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라는 게 정설이다. 대공황 이전 실업은 그저 '일거리가 없는' 상태로 여겨졌다. 실업자들은 조만간 고용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고, 실업기간 동안 가족 간 상호 부양을 통해 그러저럭 버틸 수 있었다. 미숙련 노동자가 많았던 터라 매년 몇 주간 정도 일거리가 없는 것이 당연시되기도 했다.

대공황 이후 실업은 일년 내내 또는 전업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바뀌었다. 이른바 '공황실업'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이제, 실업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며 크나큰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탐욕스런 권력(동물농장)과 우울한 미래사회(1984)를 소설로 표현했던 조지 오웰의 보고서는 이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공황이 휩쓸었던 1930년대 중반, 맨처스터 근처 소도시 위번의 독신 남성 실업노동자의 겨울나기는 매우 혹독했다. 따뜻한 곳을 찾아 매일 집을 나서는 게 그들의 하루 일과였다. 일정한 거주지가 있었지만 난방비가 없었기에 그들은 영화관과 도서관, 심지어 강연회를 찾아다녔다. 당시 어떤 강연회든 실업자들로 북적였다는 게 오웰의 회고였다.

이런 풍경은 세월이 지났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우리 사회도 외환위기 당시 주요 역사나 지하보도, 거리 공원에서 노숙하는 실업자들이 많았다. 외환위기 전과 후의 실업이 다르다는 것을 뼈아프게 체험한 것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강했던 우리 사회에서 실업은 곧 노동권의 박탈이자 생존권의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2009년 2월, 또다시 한국사회에 실업대란의 공포가 짓누르고 있다. 2월 말 이후 졸업시즌을 맞아 50만~60만명에 달하는 고교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시장에 나온다. 조선·건설·자동차 등 업종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공단에 위치한 고용지원센터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감산·휴업을 통해 버텨온 중소영세 기업들이 이 시점에 이르면 한계에 이른다. '3월 고용대란설'은 이러한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이미 지난 1월 실업급여 신청자가 12만8천명에 달해 1995년 실업급여제도가 시행된 이래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실업급여 예산으로 3조3천265억원을 책정했지만 이는 경제성장률 1% 이상이 될 때를 가정한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실업급여 예산은 빠르게 고갈될 수밖에 없다. 실업급여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 것이다.

고용보험에 의존해 온 실업급여 예산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의 고용과 실업예산의 대부분이 노사가 내는 고용보험에서 지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일반회계(조세)에서 지출을 늘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추경예산을 조기에 투입한다고 밝혔는데 고용 및 실업예산의 일반회계 지출을 늘이는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만 쏟아지는 실업자의 생계와 재취업 지원이 가능하다.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도 높여야 한다. 실업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생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80% 이상인 반면 우리의 경우 28%에 불과하다. 실업급여 상한선은 하루 4만원, 한 달에 120만원이며, 최대 8개월까지 받을 수 있다.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32만6천609원보다 적다. 이러다 보니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불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우리의 실업급여 제도는 보험 가입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더라도 못 받는 이들도 많다. 최근 평균 실업자는 77만여명 정도인데 실업급여 받은 이들은 약 40% 정도이다. 실직 자영업자·자발적실업자·장기실업자는 실업급여의 사각지대에 있다. 사각지대를 메우고, 급여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특히 자발적 실업자의 경우 실업기간이 6개월이 지나면 장기실업의 함정에 빠진다는 연구기관의 보고가 있는 만큼 이 시점부터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

차제에 우리의 실정에 맞게 '실업부조'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유럽식 실업부조의 경우 보험 가입자만 헤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조세를 낸 국민 모두에게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재원도 보험료가 아니라 조세에서 마련된다. 노동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만큼 실직을 당한 국민은 모두에게 지원을 해야 한다는 발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헌법에 노동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면서도 실업에 따른 지원은 철저히 보험 수급자 원칙만 강조해 왔다. 물론 오랫동안 고용보험제도를 운용해 온 만큼 유럽식 제도를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형 실업부조'를 모색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공황이라는 긴 터널의 초입에 서 있다. 종전 관행에서 벗어난 과감한 발상을 하지 않으면 끝을 알 수 없는 공황이라는 터널을 빠져나갈 수 없다. 종전과 달리 실업급여 제도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매일노동뉴스 2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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