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다음달 1일 5기 보궐 임원 선출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한다. 선거를 앞두고 <매일노동뉴스>가 민주노총 소속 단위노조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모아봤다. 서비스유통노동자·여성비정규직·택시노동자·덤프노동자·공무원·제조업정규직 노동자들은 "어깨에 힘 좀 빼고,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이들의 목소리가 바로 민주노총이 누누히 강조하는 '바닥의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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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 "초심으로 돌아가야"
이미연(37) 홈플러스테스코노조 수석부위원장


인터뷰 요청을 받고서야 다음달 1일이 선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노동현장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단위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민주노총 선거에 대해 잘 모른다.
일단은 불미스러운 일로 지도부가 교체돼 안타깝다. 이런 일로 민주노총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비춰지는 게 마음 아프다. 사실 민주노총만큼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애쓴 단체가 어디 있나.
새 집행부에게는 '초심으로 돌아가 달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피와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그 때의 각오를 다시 떠올려주기 바란다.
홈플러스테스코로 이적하기 전, 2년에 걸쳐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해고에 반대하며 투쟁을 벌였다. 당시 민주노총이 보내 준 지원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눈에 비친 민주노총 간부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정시 출·퇴근하는 간부들도 많았다. 새 집행부에게 조합원들을 위해 헌신하는 투쟁할 각오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상급단체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단위노조는 당연히 따라하게 돼 있다.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라는 막중한 짐을 짊어진 만큼, 편하게 일할 생각은 버리고 열심히 활동해 주기 바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적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다. 어떤 때는 단위노조보다도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전문적인 정책 대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조합원의 마음을 하나로"
이옥순(53) 르네상스호텔노조 위원장


2006년 1월부터 르네상스서울호텔 앞에서 농성을 진행하며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말 힘들다.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말해도, 세상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 벽에 대고 외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정부와 자본이 달라져야 한다. 감원·구조조정·임금삭감처럼 노동자의 희생만을 요구하고, 자신들은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도 문제다. 말로는 노동자편인 것처럼 떠들지만, 국회로 가면 태도가 달라진다.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닌데,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지금 시대의 분위기가 너무 암울하다.
그래도 민주노총이 있어서 큰 위안이 된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 싸워주는 조직이 어디 또 있나.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파문에 대해 여성으로서 화가 나기도 한다. 반드시 근절돼야 하는 문제다.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은 항상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작은 것도 부풀리는 것이 언론이다.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성추문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언론이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나.
새 집행부에 바라는 점은 전체 조합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줬으면 한다. 자본은 노동조합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잘 뭉치나. 그런데 노동자들은 잘 뭉치지 못한다. 최근에는 노조를 가르려는 불순한 움직임도 있지 않나.
한 가지 더 당부하자면, 우리 같은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에 조금 더 힘을 보태줬으면 한다. 평범한 사회인자 주부·엄마인 내가 언제까지 투사로 살아야 되나.

<운수노동자> "비정규직보다 못한 정규직에게도 관심을"
이춘숙(52) 운수노조 민주택시본부 고려운수분회 조합원


택시노동자는 하루 12시간, 한 달 26일을 일하는데 사납금을 채울 수 없어 가불장을 쓰고 퇴근한다. 뼈 빠지게 일하는데도 하루 만원조차 못 벌 때가 많다. 그뿐인가. 길 위에서 차에 치여 죽고 요금 많이 나왔다고 경찰한테 맞아 죽는 신세다. 대중교통 취급도 못 받고, 아직까지 최저임금도 적용도 안 되고 있다. 민주노총 새 지도부가 하루만이라도 택시노동자가 된다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비정규직보다 못한 노동자가 많다. 비정규직은 적어도 잘리기 전까지는 일한만큼 월급은 받아가지 않는가. 민주노총이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쏟은 관심의 일부만이라도 택시노동자처럼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가졌으면 좋겠다.
지도부로 당선된다면 무엇보다 정직해지라고 당부하고 싶다. 민주노총은 신이 아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그런 치부를 감추려 들지 말라. 투명하게 공개해서 잘못한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 제대로 밥을 만들기 위해서 죽을 만들기도 하고, 누룽지를 만들기도 한다.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나아지는 것 아닌가.

<건설 특수고용직> "'뻥 파업'은 이제 그만"
박재순(51) 서울북부건설기계지부 사무국장


새 집행부는 부디 '뻥 파업'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허구헌날 파업을 해대니, 정작 중요할 때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건설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이 파업한다고 하면, 정말 충실히 참여한다. 그럴 때마다 배신감이 느껴진다. '이럴 거면 차라리 하지를 말지'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현장의 조합원들이 느끼는 실망감을 알아주기 바란다.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제발 어깨에 힘 좀 빼기 바란다. 스스로를 관료라고 생각하는 건가? 조합원을 위해 활동한다면 어깨에 힘 넣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잘 이해가 안 된다.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벗어나, 여러 노동현장을 직접 방문해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바란다. 왜 책상머리 지키고 앉아 있나. 제발 발로 뛰어주기를 당부한다.
나는 덤프트럭을 몰고 있다. 덤프트럭 노동자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최근 특수고용직의 노조 가입 문제에 대해 건설노조와 노동부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새 집행부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줬으면 한다.

<공무원> "노동자들이 미래를 맡길 수 있도록"
공현주(35) 전국공무원노조 용산지부 조합원


경제위기의 고토이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구청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고 있는데 민생안정대책이라고 나오는 것들이 허무맹랑하기만 하다. 성과에만 급급해 실효성도 없는데다가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이 많다. 일선의 공무원들과 소통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보여주기만 위한 정책이 많아 답답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이 내 조직이구나, 민주노총과 함께 하면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스스로 살 궁리를 하느라 바쁘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민주노총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믿을 수 있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고통받는 현실에 천착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8개월의 짧은 집행부라고 알고 있는데, 다음 집행부에서 사업이나 정책이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추진돼야 한다. 급하지 않게, 하지만 집요하게 차근차근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밖에서 바라보기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곳이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민주노총이 되기를 바란다.

<제조업 정규직> "조직강화 사업에 힘써주길"
신귀섭(39) 화학섬유노조 해태제과식품일반지회 지회장


민주노총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노총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조직강화 사업에 매진해야 한다. 보궐 집행부는 이점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새 지도부는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결정한 사업은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산별노조를 정상화하는 것도 새 집행부에게 주어진 과제다. 민주노총이 산별노조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 집행부는 각 산별노조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 지 확인하고, 장기적 계획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새 집행부의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기존 간부들의 역량도 높여야 한다.
민주노총 소속 몇몇 노조의 이탈 움직임이 있다. 단위노조가 이탈을 결심하기까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새 집행부가 이탈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산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바닥에 떨어진 조합원들의 신뢰를 다시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새 집행부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매일노동뉴스 3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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