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업같은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지난 KTX 승무원 파업 당시 한 승무원이 했던 말이다. 또 이랜드 파업에 나선 아주머니도 같은 얘기를 했다. 누군들. 돌아보면 주목 한번 받지 못한 채 잊혀진 수많은 파업과 싸움들, 또 눈물들. 저마다의 절실함엔 곧잘 '불법', '폭력' 딱지가 붙었다. 살길 찾아 올랐던 망루에서, 철탑에서 굶고, 떨고, 불에 타 죽은 일이 어디 먼 나라 일이던가.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 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음으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고백이다.
<매일노동뉴스 3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