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련 제도개선 논의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제도개선 관련 쟁점들이 거론되고 한국노총에서도 강한 어조로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등 제도개선 논의가 수면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있음을 예감케 하고 있다.

지난주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노사간 쟁점인 노동시간단축, 전임자임금, 복수노조 교섭창구 등 제도개선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자의 권익이 함께 보장되는 방향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적극 논의해 빠른 시간내에 결론을 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업무보고를 마친 뒤 김호진 노동부장관은 "노동현안 제도개선문제는 정부가 열심히 추진할 것이지만 노동부 단독으로 처리하긴 힘들다"며 "노사정 합의기구를 통해 대타협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드러난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제도개선 현안을 정부 단독으로가 아니라 노사정 합의기구를 통한 대타협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노사정 3자가 합의할 수 있는 제도개선 쟁점만 처리를 하겠다는 뜻도 된다.

이런 정부 입장의 배경에는 정부 정책기조가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제도개선 문제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공공·금융 구조조정이 더 시급하다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치권도 안기부 예산전용 문제, 의원 꿔주기 등으로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적극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정부여당의 상태로 볼 때 상반기 제도개선 논의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여당의 의중대로 노사정 3자합의라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쟁점은 지난해 12월에 노사정이 합의한 단협실효성 확보방안과 현재 쟁점으로 올라와 있는 전임자 임금지금금지조항과 복수노조 금지조항의 개정 정도다.

먼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의 개정은 노동계의 요구사항이다. 지난주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노사정위 본위원 간담회와 화학노련 대의원대회에서 "2월말까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조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남순 위원장이 같은날 두군데서나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봐서 상당히 강한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연말의 금융노조 파업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눈총을 받아온 한국노총 지도부로서는 조직의 현안인 전임자 임금 문제 해결이 시급한 문제일 수 있다. 특히나 2월말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있어 2월 안에 뭔가 해답을 찾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비해 복수노조 허용조항은 경영계에서 부담스러워 하는 조항이다. 한 사업장에 여러개 노조가 설립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영계의 관리비용이 증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의미한다.

특히 삼성그룹이나 노조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회사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이 새로운 강성노조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이런 고민 때문에 올해 들어서 경영계 내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있었고 복수노조 허용조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공감대를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노사정의 이해관계로 볼 때 2월 한달동안 노사정위에서는 전임자 임금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를 둘러싼 한판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게임은 노사정위라는 링 안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노사정위원회 상무위는 노사정 실무교섭단을 구성해 비공개 논의를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어 조만간 논의 내용이 수면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링밖의 또다른 이해당사자인 민주노총이 어떻게 반응할 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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