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와 리먼브러더스 파산, 멜라민 파동. 연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살림의 경제학'(인물과사상사·1만3천원)의 저자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는 '예(禮)'의 붕괴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승례문 붕괴는 예의가 붕괴하고 속물근성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엄중 경고하는 것이고, 리먼브러더스의 붕괴는 '세계화' 맹신 세력들에게 '카지노 자본주의'의 종말을 엄중 경고하는 것이다. 멜라민 사태는 예를 잃고 돈에 미친 자들이 남의 생명을 대가로 자기만의 돈벌이를 도모하는 파멸적 경제가 창궐함을 고발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집착은 불행을 부르고, '돈벌이 패러다임'에서 결국 승자는 없다는 것이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삶의 행복'을 맡겨야 하는가.

'돈벌이 패러다임'에 승자는 없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나라든 돈을 잘 벌면 '경제가 돌아간다'고 하고, 돈벌이가 잘 안 되면 '경제가 잘 안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을 '돈벌이 패러다임'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같은 돈벌이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것이 '사다리 질서'인데,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사회질서 속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옆사람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간다. 자기보다 낮은 이는 통제하고 높은 이에게는 충성을 다하며, 오로지 사다리 오르기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저자는 이 같은 사회구조가 억압과 착취, 기만과 파괴를 일삼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건강하고 온화한 관계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내면과 정신까지 파괴한다고 경고한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살림의 경제'가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내면과 정신까지 살리는 '살림의 경제'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 같은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생산성 향상 운동 보다는 '생산성 저하' 운동을, 모두 부자되기 운동보다는 '두루 소박하게 살기' 운동에 힘써야 한다.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먹고 더 적게 쓰면서 더 많이 존재하고 더 많이 관계하며 더 많이 행복해지는 그런 삶이 가장 보편적인 해답이 아닐까.

자율적 생태공동체에서 상부상조하고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줄이면서 살자'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경제(經濟)의 본 뜻인 '살림살이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영국 캐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명제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너도 올라갔으니, 나도 올라가겠다'는 식은 참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극히 일부가 사다리 오르기에 성공한다는 그 가능성 때문에 이 세상 모두가 '나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모두 '사다리 게임'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진정한 대안은 "네가 올라간 곳이나 길이 잘못 되었으므로 나는 전혀 다른 '살림의 길'을 찾겠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살림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자율성'과 '연대성'을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노동조합, 언제까지 '보험회사'에 머물건가?

그렇다면 살림의 길, 즉 '삶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대안사회를 열기 위한 노동진영의 숙제는 무엇일까.
저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세우려는 사회운동이 과연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짚어볼 시점이라고 충고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노동진영은 운동 이념과 조직 방식, 투쟁 전략 등에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노동조합이 '보험회사'에 머무는 한, 노동운동에 대안 만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노동진영이 뼈를 깎는 '자기 부정'을 거쳐야 비로소 '자기 긍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토론과 실험, 성찰과 저항도 노동계가 잊지 말아야 할 과제다. 저자는 "잘못된 현실을 고쳐 나가기 위해 만나고 논의하고 뭔가 새롭게 만들어가는 행복한 과정이야말로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며 "모두를 이롭게 하는 살림의 경제학을 위한 폭넓은 토론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매일노동뉴스 3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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