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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44살 구로공단입니다"


불혹 넘긴 ‘구로’씨의 어제와 오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44살 된‘구로’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태어난 1964년부터 한참을 ‘구로공단’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고 부르더군요. 영어가 들어간 길어진 제 이름이 아직도 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제가 10살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공장을 하나 둘씩 세우기 시작했죠. 옷 만들고 가발 만드는 공장이 생기자 멀리 시골에서‘젊은 누나’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누나들은 시골에 혼자 있는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좁고 공기도 안 좋은 곳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내더군요. ‘벌집’같은 곳에 살면서 하루 내내 일만 하던 누나들이‘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던 85년.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뜁니다.

제가 성년을 넘긴 21살엔 텔레비전과 리디오를 만드는 회사가 들어섰습니다. 더 이상 옷과 가발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나들도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죠.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 있던 누나들이 그때부터 길게 늘어 앉아 텔레비전에 무언가를 쉬지 않고 꽂았습니다. 당시엔 역한 냄새가 나는 공장이 많았고, 커다란 기계에서 무시무시한 소리도 났어요. 사람들은 제가 더럽다며 주변에 오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서른을 넘겼을 땐 텔레비전 만드는 회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 언제부터인가‘벤처’를 한다며 뛰어드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었어요. 당시 벤처란 벤처는 거의 다 저한테 왔던 것 같습니다. 성공을 향해 노력과 정열을 불태우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친구들도 힘이 빠졌나 봅니다. 아직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있긴 한데, 5년 전쯤 저를 떠난 친구들의 소식이 더 궁금하네요.

2008년 10월, 제가 있는 곳에서 옷이나 텔레비전을 만드는 사람들을 찾기 힘듭니다. 옷을 파는 사람들이 많죠. 멋진 옷과 신발을 사러 주말이면 저를 찾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외국에서 와서 고생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아직 얘기를 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저를 이젠 모범생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있네요. 구로구청이란 곳에서 며칠 전 국무총리라는 높은 사람한테서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변한 저의 모습을 칭찬하는 상인데요. 벤처기업이라는 곳에 다니는 친구들의 눈은 늘 퀭하고, 새벽에 들어가고 한번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나올 생각을 안 하는데도 말이죠.

이젠 좀 쉬고 싶습니다. 주말이면 옷 사는 사람들로 북적대니, 혼자 있는 것보다 좋긴 한데 옷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전만큼 웃는 얼굴을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저의 옛 친구였던 여공들은 추석 때면 구로시장에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한다고 환하게 웃고는 했는데 말이에요.

요즘엔 저를 떠난 이들이 가끔 저에게 와서는 멍하니 있다가 그냥 가곤 합니다. 얼마 전 오래된 옛 친구가 저의 변한 모습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봐 구로! 변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닌데, 가슴이 짠해지네. 요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들이 참 없잖아. 과거와 다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요즘 세상에서, 예전의 너의 모습을 기대했던 내가 어쩌면 뒤처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먼. 그런데 그 많던 여공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가고 그렇게 혼자 지내나.”

<매일노동뉴스> 2008년 10월 27일

오재현 기자  ojh@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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