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안양시에서 만취한 경찰관이 요금문제로 시비를 벌이던 택시기사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지난달에도 서울 중랑구에서 현역 육군 소위가 택시요금이 많다는 이유로 운전자를 구타해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야간에 홀로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최대 공포는 ‘사람’이다. 대인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일 경우 피살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야간 당직근무 중 피살됐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야간 당직근무 중 침입자에게 피살당한 간호사

지난 2006년 5월 충북 제천시의 한 정형외과에서 야간 당직근무 중이던 간호사 이아무개씨가 칼에 수차례 찔린 채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범인은 한 달 전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이아무개씨로 밝혀졌다. 그는 무릎부상으로 병원에서 24일간 치료를 받았는데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간호사 이씨에게 연정을 품었다. 퇴원한 이씨는 교제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하자 5일 후 병원에 침입했다. 당시 홀로 야간 당직근무 중이던 이씨와 맞닥뜨린 그는 성관계를 가지려다 거부당하자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인은 이후 검찰에서 "교제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하자 화가 나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숨진 간호사의 어머니는 업무상재해에 해당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살인사건의 업무관련성 여부

이 사건의 원고는 숨진 간호사의 어머니 박아무개씨다.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1심에서는 병원 내에서 근무하다 살해당한 점을 고려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업무상 재해가 아닌 개인적 원한관계로 인한 사망'이라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이번 사건을 업무상재해라고 판시했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직장 내에서 인간관계 혹은 직무로 인한 위험이 재해와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 업무상재해로 볼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병원에 혼자 남아 야간 당직근무 중이던 이씨는 통상적인 간호업무 뿐만 아니라 외부인의 침입이나 범죄행위로부터 환자들의 안전과 병원시설 및 재산을 보호하는 등의 경비업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었다. 이씨가 야간에 혼자서 경비업무를 하던 중 침입자에 의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면 이는 경비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사건은 숨진 이씨가 야간 당직근무 중에 발생했다. 재판부가 업무상재해로 판단한 첫 번째 열쇠다. 만약 근무 장소가 아닌 곳에서 발생했다면 법원의 판단이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심 재판부는 ‘근무와 무관하게 사적감정인 연정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업무와 관련이 없다'며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 열쇠는 숨진 간호사와 범인 사이의 관계다. 폭행이나 살인사건에서 업무상재해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은 가해자의 동기다. 만약 피해자가 상대방을 자극하는 등의 행위를 했을 경우 업무가 아닌 사적감정에 의한 사건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직장 내 인간관계나 직무에 내재하거나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 된 것으로 보여 진다면 사망과 업무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간호사로서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환자를 돌보는 등 간호업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었다”며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이씨를 연모했을 뿐이지 이씨가 가해자를 자극하는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병원의 경비가 허술해 당직근무자가 외부인의 침입에 의한 사고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는 점을 미뤄 업무기인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8년 8월21일 파기환송 2008두7953 산재보험유족보상.장의비청구부지급결정취소
대전고등법원 2008년 5월8일 2007누3006
청주지방법원 2007년11월21일 2006구합1505
 
 
<2009년 3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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