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제관공으로 일하던 플랜트 건설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후 플랜트건설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에 눈길이 쏠렸다. 이에 따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2006년부터 여수·광양산업단지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측정조사가 마무리되면 하반기 평가위원회를 거쳐 역학조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김은아 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 소장직무대행은 3일 “비정기적인 작업 평가를 위한 일정을 잡다보니 조사 기간이 길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단의 연구용역으로 석유화학플랜트 건설노동자의 건강보호 방안을 연구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연구책임자 최상준 대구가톨릭대 산업의학과 전임강사)는 최근 한국산업위생학회에서 연구내용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매달 발간하는 ‘안전보건 연구동향’ 3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여수·광양산단 역학조사 올해 마무리

여수산단은 국내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업단지다. 지난해 10월 한국산업단지공단 여수지사 통계에 따르면 여수산단에는 GS칼텍스 정유를 포함한 68개 석유화학업체, 73개 기계 업체 등 모두 174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여수산단에서 일하는 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은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산하 여수지역건설노조(위원장 장수익)에 조직돼 있다.
여수산단에서는 지난 97년 노동자들의 유해물질 노출실태와 건강상태에 대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당시에는 화학플랜트 공장에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만 조사 대상이었고, 화학물질 노출수준도 매우 낮았다. 2002년에는 여수지역 벤젠 노출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사가 실시됐고, 2006년부터 올해까지 여수·광양산단 역학조사가 실시된다.

안전교육 비율은 높으나 내용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 결과 여수산단 플랜트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보건교육 비율은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수시 안전교육을 실시한다는 응답이 91%였다. 작업 현장에 위험 요소가 많은 석유화학 플랜트라는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채용시에는 발주자와 원수급자가 교육을 실시하고, 공사중에는 주로 하수급자와 여수건설노조가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교육 내용이다.
건설노동자들과의 면담 결과, 교육이 안전사고 예방 위주로 실시된다는 응답이 많았다. 작업현장 주변 공정이나 배관에 어떤 위험물질이 있는지, 건강에 미치는 유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보건’ 관련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유해물질 아는 발주자가 나서야

최상준 대구가톨릭대 전임강사는 “안전보건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주자인 석유화학 플랜트 업체가 교육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인이 사업장 공정을 이해하기에는 복잡하고 난해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폐쇄적인 배관으로 돼 있어 내부에 어떤 물질이 흐르는지, 얼마나 유해한 지는 발주자만이 알 수 있다.

작업환경측정을 위해서도 발주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수산단 건설업체에 대해 작업환경측정 실시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상용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63%가, 일용직 건설노동자에 대해서는 54%가 실시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과의 면담결과, 대부분의 직종에서 작업환경측정이 실시된 바 없다는 응답이 나왔다.
플랜트 건설노동자에 대한 작업환경측정이 가장 필요한 시기는 대보수 작업 기간이다. 석유화학플랜트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 근거해 주기적으로 고압 설비의 안전성 평가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상준 강사는 “작업환경측정 역시 공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발주자가 실시해야 한다”며 “측정 결과에 대해서도 안전보건교육을 통해 건설노동자에게 설명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산업보건센터 도입하면 어떨까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정보를 알리는 물질안전보건자료도 플랜트 건설노동자에게 맞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는 화학물질을 직접 제조·수입·사용·운반·저장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 중에 간접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건설노동자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복합적인 석유화학 공정에 노출되는 건설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의 유해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법이 모색돼야 한다. 연구소는 작업 전 발주자로부터 발급받는 작업허가서 보완과 배관·용기에 대한 유해물질 태그<사진 참조> 도입을 제안했다.

여수산단 비정규 건설노동자의 건강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발주처 역할 강화와 함께 지역산업보건센터 도입도 제안됐다. 단기간 고용계약을 맺고 자주 이동하는 노동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건강진단과 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역단위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반월시화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지역산업보건센터 도입을 제안했다. 노동자들의 건강진단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설고용보험 카드를 활용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2009년 3월4일>
 
 

여수·광양산단 산재승인 사례는?
 
여수·광양지역에서 제관공으로 일했던 박아무개(당시 50세)씨는 지난 2005년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 받고 입원치료를 하다가 한 달 만에 폐혈성쇼크와 다발성 장기기능부전으로 숨졌다. 그는 석유화학공정에서 시설물설치와 해체작업을 통해 일정수준 이상의 벤젠에 노출된 것이 인정돼 산재로 인정받았다.
3일 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에 따르면 배관용접공인 은아무개(51)씨도 지난 2007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78년부터 원자력발전소·포항제철·광양발전소·여천산단·여수광양 석유화학단지 등에서 30년 넘게 배관용접공으로 일했다. 은씨는 지난해 산재승인을 받아 현재 요양중이다.
여수지역건설노조 조합원 가운데 직업병으로 산재승인을 받은 노동자는 6명이다. 지난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1명, 3명의 플랜트 건설노동자가 폐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2006년과 지난해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폐암에 걸린 이아무개씨는 지난 2006년 산재신청을 했지만 불승인이 나서 현재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행곤 노조 부위원장은 “건설노동자들을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퍼지기간'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퍼지(purge)작업 이란 셧다운 공사를 하기 전에 배관 안의 이물질을 모두 제거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 기간이 충분하게 보장돼야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노조는 올해 새로운 노동안전보건사업으로 소음성 난청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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