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나누기 명분으로 시작된 공기업 대졸초임 삭감 움직임이 급기야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을 위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 10일 "신입사원 임금 삭감을 두고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많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동수 수출입은행장도 이날 "고통분담 차원에서 기존 직원도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의 임금삭감 분위기는 민간기업과 공직사회에도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간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연봉 반납 소식도 들려온다.


■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 - 기존 직원 임금삭감, 근기법 위반

공기업 등에서 진행되는 임금 삭감은 '일자리 나누기'라고 볼 수 없다.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시간을 줄여 추가 노동을 창출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나누기'가 일자리 나누기이지, '임금 나누기'는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다.
가령 임금을 나누더라도 고임금을 받아온 임원급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문제다. 기존 노동자의 임금을 저하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조건 저하 금지 원칙에 저촉된다. 노동조합과 합의해서 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여론을 등에 업은 일방적 임금삭감은 곤란하다.
경제위기에 고임금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자기 임금의 일부는 내놓아 또 다른 정규직을 뽑는 방식이라면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임시‧인턴직만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국제노동기구(ILO)는 성명을 통해 불황기일수록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유지하는 것이 내수 확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질임금 저하는 내수 확보에 어긋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경기회복을 억제한다. 한계상황에 놓인 개별 기업이 임금삭감을 검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가가 나서서 정책으로 삼을만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국가가 해야할 일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노동계 등은 사내유보금을 풀어 일자리 창출 비용으로 활용하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도덕적 권고만으로 성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유권이 경영진과 주주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세 등 법적 절차를 통해 묶여 있는 돈을 풀어야 한다. 외국에서 검토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등 투자에 쓰이지 않는 유동자금에 페널티를 무는 방식을 고민해 볼 수 있다.

■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 조직 노동자에 대한 공격

직원들의 임금을 깎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논리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한쪽에서는 공기업 몸집 줄이기를 한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인턴을 채용하고 있다. 이것을 빌미로 기조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시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앞세워 자본과 정부가 조직된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예산통제력을 앞세워 임금삭감을 선동하는데, 민간기업들이 임금을 올릴리 만무하다. 임금을 깎더라도, 그 재원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의 방침은 앞뒤가 맞지 않고 반노동자적이다.
여론을 동원에 밀어붙이고 있는 임금삭감의 본질은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고용안정성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비정규 문제가 확산되는 흐름 가운데 하나로 임금삭감이 등장했다.
일자리 나누기의 전제는 고용을 통해 시장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서구의 국가들도 불황기에 기존 노동자의 임금 하락을 막으려 노력한 것이다. 때에 따라 기존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정부와 사용자가 자기 부담을 늘려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일자리 나누기다. 임금 등 기존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면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흡사 비정규직의 사용기간 연장이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호할 것이라는 주장과 상통한다. 말이 안 되는 황당한 논리라는 뜻이다.


■ 황재도 공공서비스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 - 공기업은 늘 임금삭감 상태였다

공기업의 경우 지난 5년간 사실상 임금이 삭감돼 왔다. 정부가 임금 가이드라인을 정해 강제하고 있지 않다. 매년 2~3% 인상안을 강제하다 보니, 공기업 노동자들은 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이 같은 문제를 수차례 지적했지만 개선되기는커녕, 이제 대놓고 임금을 깎겠단다. 공공서비스노조는 올해 약 4.7%의 인금인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최소한의 물가상승률만을 반영한 수치다.
가스공사에도 곧 114의 인턴이 들어올 예정이다. 이들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난 5년간 인력이 꾸준히 줄었다. 노동강도는 강화됐다. 가스공사만 해도 300~500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규직으로 이 자리를 메워야 한다.
정규직 채용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라는 것이 공기업노조들의 요구다. 추경예산을 편성할 때 이같은 부분이 반영돼야 한다.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의 10분의 1만 털어놔도, 정규직 일자리 수 십만개를 만들 수 있다. 정부나 자본은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고, 국민들에게만 손을 벌리는 것은 부당하다. 


■ 정성훈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홍보국장 - 임금삭감, 노조 동의 없이 불가능

결국 '마각'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기업의 임금삭감은 전산업 임금삭감을 낳을 것이다. 정부나 자본이 이것을 의도했던 게 아닐까.
임금은 사용자와 노동자간 계약에 의해 지급되는 것이다. 노동력이라는 가치가 투영돼 임금이 결정된다. 정부의 임금 통제는 위법이자 부당노동행위다.
다음주 시작되는 금융노조 올해 임단협에서도 기존 노동자의 임금 삭감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갈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힘들지만, 삭감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단위 노조들의 생각이다.
기존 직원의 임금삭감은 노조가 동의 해주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측이 사회여론을 등에 업고 밀어붙일 공산이 크지만, 노조 간에는 이를 방어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의 고임금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정부가 시장에 대한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본은 이윤창출에 눈이 벌어 투기에 골몰한 결과다. 고통분담을 하려면 이들이 먼저 무언가를 내놔야 한다.

■ 박희대 행정부공무원노조 지식경제부지부장 - 임금삭감의 또 다른 이름 임금반납

정부의 예산업무를 다루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일자리 나누기 명목으로 정무직 10%, 1~3급 7%, 4급 이하 5%에 해당하는 전 공무원 임금 강제 삭감을 추진하려다 공무원노조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중단됐다. 그러자 행정안전부가 총대를 매고 기획재정부와 동일한 형태(단, 6급 이하는 자율)로 임금반납을 추진했다.
민간에서는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목으로 공기업과 대기업의 임금동결, 신규채용자의 임금을 25~30% 삭감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OECD 회워국 가운데 최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또 다른 형태의 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 공무원이나 기업노동자의 몫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핑계로 정부가 해야 할 몫은 하지 않고, 손대기 쉬운 힘 없는 노동자의 임금을 희생양으로 삼는 기존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는 정부의 몫이다. 올해 정부의 사업 중 일부계층의 인기에 영합하는 사업들은 과감히 축소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으로 배정해야 한다.


■ 신혜진 대학생사람연대 연대사업국장(대학생) - 사회초년병의 스트레스 초임삭감

'초임삭감'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 대졸초임을 깎아 일자리를 만든다는데, 실제 일자리가 늘어날지 어떻게 아나?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게 하는 것 아닌가. 초임삭감으로 시작해 결국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내내 저임금과 씨름하며 살게될 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계속해 일자리 대책을 내놓지만, 너무 질 낮은 일자리만 만들고 있어 화가 난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정도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진짜로 원하는 일자리는 지속적인 안정적인 일자리다. 경기가 이렇게 안 좋은데, 왜 기업들이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가지고 있는 돈을 좋은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언론에서는 대학생들이 눈만 높아 중소기업 일자리를 외면하는 식으로 그려진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 간 노동조건 격차가 크다보니, 열악한 일자리를 선뜻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매일노동뉴스 3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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