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가 오피니언면을 신설했습니다. 노동계 안팎 주요 이슈에 대해 각계 의견을 들어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현장의 생생한 일상을 담은 칼럼 '현장에서', 취재현장을 발로 뛴 기자들의 생생한 육성 '취재수첩',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노동계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하는 '사진 이야기', 노동문제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목소리 '전문가 칼럼' 등이 매주 목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최근 민주노총 소속 간부의 성폭력 사건에 따른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노총 지도부 전원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파문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성폭력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에 수습책 마련에 나선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조금 더 신속하게 진상조사에 들어갔더라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번 사태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들어봤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민주노총이 사건 발생 이후 신속하게 수습책 마련에 나섰더라면 이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피해자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일단 발생한 뒤라면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보수언론은 연일 민주노총의 부도덕성을 부각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럴 만한 빌미를 민주노총이 제공한 셈이다. 당초 원리원칙대로 사건을 처리했다면 조직적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수습방침이 제시돼야 한다. 성폭력 문제나 비리 문제가 발생할 때 쉬쉬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된다. 민주노총이 이 같은 사건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일종의 매뉴얼을 갖춰야 할 것 같다." 

◆김민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이번 사건이 특이한 사건은 아니다.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주로 피해자의 노동권 박탈 여부와 관련된다. 운동권 내 성폭력은 성격이 다르다. 가해자가 운동의 발전에 기여했느냐 여부가 변수가 돼 가해자를 쉽게 용서하려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 문제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권도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인 수준의 대처가 중요하다. 대중이 민주노총에 실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노총의 뒤늦은 대응은 상식적이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2년 많은 논쟁 끝에 '성폭력·폭언·폭행 금지 및 처벌규정'을 만들었다. 규정은 있지만 실효성은 없다. 이번 기회에 성폭력 관련 대응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 봐야 한다.
보수언론에 책잡히지 않기 위한 단기처방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을 줄이고 예방하기 위한 전담기구를 두고, 제도적 장치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상적인 토론과 대화로 피해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곽정숙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국회 여성위원회)
"안타깝게도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피해 조합원의 분노와 호소를 방치하다 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민주노총 중앙 간부가 개입된 사건인 만큼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다. 간부 개인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민주노총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은 안타깝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도 안 되지만, 조직적 문제로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경우 부모는 매를 들기도 하고 잘잘못을 인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녀가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훈육하는 것이다. 민주노총도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잘못한 간부에게 명백하게 책임을 묻고 민주노총 역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피해자와 일반 조합원들에게 사죄하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민주노총의 몫이다. 뼈 아픈 자성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민주노조운동이 자기정화 기능을 많이 상실한 결과라고 본다.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심지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개인의 범죄가 조직적 범죄로 확대된 것이다.
지도부 총사퇴는 당연한 조치다. 성폭력 자체가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치더라도, 사건 이후 민주노총이 보여준 행동은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다. 민주노총 간부들의 도덕 불감증을 넘어 조직 자체의 위기를 보여 준 것이다. 민주노총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노동계의 크고작은 비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나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도가 실추돼 왔다. 자성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눈에 비친 민주노총은 남성 정규직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집단의 모습이다. 제3자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고, 진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김정명신 문화연대 공동대표
"운동권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울 때는 이른바 '조직 보위' 논리가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민주노총은 엄혹한 시기에 정부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역할론을 내세우며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유보했다.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결국 이 같은 조치가 사태를 악화시킨 주요 원인이 됐다.
민주노총이 청렴결백할 수는 없다. 도덕적 순수함을 강요받을 이유도 없다. 다만 시민들이 민주노총에 거는 기대에는 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진보진영의 역량이 함께 약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이 이 정도로 확대된 배경에는 민주노총 내부 계파갈등도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정파갈등 속에서 사건의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에 대한 실망이 큰 만큼, 기대도 크다. 경제위기와 고용불안, 민주주의 후퇴 등 어려운 시기에 민주노총이 해 줘야 할 역할이 있다. 균형적이고 현명하게 현 사태를 극복하기 바란다." 

◆부성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민주노총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언론이 주도한 측면이 크지만, 원인은 민주노총이 제공했다. 민주노총이 문제를 봉합하려고 했거나,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성 부위원장도 많고, 여성위원회가 별도로 가동되고, 그 어떤 단체보다 규율이 엄격한 민주노총에서 이 같은 일이 왜 발생했는지 따져 볼 일이다.
민주노총이 현 사태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진보진영 전체가 상처를 받게될 가능성도 크다. 이번 사건 피해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재발방지책 마련이 필요하다. 조직의 기풍이 흔들리지 않도록 강력한 지도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저임금법·비정규직법·고용대란 등 민주노총이 대처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조직 복원을 위한 노력을 통해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혜순 전국여성노조 사무처장
"진보라는 개념도 시대에 맞게 변화한다. 운동권이 진보의 개념 변화 속도를 못 쫓아가는 것 같다. 오늘날의 진보는 인권과 개인의 삶의 문제를 포괄한다. 하지만 운동권은 아직도 독재정권 시기의 진보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는가 여부다. 사건 처리 과정이 공개되느냐 마느냐가 핵심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성이 필요하다. 지도부 총사퇴에 대해서도, 총사퇴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보지는 않는다.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묻는 것이 선행돼야지,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직의 정치적 책임이 가해자 개인에게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한시적으로 이번 사건을 전담할 위원회가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 진상규면을 통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여성단체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
 
 
<매일노동뉴스 2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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