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이천 화재참사로 시작돼 이천 화재참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동계는 ‘화재참사’가 아니라 ‘산재참사’라고 지적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국내를 강타했다. 올해 고용불안이 노동계의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규제완화도 예상된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 주요 관계자 연쇄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노동안전 이슈를 돌아보고 상반기 노동안전 정국을 전망한다. <편집자>

민주노총은 지난해 4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로 지정하고 전국순회단을 구성했다. 울산에서 시작해 포항·창원·여수·대전 등 전국을 자전거로 순회했다.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화두를 노동자뿐만 국민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건강권이라는 개념은 생소했지만 5월에 시작된 촛불정국은 상황을 반전시켰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열리던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소비자원에서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노동안전보건위원장·43)을 <매일노동뉴스>가 만났다.

촛불, 건강권에 대한 관심 생기게 해

“일반 국민들은 원래 건강권이라는 표현을 잘 안썼어요. 주로 노동 현장의 활동가들이 ‘노동자 건강권 쟁취하자’,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하자’ 이런 말을 많이 했죠. 저희가 자전거 순회를 하면서 ‘불어라 건강권’ 그러면 사람들은 건강권이 뭔지 개념을 잘 몰랐어요.”
김지희 부위원장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나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건강을 보장받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건강권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안전문제는 노동현장의 문제만은 아니잖아요. 지나가던 행인이 간판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지 않게 일어나는 불의의 사고가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건강권이라는 개념을 국민들이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국민여러분들은 광우병 쇠고기를 안 먹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죽지 않고 일하고 싶습니다. 이런 개념이죠.”
그는 “노동자에게 죽지 않고 일하겠다는 권리만큼 정당한 요구는 없다”고 강조했다.

의자캠페인, 감정노동을 알리는 출발

지난해 국민적 지지를 받은 민주노총의 대표적 사업 가운데 하나는 ‘서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에게 의자를 주자’는 캠페인이었다.
“국민들이 먼저 와서 서명을 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죠. 이명박 정권 하에서 좀 더 강력한 투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어요.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적 호응을 얻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김 부위원장은 “산재가 주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여성과 취약한 비정규직이 집중된 서비스 노동에 대한 인식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세사업장일수록 조직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직에만 노동안전 문제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도 존중받아야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의자캠페인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이미 나와 있는 법을 준수하는 문제와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을 알리는 출발이었죠.”
2006년부터 준비한 이 사업은 국민적 호응을 얻어 노동부도 발빠르게 정책으로 이어나갔다. 김 부위원장은 “노동부가 결심만 하면 현장의 많은 안전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임금 올라도 죽으면 무슨 소용있나요?

경제위기로 노동안전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외환위기 이후에 산재 사망 사건도 많았지만 직업병 질환, 소위 말하는 직무 스트레스·뇌심혈관 질환이 굉장히 급증했어요. 최근 구조조정 불안 속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숨죽이고 통제받는 상황이 올 것인지 예상되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경제위기를 빌미로 죽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제위기 논리로 안전문제가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사 교섭에서 안전보건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거나 임금과 맞바뀌는 현실에 대해 그는 “죽고 병든 뒤 임금이 올라가면 무슨 소용있냐”고 반문했다.

“제조업과 건설업만 봐도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휴업·무급휴가·구조조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도 경제논리에 묻힐 수 있어요. 하지만 안전하게 일하겠다는 것은 가장 일상적인 요구에요. 현장의 노동자들이 절박하게 제기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올해 상반기 주요 사업으로 산재피해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지난해 7월 산재법이 개정된 이후 요양을 불승인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과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모색할 계획이다.

노동안전, 민주노총 골간사업으로 가져가야

현재 민주노총 본조에서 노동안전보건 분야를 담당하는 간부는 김 부위원장을 빼고 1명뿐이다. 때문에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선 돈과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석행 위원장과 진영옥 위원장 직무대행도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예산과 채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긴하지만요. 올해 안에 노동안전보건실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어요. 비정규직 문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안전도 민주노총의 골간 사업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 개편이 필요합니다.” 


 <2009년 1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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