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관광버스 기사 박아무개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관광객 20여명을 태우고 서울 영등포에서 출발해 경기도 용인에 도착한 박씨는 차량 맨 뒷좌석에 1미터가 넘는 철근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승객들이 모두 앞쪽에 앉아 있어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쾅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히터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돌에 맞은 줄로만 알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 당일 박씨는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차량을 대기하고 있었다. 차량 바로 옆은 20층짜리 복합상가 공사장. 박씨는 공사장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공사장 관계자는 “외벽 포장을 했기 때문에 철근이 떨어질 리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이 사고는 차량에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그 위치에 승객이 타고 있었거나, 지나가는 시민이 철근에 맞았더라면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최근 건물이 점점 고층화되는 데다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 재개발 현장이 들어서면서 공사장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관련 규제는 건설현장 안에만 적용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도심 곳곳 '위험천만 건설현장'

지난 6일 오전 찾아간 서울 홍제동의 한 버스정류장. 출근시간이 지난 오전 9시30분께였지만 정류장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20여명이 버스를 기다리다 타다를 반복했다. 노선이 다른 버스 11대가 정류장을 오갔다.
버스정류장 바로 뒤편에는 지하 9층·지상 15층짜리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었다. 정류장과 공사현장 사이에는 가림막만 있을 뿐 별다른 안전장치는 없었다. 정류장에서는 공사장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근의 다른 건물 옥상에 올라가 살펴보니 두 대의 러핑형(좁은 현장에서 쓰는 유형) 타워크레인이 계속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정류장에 서 있는 시민들도 공사현장이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아 했다. 거의 매일 버스정류장을 이용한다는 50대 여성은 “공사현장인지 몰랐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소아무개(35)씨는 “건설현장 주변에 있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자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김호례(65)씨는 “버스를 갈아탈 생각만 했지 (가림막 위는) 잘 안 보여 공사현장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무방비에 대형사고 당할 수도

하지만 사고는 불시에 찾아온다. 지난해 10월28일 서울 회현동 신축공사현장. 이날 낮 12시쯤 10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매달려 있던 2톤짜리 철제빔이 떨어져 인도를 지나던 손아무개(53)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손씨가 지나던 인도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만약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많았다면 더 큰 인명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사장 인근을 지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보행자통로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사현장 바로 옆의 인도에 천장이 있는 보행자 통로를 만들면 공사장에서 날아오는 자재를 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10미터 높이에서 철근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차량이 뚫렸다”고 말했다. 10미터면 건물 4층 높이다. 도심에는 그 이상 높이의 건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작은 돌멩이라도 떨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건설현장에서는 건물 외벽에 가림막이나 안전망을 설치하지만, 철재·철근에는 무용지물이다. 현장 안으로 떨어진 물체가 2차 충돌로 인해 현장 밖으로 튕겨나올 수도 있다. 물론 2톤짜리 철제빔이 추락한다면 보행자 통로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공사장 밖 시민안전 사각지대

문제는 공사현장 밖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된 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해당 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법 위주로 돼 있기 때문에 시민의 안전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9조·낙하물에 의한 위험의 방지)에 따르면 작업장의 바닥·도로·통로 등에서 낙하물이 노동자에게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보호망을 설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박 국장은 “낙하물에 의한 사고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사현장 인근을 통행하는 시민들까지 위험대상이 되므로 ‘근로자 및 도로 보행로를 통행하는 일반인’으로 대상을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 관계자는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의 보호대상은 근로자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을 포함하는 법으로 확장하면 (산안법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아 법리상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국토해양부 건설안전과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용자의 안전관리비 항목이 명시돼 있으므로 건설현장 인근 보행안전 문제는 노동부가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건설공사의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는 만큼 건설현장 주변의 시민안전을 위해 지자체가 사업주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예방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09년 2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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