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지난 24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아깝게 일본에 패했다. 결승전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아까운 패배였지만, 외신들은 "야구의 진수를 봤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구조조정과 실업 등 시쳇말로 '사는 낙'이 없었던 노동자들도 한국 야구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자랑스런 '야구 청년'들 때문에 잠시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김태균·추신수·정근우·이대호 등 27살 동갑내기 청년을 빼놓고 야구 대표팀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그야말로 '핵심 전력'이었다.

김태균과 추신수는 '한 방'으로 승리를 이끌었고, 정근우의 빠른 발은 상대 팀의 혼을 뺐다. 세대교체에 성공한 야구대표팀 선수들은 1번타자에서 9번타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WBC의 자랑스러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에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인턴이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청년인턴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주인공은 고사하고 '엑스트라'를 강요받는다. 은행에 취업한 청년들은 객장에서 인사하고 차심부름을 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희망은 사라졌고 절망만 가득하다.

한 증권회사에 취업한 청년인턴은 "선배들에 비하면 몇 개씩 자격증을 미리 따고 공부도 많이 해서 어렵게 회사에 들어온다"며 "기존 노동자 임금을 삭감해서라도 신입사원 임금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구조조정으로 '선배'들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불신만 커지고 있다. MB정부의 단기적인 청년실업대책 때문에 노동계 안에서 불신과 절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고용정책은 교육정책만큼이나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당장 올해의 위기, 그리고 정권의 임기만은 어떻게든 넘겨보자는 건 '먹튀'에 다름 아니다. 일자리를 최우선 과제로 놓았다고는 하지만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부실하기만 하다.

세계 금융위기로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닌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이익잉여금은 역대 최고 수준이고, 은행권은 주주배당과 스톡옵션으로 돈 잔치를 하고 있다. '선수' 대접을 못 받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청년 국가대표들은 오늘도 취업난에 한숨 짓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회에 또 한번 한숨 짓는다.
 
 
<매일노동뉴스 3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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