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외환위기가 중산층의 몰락을 몰고 왔다면, 최근의 경제위기는 영세자영업자‧비정규직‧여성 등 '아래로부터'의 몰락 양상을 띠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틈타 "직장은 남성에게 맡기고, 여자는 집안일에나 신경 쓰라"는 가부장적 논리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최저임금법과 비정규직법 개정 움직임은 노동시장 내 약자인 여성을 두 번 울리고 있다.


■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여성노동자 '구매력' 높여야

경제위기 상황에 여성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구매력 개선'이다. 구매력을 개선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거나,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거나, 주택구입비용을 비롯한 공공서비스비용이 내려가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임금삭감은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임금 여성의 구매력을 높여 유효수요를 늘리고, 이를 통해 내수를 진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구매력을 높이려면 일자리 창출 여력이 있는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공공부문에서 적극적으로 여성인력을 흡수해야 한다. 병가나 출산․육아휴직 인원을 감안해 대체인력을 미리 뽑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유휴인력의 빈자리를 대체할 사람을 미리 뽑자는 것이다. 여성청년할당제도 등을 도입해 활용하면 효과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안전망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대부분 가족단위로 설계돼 있는데, 이는 남성생계부양모델을 기초로 한 것이다. 때문에 한부모여성이나 처녀가장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보험을 개인단위로 적용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경력단절로 힘들어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열악한 형태의 일자리가 아니라, 대졸 여성까지 포괄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경제위기에는 최저임금 올려야

우리가 고용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성 고용의 증진이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개편에 있어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위기 시에는 여성노동자들이 불안정 고용과 해고의 위협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는 점에서, 차별 해소는 이전보다 정책상의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지난 10년간 여성고용정책의 지체를 겪은 한국과 달리 유럽연합(EU)은 성평등 정책의 정착과 다양한 고용정책의 확장을 시도했다. 성별 분리된 고용통계의 사용, 적극적인 예산 배치, 각 정책이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 등의 노력이 진행됐다.
한국보다 현저히 낮은 임금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아직도 남녀 간 임금격차 감소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시에는 여성들이 더 많은 고용상의 어려움을 겪게 돼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위기 시의 최우선 정책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을 통해 무분별한 비정규직의 확대를 막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몇몇 국가들이 최저임금을 30% 이상 급격히 상승시키는 정책 역시 최저임금 수준에서 더 많이 고용돼 있는 여성노동자를 위한 정책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 임금소득자 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임금은 2006년 기준 5.4배로, 평균 2~3배에 불과한 선진국들에 비해 임금불평등이 매우 심하다. 임금 소득자 내부의 불평등이 악화된 데에는 비정규직의 남용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다시 사회양극화외 중산층의 쇠퇴를 낳고 있다. 여성고용평등이 증진됨으로써 발생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새로운 수요를 낳아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긍적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 김경자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 - 남자 혼자 벌어서는 살 수 없는 세상

경제위기가 여성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남자는 일용직 취업자가 주로 감소한 반면, 여성은 상용직 위주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일정 규모 이상의 정규직 여성 또한 극심한 고용불안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경제위기 전후 변함없이 여성 등 사회취약계층에 반하는 정책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최저임금마저 깎고, 비정규직법을 개악하려 한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의 65%가 여성이다.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고 이 중 대다수가 기간제노동자다. 파견노동자 중 여성의 비중은 약 55%에 달한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관련법 개정은 여성노동자의 삶의 기반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노동자를 먹고 살게 해줘야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수록, 내수는 위축될 것이다.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이여, 회사가 어려우니 직장은 남성에서 넘겨주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또 다시 작동하고 있다. 이미 남자 혼자 벌어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이 같은 주장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 정승희 한국노총 부대변인 - '해고 1순위' 떠밀리는 여성

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이후 △여성 조기정년제 △결혼임신출산 퇴직제 △은행의 여행원제도와 같은 성차별적 제도는 거의 사라졌다. 또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과 여성 총리 같은 고위직이 탄생하는 등 사회분위기 역시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여성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남녀 간 임금격차 또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로는 여성노동자를 '해고 1순위'로 떠밀고 있다. 올해 여성의 고용문제가 어느 해보다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낮추기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위기 극복 정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노총은 제101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 우선해고 금지 △여성일자리 외주화‧용역화‧하도급화 반대 △양질의 일자리 확대 △노조 내 할당제 이행 △일과 가정의 양립 실현 △성차별․성폭력 없는 일터 만들기 △여성노동자 조직화 및 조직력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선정해 추진할 계획이다.

■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 - 실종된 여성실직 대책

최근 10년간 여성 대졸자는 2배 이상 늘었지만, 경제활동참가율은 미미한 수준의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2009년 1월 현재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47.8%에 불과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상담분석 결과 10명 중 7명이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10명 중 3명만 고용보험에 가입된 상태다. 이 지표만 보더라도 여성이 빈곤에 빠질 위험은 너무 높다.
올해 여성부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취업지원 활동과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보호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직 여성에 대한 지원책 고민은 없다. 많은 여성이 실직위기에 내몰리고 있는데, 여성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경험했듯 경제위기 상황에서 구조조정 1순위는 여성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끌어올리고, 고용의 기회와 임금에 있어 차별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출산과 보육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최소한 보장된 산전후휴가도 사용할 수 없는 비정규직 여성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시급하다.

■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 시대역행적인 '남성생계부양론'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최근 경제위기를 틈 타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차별이 노골화되고 있다. 여전히 여성에게 임신출산이 노동지속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정리해고의 기준이 되고 있다. 외환위기 때와 같은 '여성 우선 해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가정경제구조가 부부공동 생계부양모델로 전환된 지 오래됐고, 한부모여성이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로 여성을 경제위기 때마다 직장에서 내쫓는 것은 시대역행적이다.
출산과 양육 등을 이유로 여성을 직장에서 퇴출시키면 저출산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또 남성이 느끼는 생계부담이 커지고,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이 심화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남성생계부양모델 부활 담론을 철회하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3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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