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이천 화재참사로 시작돼 이천 화재참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동계는 ‘화재참사’가 아니라 ‘산재참사’라고 지적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국내를 강타했다. 올해 고용불안이 노동계의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규제완화도 예상된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 주요 관계자 연쇄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노동안전 이슈를 돌아보고 상반기 노동안전 정국을 전망한다.<편집자>


IMF 외환위기 이후 산업재해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경제한파가 몰아닥친 지난해도 산업재해자는 전년 대비 6%(5천659명) 증가한 9만5천806명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는 올해 재해 위험사업장을 집중관리해 사고로 발생하는 재해 근로자 1만명 정도를 줄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은 ‘2009년 재해예방 시행계획’을 통해 재해가 많은 22개 업종(제조 17개, 기타사업 5개, 건설 6개) 사업장 10만200곳을 집중관리대상으로 선정하고, 올 한 해 1천955억8천만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현옥(52·사진) 산업안전보건국장은 지난 2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올해는 산업안전보건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반짝효과를 내는 단기사업보다는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인프라를 새롭게 구성하고 연관사업을 패키지로 묶어 집중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10만곳 집중지원…민간시장 적극 활용”

정 국장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 수준을 진단하는 데 있어 여러 잣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산업재해율만 놓고 보기에는 지표의 신뢰수준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안전보건 정책의 깊이나 영향력, 노사의 안전보건 의식 그리고 법령의 합리성과 실천가능성 등을 놓고 따졌을 때 우리나라의 수준이 아직 선진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 국장의 결론이다.

“재해율은 0.7%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IMF를 계기로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재해율도 정체된 상태죠. 산업안전보건 수준을 선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올해 사업장 안전보건의 여건은 그리 좋지 않다. 고용시장이 침체국면에 빠져들고 산업체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절대적인 재해자수는 줄어들 수 있지만 반대로 신규고용이 뚝 떨어져 전체 근로자수가 감소하면서 오히려 재해율이 증가할 수도 있다. 여기에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가 위축되고, 또 고용불안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주의·집중이 떨어질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정 국장은 “올해 반드시 사고성재해를 역전시키겠다”고 자신했다. 지난해 질병이 아닌 사고로 인한 재해자수는 전년에 비해 4천500여명 증가했다. 이를 감소추세로 반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재해발생 사업장과 재해발생 우려가 있는 사업장 10만개를 선정했습니다. 이곳에 가용자원과 기술지원에 쓰이는 비용을 확대해 패키지로 완벽하게 지원할 예정입니다. 올해 재해자 1만명 감소를 목표로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동부는 지난해 추락·전도·협착 등 3대 재해 줄이기 집중사업을 펼치면서 사업장 1만8천여곳을 돌았는데, 올해는 이보다 5배나 많은 규모의 사업장을 집중점검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다. 340여명 정도의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 국장은 “공적 인력으로 5인 미만 사업체를 일일이 방문해 점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패러다임을 바꿔 사업장에서 스스로 자기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해 개선책을 찾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위험성평가제도’ 등의 이름으로 보편화된 시스템이다.

그는 국내에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법령체계 개편과 함께 민간단체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올해 25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협회와 같은 사업주단체와 공동사업을 발굴할 예정이다. 단순 홍보·캠페인을 넘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공동의 사업을 전개하는 형태를 고려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달라지는 산업안전보건정책 가운데 하나다. 내년에는 사업의 규모와 예산을 확대해 산업안전보건 민간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는 마스터플랜 준비하는 시기”

정 국장은 “올해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정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너무 많은 규칙들로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산업안전보건제도를 한꺼번에 손대기보다는 하나하나 풀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5년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작업환경 실태조사가 실시된다. 5인 미만 사업장 전수조사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한 규모다. 정 국장은 이번 조사에 동원되는 조사요원들이 사업장을 돌 때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갖고 나가게 할 생각이다. 지금처럼 난해하고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닌 노동자가 이해하기 쉽게 한 장짜리로 개발된 MSDS를 사업장에 직접 비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환경 실태조사를 마치면 특수건강진단 결과와 함께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인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재원이 필요하다. 정 국장은 “당장 인력이나 예산이 한정된 것은 맞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귀띔했다. 현재 산재보험기금의 8%는 산재예방사업에 써야 한다. 그는 “법적 규정은 8%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8%를 넘어서는 예산을 확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산재보험료율 인하, 특수고용직 유인효과”

지난해 시행된 개정 산재보험법에 대한 평가도 궁금했다. 정 국장은 “아직까지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부분은 없다”면서도 “특수고용직의 낮은 산재보험 가입률에 대해서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특수고용직 4개 직군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혜택이 주어졌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대상자 42만여명 가운데 84%가 적용제외를 신청해 고작 16%(6만7천559명)만이 산재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정 국장은 “보험료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과 사업주의 비협조적인 태도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올해 중기업의 산재보험요율을 인하하면 가입률이 대폭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불공정성에 대해서는 “통계상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업무상질병의 경우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심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어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개정 산재보험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의학계뿐만 아니라 노사가 추천한 전문가들로 하여금 업무상질병을 판정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업무상질병위원회가 여전히 편파적이라고 비판한다.

정 국장은 “요양결정 처리기간이 기존보다 20일 정도 지연된 문제는 있으나 산재승인율 자체는 44.7%(3천482건 중 1천556건)로 시행 이전(2007년 45.4%)과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80~90년대 사업장 절반이상 석면함유”

올해부터 석면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과거에 사용된 석면은 남아 있다. 정 국장은 “사업장 석면사용 실태 표본조사에 따르면 80~90년대 지은 건물의 2개 중 1개는 석면이 함유돼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석면잠복기가 20~30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2010년 이후부터 피해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노동부와 환경부 등 유관부처가 석면피해 구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부는 뉴타운 등 재개발 과정에서 석면 해체·철거작업이 활발할 것으로 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2009년 2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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