여를 사용자가 지원하는 것은 민주성과 자주성을 근간으로 하는노동조합의 원칙에 위배되고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는 이미 정부가 ILO의 9차례에 걸친 권고를 받아들여 허용을 통보해놓은 상태에서 또다시 시행을 늦춤으로써 대외신인도 하락은 물론 ‘노동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이번 논의과정에서 2월말까지로 시한이 정해졌던 근로시간 단축논의 시한이 연기됨으로써 노사정위에 불참한 노동계의 또다른 축인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언제든지 쟁점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게 됐다.

노동계 내부에서는 노동계가 노조 전임자 임금이라는 실리는 챙겼지만대신 복수노조 허용 유보는 물론 경영계가 부담스러워 하는 근로시간 단축문제에 대해서도논의시한을 무작정 늦춰줌으로써 명분을 잃었다는 비난의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사정위의 한 관계자는 "결국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빅딜을 한 셈"이라며 "경제사정이 좋지 않고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양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함에 따라 올해 노사분규의 불씨를 상당부분 없앨 수 있게 됐다"고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단순히 5년간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할 수 있는시간적여유를 갖자는 의미"라며 "앞으로 노사정위 소위원회나 특위에서 지속적으로 법 시행을 위한 세부사항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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