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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와 노조간부의 혁신"스스로에 관대한 노조간부가 노동운동 좀먹어"
오재현 기자 ⓒ 매일노동뉴스
최근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2005년 발생한 현대차노조 채용비리 사건과 강승규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의 뇌물수수 사건에 이은 이번 성폭력 사건을 두고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소통과혁신연구소(소장 정성희)는 지난 16일 오후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노동조합 간부의 혁신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노조간부들은 겸허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는 정성희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고, 최순영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하부영 민주노총 전 울산본부장, 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 김성란 민주노총 기획국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좌담회 내용을 지상중계한다.

"우리 스스로에 너무 관대했다"

정성희(이하 정) : 최근 민주노총 간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채용비리·뇌물수수에 이은 세 번째 불미스러운 사건이다.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이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의 의지나 활동행태가 예전에 비해 흐트러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란(이하 김) : 민주노총이 예전 같지 않다. 조직력과 규율이 약해졌다. 조직이 튼튼하면 조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조합원이나 간부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나타난 민주노총 간부의 도덕적 해이는 근본적으로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체가 많이 허약해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성우(이하 이) : 민주노총과 운동권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성폭력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문제가 불거지기는 했지만, 일상화되고 구조화된 문제가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못한 것이다.
87년의 우리는 확실히 사회적 약자를 대표했다. 하지만 지금 노조간부들은 현장에서 어떤 행세를 하고 있나.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노동운동의 외형적 성장에 도취돼 정작 민주노총이 책임져야 할 몫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나 정권의 탄압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것 아닌가. 그냥 우리에게 너무 관대했던 것 아닌가.

"그래도 골방멤버들이 집회 머릿수 채워"

최순영(이하 최) : 70년대에는 마음의 무장 없이는 노동운동을 할 수 없었다. 당시 노조간부들은 개신교단체나 가톡릭단체의 도움을 받아 교육을 받았는데, 보통 4박5일 이상 걸리는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개인적으로 휴가를 냈다. 지도자의 자세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정부나 자본에 꼬투리를 잡히면 모든 게 끝장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탄압이 심한 만큼 간부들의 자기무장이 철저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간부들도 스스로에 대한 무장과 각오가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과 함께했고, 독재정권 하에서는 민주화운동과 함께했다. 노동운동이 지금은 어떤 운동과 보조를 맞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하부영(이하 하) : 최 최고위원의 말을 들으니 예전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같은 골목을 두세 번 돌아 골방에 모여 학습하던 기억이 난다. 요즘 집회 한번 하려면 머릿수 채우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도 그 옛날 골방학습 멤버들이 지금도 열심히 머릿수를 채워 주고 있다. 학습을 통한 무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장 얘기를 조금 하자면, 현재 활동하는 노조간부나 활동가 중에 87년 이전에 공장에서 근무했던 사람은 20~30%밖에 안 된다. 대부분이 87년 이후 노조활동을 시작한 사람이고, 이들은 민주노조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모른다. '민주'와 '어용'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러면서도 정작 '조합원들이 실리적이고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어 노조 하기가 어렵다'고 핑계를 댄다.

"학출에서 비롯된 정파 갈등"

정 : 예전에 각종 소모임이 노조간부와 조합원을 위한 학습과 단련의 공간이었다면, 요즘엔 현장조직과 정파조직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조직과 정파조직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 : 현장조직들이 일부 교육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온 치열함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현장조직들이 오히려 민주노조의 발전에 해악을 끼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가령 어떤 노조에서 대의원 선거를 한다고 하자. 정작 대의원 후보들은 자기 소견문조차 쓸 줄 모른다. 현장조직이 이를 위탁받아 대신 작성하는데, 특정정파의 의견을 고스란히 옮겨 적는다. 어떤 조직은 선거 지침까지 만들어 노조의 생명인 자주성을 갉아먹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20년 넘게 누적돼 왔다. 선거를 위해 존재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현장을 휘젓고 다니는데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 있겠나.

