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이다.
2008년 1월7일 오전 10시50분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에 위치한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 난 곳은 지하1층 기계실. ‘꽝’하는 굉음과 폭발이 일어났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시 건물 지하에서는 57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3시11분부터 오후 11시18분까지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40명의 생명은 구하지 못했다. 수습된 시신 40구는 대부분 화염에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발견돼 신원파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의해 이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사망자 가운데 17명이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로부터 11개월 후.
2008년 12월5일 낮 12시9분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서이천물류센터 지하층 7번 냉장실에서 출입문 용접작업중에 불티가 샌드위치 패널에 튀며 불이 났다. 이 화재로 건설노동자 7명이 숨졌다. 또 화재 진압 중이던 소방관 1명과 다른 건설노동자 5명이 부상했다.
불은 삽시간에 연면적 4만여 제곱미터의 물류창고를 모두 태웠다. 창고에서는 이날 100여명이 작업 중이었지만 다행히 점심시간이라 자리를 비운 관계로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닮은 꼴 대형참사 되풀이

두 사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아있다. 코리아2000 냉동창고와 서이천물류센터는 불과 6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위치하고 있다. 또 화재의 원인이 안전조치 없이 진행된 용접작업 중 불꽃이 튀어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등의 단열재가 들어간 샌드위치 패널로 옮겨 붙었다는 점이다. 값이 싼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은 불이 나면 순식간에 불길이 주위로 번지고 유독가스마저 대량 분출돼 대형참사를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건설현장의 관행처럼 굳어진 무리한 공기단축 강행으로 인해 산업안전 관련 규정이 무시되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또 불법하도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 건설현장에서 63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하루 평균 1.7명의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만 목숨을 잃는 셈이다. 특히 공사금액 3억원 미만 현장에서 죽은 노동자가 31.8%인 77명에 이르고, 건설현장의 산재사망자 10명 중 7명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사업장 규모가 영세할수록 산재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공사가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수록 공사공정이 세분화되고, 하청업체가 받는 공사금액도 적어진다. 이에 따라 전문건설업체들은 건설노동자들을 상용직으로 고용하기보다, 인력시장에서 일용인력을 데려오는 것을 선호하고 공기를 단축시켜 이윤을 남기려 한다.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이나 안전장비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건설현장에 안전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공사는 대형업체가 발주할지 몰라도 결국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다단계의 끝에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설일용노동자들인 것이다.

건설노조는 “아파트공사처럼 대형 공사현장은 그나마 사전 안전교육이라도 받지만 소규모 설비공사현장은 국가관리 감독으로부터 방치돼 안전의 사각지대가 된지 오래”라며 “불법다단계하도급으로 인해 책임주체가 불분명함으로써 책임의식도 덩달아 없게 된 상태에서 안전 불감증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낮잠 자고 있는 관련법 개정

지난해 1월 화마로 수십명의 노동자가 숨진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사업장 폭발·화재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규제를 일률적으로 나쁘다고 보면 안된다”며 “안전이나 환경·노동·보건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필요한 규제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직후 노동부는 건설·화학물질 등 3개 분야에 TF를 구성해 폭발·화재사고 재발방지 대책 및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개선과제로 노동부는 사업장 안전관리자 선임대상을 노동자수와 공사금액에서 연면적까지 포함하는 내용으로 확대하고,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출대상을 창고시설까지 추가할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산업안전규제만 놓고 보면 1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국회가 정상화 되는대로 냉동설비와 단열작업을 포함한 5천제곱미터 이상 창고시설에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법안을 개정하고, 인화성물질과 관련한 안전규칙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전관리 선임대상 확대는 연구용역 결과 추가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관련 부처와의 협의문제 등으로 인해 법 개정작업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 개정이 1년 가까이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이천 물류창고에서 7명의 노동자가 희생된 것에 대해 노동부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1주기 추모제 개최

민주노총은 코리아2000 냉동창고 참사 1주기인 7일 청계광장에서 추모제를 연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재해로 매년 2천500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9만여명이 다치고 있지만 정부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안전 관련 규제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추모제를 시작으로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비정규도 서러운데…” 산업재해율 3배
비정규직의 산재발생률은 정규직의 3배에 달한다. 작업시간이 불규칙하고 업무가 자주 바뀌는 탓에 업무 숙련도가 그만큼 떨어지면서 다치는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윤조덕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노동부의 ‘산업재해 취약계층 산업안전·보건관리 강화 방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추락사고는 전체 비정규직 산재의 31.4%로, 정규직 노동자(10.6%)의 3배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노동부가 2003~04년 300건 이상 재해가 발생한 7개 업종(조립금속제품제조업·기타 기계 및 장비제조업·자동차 및 트레일러제조업·건설업·도소매업·운수업·사업사비스업) 사망자와 부상자의 10%를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는 비정규직은 때를 가리지 않고 산업현장에 투입되고 맡은 업무가 자주 바뀌는데다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할 대표(노조)가 없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실제 지난해 1월 발생한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에서 사망한 노동자 40명 중 17명은 이주노동자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새벽 인력시장에서 데려온 일용직이었다. 윤 연구원은 “세계화에 따른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규모 원청업체가 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거나 비정규직 고용으로 대체하고 있다”며 “특히 하청업체에 전가된 부담은 다시 재하청 관행이나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고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영 기자


 

<매일노동뉴스 1월7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