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합니다. 그것이 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노동의 위기에서 파생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올해는 경제위기 한파가 일자리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넣지 않고 버리거나, 분리하지 않고 버리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쓰레기 무단투기를 단속하는 공무원과 환경미화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 증거는 언제나 남기 마련이다.

체액 묻은 약봉투 닦고, 찢어진 우편물 맞추고

서울시 성동구청 청소행정과 ‘빨리처리대기반’(골목청소기동단). 지난 6일 오전 9시, 8개조로 나눠진 반원들이 각자 맡은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종석(54·기능8급) 반장과 운전을 하는 박민선(44··기능8급)씨, 그리고 환경미화원 김용댁(40)씨가 1톤 봉고트럭에 올랐다.
금호2가동 어느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쓰레기가 눈에 띈다. 동사무소에서 발부한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은 텔레비전 두 대. 당연히 무단투기다. 규격봉투에 넣은 쓰레기도 규정을 어기긴 마찬가지다. 금호2가동 쓰레기 배출일은 전날(5일). 제때 나온 쓰레기는 이날 새벽에 수거해 갔고 지금 나와 있는 것들은 배출날짜를 어긴 것이다. 저녁 7시~자정인 배출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환경미화원 김씨가 면도칼로 쓰레기봉투를 찢었다. 무단투기자들이 남겨 놓은 증거를 찾기 위해서다. 콧물인지, 가래침인지 노란 액체가 잔뜩 묻은 약봉투가 발견됐다. 김씨가 휴지로 약봉투를 닦아 냈다. ‘박ㅇㅇ’.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딱 걸렸다. 반원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무단투기된 쓰레기 현장과 약봉투를 찍었다. 나중에 이름을 조회한 뒤 근처에 사는 주민으로 확인되면 증거사진을 동봉해 ‘과태료 부과 예고서’를 보낸다.
영수증이나 우편물을 찢어 버린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마침 다른 쓰레기봉투에서 갈기갈기 찢긴 우편물이 발견됐다. 김씨가 땅바닥에 앉아 퍼즐게임하듯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성된 주소가 나타났다. 김씨는 사진을 찍고 투명테이프로 조각을 연결했다.
주민들의 이름이나 주소가 적힌 각종 영수증·고지서·우편물 등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아이들 이름이 적힌 일기장·통장·건강검진표는 말할 것도 없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과태료 고지서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개봉되지 않은 우편물은 증거로 채택하기 힘들다. 집주인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 우편함에서 곧바로 쓰레기봉투로 향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사람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주차단속은 증거가 확실하지만 쓰레기는 쉽지 않거든요.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겁니다. 벌금을 물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안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이종석 반장의 말이다.
텔레비전과 같은 대형 생활폐기물이나 빈병 등 재활용쓰레기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반장은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렸다고 지문감식까지 할 순 없지 않냐”고 말했다.
“버렸잖아요”…“안 버렸다니까요”

그렇게 돌아다니다 발견한 여섯 번째 무단투기물. 규격봉투에 넣지도 않는 데다 찢어 보니 음식물 찌꺼기까지 섞여 있다. 벌금 20만원짜리다. 반원들이 증거물을 찾고 있는데, 바로 앞 건물에서 40대 아주머니가 나와 따지기 시작했다.
“그거 나중에 분리해서 버리려 했던 겁니다.”
이 반장이 반박한다. “여기 이렇게 길가에 버리신 거잖아요?”
아주머니는 오히려 당당했다.
“집 앞에 있는데 뭐가 버린 거예요. 아직 규격봉투에 넣지도 않았잖아요. 아저씨가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제 마음 속에 들어와 봤어요?”
“이렇게 집 앞에 내놓으면 배출이 된 겁니다. 단속대상입니다.”
실제 쓰레기를 모아 놓는 곳에 부착된 홍보물에는 '쓰레기봉투를 자기 집 앞에 놓아 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쓰레기봉투를 집 앞에 내놓는 순간, 그 쓰레기는 '버린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대다수 주민들은 단속에 걸리고 나서야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단속반이 양보했다. “그러면 오늘은 그냥 갈게요. 제발 음식물 좀 섞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반원들은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증거가 확실한 불법주차단속도 툭하면 시비가 붙는데 쓰레기 무단투기단속이야 오죽할까.
규격봉투에 넣어 정해진 날짜에 쓰레기를 배출해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진다. 매립지에서는 일일이 쓰레기봉투를 낫으로 찢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일반 쓰레기에 재활용품이나 음식물이 섞여 있으면 반송된다. 반송이 반복되다 보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쓰레기의 경우 매립지 반입이 금지될 수도 있다.
이종석 반장은 “매립지 반입이 금지되면 수거한 쓰레기는 버릴 데가 없다”고 말했다.

