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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는 구조조정

정부가 오늘 기업 구조조정 방향과 보완대책을 발표한다. 기업 구조조정 방향은 최근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윤 장관이 밝힌 기업 구조조정 원칙은 △채권금융기관 중심으로 상시적 구조조정 △상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 보완, 산업정책적 측면이 반영될 수 있도록 독려 △ 시장 자체의 자발적 구조조정 병행 등이다. 윤 장관은 “회생 불가능한 한계기업을 시장에서 퇴출 해야, 경쟁력 있고 생존가능한 기업에 충분한 자금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장관의 발언을 미루어 보면 상시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되 자발적인 구조조정도 독려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윤 장관의 발언에는 외환위기 시절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은 ‘해고와 실업이 구조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0년 전인 1998년 실업률은 8%대, 실업자는 180만명 이상을 웃돌았다.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DB)에 따르면 해고율은 1996년 1.5%인 데 반해 1998년에는 10.2%까지 증가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희망퇴직을 감원의 방식으로 채택했지만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이 살려면 감원부터 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요된 결과다. 떠난 노동자는 회사와 동료를 원망했고, 남은 노동자는 회사를 불신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재벌기업은 ‘개혁’되지 않았다. ‘재편’ 됐을 뿐이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자산총액기준 상위 10대 그룹의 소속된 계열사는 426곳으로 지난 2003년에 비해 116곳이 늘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기업이 설비투자보다 인수합병에 매달린 결과다. 한편으로 재벌기업들은 정규직 직접고용을 핵심업무에 한정하고, 기간제나 사내하청·외주화를 적극 활용했다. 낮아진 생산비용, 늘어난 수출 덕에 대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10대 그룹 계열사 64곳이 보유 중인 잉여금 규모가 19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구조조정에 따른 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됐고, 재벌들은 되레 살을 찌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외국 투기자본도 구조조정 덕을 많이 봤다. 부도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은 인수합병 시장에서 외국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지난 99년 만도를 인수한 선세이지는 인수 8년 만에 투자금액(1천890억원)의 4배에 해당하는 7천743억원의 차익을 얻고 떠났다. 이러한 ‘먹튀’(먹고 튀는) 외국 투기자본의 사례는 외환위기 이후 흔한 일이 됐다.

이렇듯 우리사회에는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의 후유증이 깊게 남아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여전히 감원 위주의 구조조정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단, 외환위기 시절에는 금융·공기업·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감원이 진행됐다면 최근에는 달라졌다. 정규직을 감원하고 그 자리에 채워놓은 외주업체·간접고용·직접고용 비정규직 순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안전망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심각한 사회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구조조정 방향이 외환위기 시절과는 달라야 한다. 기업들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감원 위주의 고용유연화에 나서기보다 임금체계나 작업장 또는 교대시스템의 혁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사정이 나은 대기업은 과감한 설비투자를 통해 위기 극복 후를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밝혀 온 구조조정 방향을 보면 부실기업 퇴출과 감원·임금삭감 등 비용절감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이러한 획일화된 지원방향으론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없다. 경제위기의 파급효과도 다르고 기업사정도 편차가 있는 만큼 산업·업종별 특성과 처지를 고려한 장·단기 지원대책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위한 고용유지지원금을 더 확대하고, 불가피하게 실직한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살려면 기업단위 보다 산업·업종단위 노사의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 기업단위 노사가 찾을 수 있는 구조조정의 해법은 매우 제한돼 있다. 산업·업종 차원의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일자리 나누기와 만들기’를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미 국내 노동조합의 40%가 산업별노조로 전환됐고, 교섭경험도 있는 만큼 논의의 전제는 마련돼 있다. 정부나 사용자측이 이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은 양극화와 차별, 심각한 빈부격차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더 이상 실패한 경험을 반복해선 안 되며,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꿔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월19일>

박성국 편집국장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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