최 : 민주노총도 그렇고 민주노동당도 그렇고 정파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70년대에는 노조간부들이 한몸이 돼 움직였다. 80년대 들어 이른바 '학출'(학생운동 출신)이 노동현장에 많이 들어오면서 노조 활동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학출이 5명이면 5배 힘들어졌다. 학출이 현장을 망쳐 놓기 시작했고, 그 뿌리가 오늘의 정파 문제로 이어졌다.
정파 갈등도 결국 욕심에서 비롯된 문제다. 사상이나 정견의 차이는 사실 백지장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자기 탓은 않고 남 탓만 일삼는 것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조합원이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조합원들을 자기 욕심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탱자탱자 놀기만 한 것도 아닌데…"

김 : 90년대 초 공장에 다녔다. 지금 내가 현장에 다시 가면 어떤 생각이 들까. 노동운동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 누군가 뛰어난 인물이 문건을 하나 만들어 전국에 뿌리면, 이것이 전체 운동의 기조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규모가 대변하듯, 지금은 대중운동의 시대다. 현장의 분위기도 달라졌고, 정부와 자본도 세련돼졌다. 노조간부만 타성에 젖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고 노조간부들이 탱자탱자 놀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나름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부나 자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정부와 자본의 장악력이 커질수록 노조 활동가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커졌고, 빈곤한 철학과 사상이 누수현상을 불러 왔다.
87년 이후 22년간 노동운동은 민주노조 깃발을 세우고 열심히 달려 왔다. 그러나 정부나 자본도 열심히 달렸다. 그러는 사이 노조간부들은 '조합원과 함께'라는 명제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 : 교육 받아야 할 대상은 조합원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노조간부가 많다. 조합원을 대상화하고, '현장이 움직이지 않아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간부들이 적지 않다. 노조에서 선전전을 한번 하더라도, 위원장은 쉬면서 조합원만 내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이 노조를 믿을 수 있을까.
간부들부터 진정성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노동운동에 대한 철학이 확고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만족적 운동, '이 정도 했으면 그래도 잘한 것 아니냐'는 안이한 평가가 사회 장악력을 자본에게 넘겨준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대중투쟁이 진행됐지만, 민주노총이 이를 제대로 조직해 총자본에 타격을 준 적이 없다. 적당한 선에서 '동력'을 탓하며 회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촛불시위 정국에서 노동계는 오합지졸이었고, 대중의 자발적 투쟁에 빚만 졌다. 책임 있는 간부라면 뼈 아프게 반성할 일이다. 호남향우회나 해병전우회 못지않은 단결력을 자랑했던 민주노총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노동운동의 현실 직시하자"

정 : 지금까지 운동주체의 혁신에 대해 얘기했다.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노총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이 : 성폭력 사건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에 민주노총과 운동사회의 어떤 문제가 함축돼 있는지 찾아내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김 : 이번 사건을 겪으며 대다수 민주노총 간부들은 "민주노총의 입지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면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서 대국민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를 위해 간부들이 일꾼을 모아 대처방안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다행히 희망은 있다. 정파를 떠나 지금보다 더 큰 단결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고, 특히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 정파적 이해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현장에 있다"…간부부터 '일신우일신'

하 : 노동운동의 슬로건이 '나부터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로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거품과 위선을 털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제2의 민주노조운동'도 필요하다. 전태일 열사 정신 배우기 운동을 광범위하게 펼치는 건 어떨까. 전태일 정신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조합원부터 간부까지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김 :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려면 조직력과 투쟁력이 필수다. '민주노총이 나서 달라'는 국민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다면 국민적 신뢰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조직력과 투쟁력 회복의 열쇠는 현장에 있고, 현장 간부는 미다스의 손이 돼야 한다.

이 : 예전에 많이 하던 말인데 '현실이 비관스럽더라도 의지로 낙관하자'는 오래된 구절이 생각난다. 희망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간부들부터 '일신우일신' 해야 한다. 남들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해지자.



<매일노동뉴스 2월18일>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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