‘길다방’이 쓰레기장으로

재개발 공사가 시작된 금호3가동 쪽으로 향했다. 이날 새벽 순찰을 돌던 이 반장이 아파트건축 공사장 옆에 무단투기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민원이 들어왔는지 동사무소 직원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 동네 주민들은 혀를 찼다.
재개발에 따라 이사를 가는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다른 주민들은 당연히 버려도 되는 줄 알고 또 버리면서 계속 불어났다고 한다. 근처 옷가게에 있던 한 할머니는 “저기는 원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얘기하고 노는 ‘길다방’이었는데 한 달 전부터 저렇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폐목재더미를 트럭에 실었고, 구청 단속반원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약봉투가 나왔고 찢어진 은행전표를 맞춰 이름을 찾아냈다. 이어 '황당한' 우편물 봉투가 발견됐다. 구청의 단속업무를 잘 알고 있었는지, 이름과 주소가 적힌 부분만 정확하게 오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원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연신 헛웃음을 터뜨렸다.
작업을 지켜보던 동네 주민 이기만(72)씨는 “감시카메라 좀 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전에 카메라가 달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 떼고 나니까 또 버려요. 봉투값 아껴 봐야 얼마나 된다고.” 이씨는 “몰래 버리는 사람을 보면 신고하겠다”며 성동구청 청소행정과 전화번호를 받아 갔다.
단속반은 봉고트럭에 가득 실린 무단투기 쓰레기를 집하장과 재활용품 분리장, 소각장에 차례차례 내려놓았다.

자녀들도 모르는 ‘쓰레기 단속’

이 반장이 성동구청에서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을 한 지 5년째. 빨리처리대기반 소속이라면 환경미화원들은 물론이고 기능직공무원들도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 반장처럼 사무직렬이든, 박민선씨처럼 운전직렬이든 상관없다.
그나마 이 반장은 23년간의 기능직공무원 경력을 인정받아 반장 직함을 달았다. 구청 청소행정과 사무실에는 그의 책상도 있다. 다른 동료들은 구청 지하주차장 한켠에 마련된 조그만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 반장은 “만약 동사무소에서 일했다면 일반직 공무원들이 꺼리는 민원창구에 앉아 있거나 더 열악한 현장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일을 하다 보면 더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도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잘 몰라요. 그나마 우리는 괜찮아요. 새벽 2시부터 쓰레기 수거에 나서는 환경미화원들이 진짜 고생이지요. 우리는 그들의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뒷받침할 뿐입니다.”
혹시라도, 자기가 버리지도 않은 영수증을 증거로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오더라도 공무원들을 너무 욕하지는 말자. 공무원과 환경미화원들은 악취를 참으며 쓰레기를 뒤졌을 뿐이고. 지자체에서 정한 조례대로 집행했을 뿐인데.


<매일노동뉴스 2월16일>
 
경기침체로 저소득층 무단투기 증가
일부 지자체, 연탄재 무료수거·과태료 면제
성동구청에서 쓰레기 무단투기단속반은 ‘빨리처리대기반’으로 불린다. 청소업무는 물론 급한 도로보수 등의 일을 함께했을 때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골목청소기동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빨리처리반의 업무는 새벽 6시 순찰부터 시작된다. 성동구 각 동을 돌면서 새벽 쓰레기 수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무단투기 장소를 확인한다.
새벽 순찰업무에는 두 명 정도의 기능직공무원으로 구성된 1개조만 투입되지만 오전 9시~오후 6시 단속업무에는 총 8개조가 나선다. 1개조는 기능직공무원과 구청에서 고용한 환경미화원, 공익근무요원으로 구성된다.
각 지자체마다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업무 방식이 다르다. 지자체의 세수·인구밀도·폐기물 배출량에 따라 달라진다. 성동구는 일반쓰레기 수거는 민간대행업체가, 재활용·대형폐기물 수거와 단속업무는 구청이 직접 하고 있다. 쓰레기 수거부터 단속업무까지 외주화한 지자체도 있다. 최근에는 경기불황에 따른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령자를 대상으로 단속인원을 뽑는 곳도 있다. 집중단속 기간에 맞춰 계약직을 대거 채용하는 지자체도 있다.
경기침체에 따라 저소득층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쓰레기 무단투기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지자체의 분석이다. 쓰레기봉투 구입비나 대형폐기물 처리를 위한 수수료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단속건수와 비교해 과태료 부과건수를 줄이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성동구청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에 한해 연탄재를 무료로 수거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단속에 걸리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쓰레기 처리방법을 다시 알려 준다. 이종석 반장은 "소득이 낮은 재개발지역 산동네 주민들에게 최고 20만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부과하기가 쉽지 않다"며 "쓰레기 배출방법을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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