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는 “업무상재해란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다.
그렇다면 대표이사로 등기부상 등재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 해당할 경우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형식상 대표이사의 간질성 폐질환 사망

93년부터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던 박아무개씨는 입사 2년 만에 그 회사의 사장이 됐다. 대주주인 노아무개씨가 그의 근면성실한 근무태도와 과거 건설부 및 대한주택공사에 근무한 경력을 높이 산 것이다.
노씨는 95년 1월1일 상시 근로자 270명인 자신 소유의 회사(주택관리업)에 박씨를 등기부상 대표이사로 등재했다. 사장이 된 박씨는 일반 관리업무 외에 주택관리 수주업무도 도맡아 했다.

박씨는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에도 사실상 노씨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면서 일반관리업무와 수주업무에 종사했다. 고정적인 월급으로 기본급 70만원과 수당 80만원을 받았다.
다만 대외적으로 관공서에 출입할 때나 업무계약을 수주해야 할 때는 대표이사의 직함을 사용했다. 거래회사와 계약서를 체결할 때도 박씨가 회사 대표로 기명날인 했다.
박씨는 건강상 이상을 느껴 96년 1월 병원을 찾았다가 간질성 폐진환 진단을 받았다. 증상이 악화돼 그 해 9월13일 집에서 사망했다.

근로자성에 대한 판단

이 사건의 원고는 박씨의 유족인 김아무개씨다.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원고는 업무상재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과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박씨가 회사의 대표이사이므로 산재보상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98년 6월 ‘박씨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우선 대표이사란 주식회사의 업무집행권을 갖는다. 회사의 주주가 아니어도 회사의 영업에 대해 모든 법적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고 소정의 임금을 받는 고용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 할 수 없다.

대표이사인 박씨가 업무수행과 관련해 회사의 대주주로부터 사실상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 해도 회사로부터 부여받은 대표이사로서의 법률상 권한이나 책임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씨가 회사를 대표하는 업무를 수행한 사실에 비춰볼 때 박씨를 임금을 목적으로 한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의 경우 서류상 대표이사에 불과한 박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것인가, 아닌가가 핵심이다. 법원은 기존판례(대법원 94년 선고 93누12770)를 인용해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법원은 이른바 ‘월급쟁이 대표이사’라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고, 모든 법적 권한을 회사로부터 위임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박씨의 경우는 회사의 대주주로부터 사실상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 그렇지만 대표이사로서의 지위마저 상실된 것은 아니라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박씨가 대표이사로 대외적 업무를 수행한 사실에 비춰보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고 밝혔다.
또 회사에서 박씨를 근로자에 포함시켜 산재보험료를 납입한 사실이 있지만 법원은 이를 근로자성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관련판례
서울고등법원 1998. 6. 9. 97구33029 유족보상일시금등부지급처분취소
 

<2009년 3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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