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무엇입니까?”
혹시 당신은 의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수많은 질병은 직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지만 ‘어디가 아파서 왔죠?’와 ‘주사 맞고 가세요’나 ‘처방전 받아 가세요’가 전부인, 이른바 ‘15초 진료’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무시되기 일쑤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와 근로자의 의무조항으로 정하고 있는 ‘근로자 건강진단제도’는 직업병 예방을 위한 필수적 조치다.
올해부터 이러한 근로자 건강진단제도가 대폭 달라진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매일노동뉴스>가 점검했다.

뇌·심혈관계질환을 잡아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자 건강진단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업무에 배치되기 전에 실시하는 배치 전 건강진단 △유해인자에 노출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건강진단 △작업 중 건강장해를 호소하는 노동자에게는 수시건강진단 △집단적으로 직업병 소견이 나타날 때 실시하는 임시건강진단이 그것이다.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건강진단도 있다. 제조업종은 1년, 사무직종은 2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한다. 일반건강진단의 검사항목은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정하는데, 이달 중순부터 대폭 개편될 예정이다.

달라지는 검사항목의 초점은 뇌·심혈관계질환 조기 발견과 관리에 맞춰져 있다.
현재 건강보험을 통해 국가가 실시하는 건강검진은 일반건강검진과 암검진이 있다. 일반건강검진은 기본적인 진찰과 상담·혈액검사·소변검사·흉부방사선 촬영 등 38종의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질병 발견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검사가 비효율적으로 실시돼 정확한 판정을 위해서는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하거나, 검사 목적이 불분명한 검사 결과 때문에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복지부가 이달 19일 시행을 목표로 막바지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건강검진은 고혈압과 당뇨·고지혈증·비만 등 뇌·심혈관계질환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 질환은 전체 사망원인 중 27.6%로, 암 사망 점유율과 비슷할 만큼 심각하다. 오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해 국가와 가정의 부담도 상당히 큰 편이다.

복지부는 활동량 부족과 식사습관의 서구화 영향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고지혈증 등 생활습관병의 진단을 위해 좋은(HDL) 콜레스테롤·중성지방 등을 한꺼번에 검사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또 검진에서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이 의심되면 식생활·운동 등 평소 생활습관을 평가해 상담·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은 1차 검진에서 총콜레스테롤 수치에 이상이 있어야 2차에서 관련검진을 받을 수 있다.
 

유해인자 맞춤별 특수건강진단

노동부에서 정하고 있는 특수건강진단도 올해부터 크게 달라진다. 특수건강진단은 177종의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동안 검사항목이 획일적으로 규정돼 있어 유해물질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건강장해의 진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2005년 경기도 화성시 전자부품 제조공장에서 이주노동자 8명이 노말헥산 중독으로 하반신 마비증상을 보여 사회적 논란이 적이 있는데, 기존 특수건강진단 항목에는 노말헥산처럼 신경계통의 장애를 초래하는 질병에 대한 검사항목이 전무했다. 반대로 소음에 노출된 노동자의 경우 청력검사면 충분하지만, 빈혈 및 간기능 검사 등 불필요한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이에 따라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사용에 따른 직업병이 늘어났음에도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발견되는 직업병 의심환자는 난청과 진폐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도 직업병 발견율이 매우 낮아 실효성이 없었던 것.
달라진 특수건강진단 항목을 보면 유해물질별 주요 건강장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노말헥산 등 신경계 독성물질은 신경계 검사를 실시한다. 석면 등 폐암유발 물질은 CT검사를 추가했다. 소음의 경우 청력검사를 제외한 간·요기능 검사 등 불필요한 검사를 삭제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사후관리

전문가들은 건강진단보다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윤간우 원진녹색병원 산업의학과장은 “특수건강진단으로 직업병 유소견 판정을 받았더라도 사후관리가 안 되면 무용지물”이라며 “달라진 건강진단제도에는 사후관리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소음으로 난청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와도, 정작 공정이나 작업환경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설명이다. 건강진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진단결과에 따른 후속조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엉터리 특수건강진단, 해결될까
 
올해부터 1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특수건강진단을 받을 때 사업주가 아닌 산재기금에서 지원받는다. 이에 따라 사업주와 특수건강진단기관 사이에 만연한 유착관계가 끊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산하 산업안전보건제도개선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제도 개선에 관한 합의문’을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97억원을 책정했다.
노사정위에서 특수건강진단 비용을 산재기금에서 지원키로 한 것은 사업주의 입김에 건강진단기관이 휘둘려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특수건강검진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초 ‘특수건강진단기관의 99%가 엉터리’라는 정부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노사정은 10인 미만 사업장(20만명 혜택 추정)에 우선 적용하고 점진적으로 50인 미만(45만명 혜택)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2009년 1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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