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계를 허무는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미국이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은행지분을 정부가 매입하고, 세계각국과 공조를 통해 새 규제책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이러한 입법예고는 '엇박자'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때문에 세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치가 산업·금융의 동반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를 4%에서 10%로 확대하고 연기금과 사모펀드의 은행 소유 허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입법예고 했다. 또 기업의 지주회사 전환 촉진을 위해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출자한도를 폐지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관련기자 5면>

금융위는 입법예고안에서는 1단계 연기금·사모펀드의 은행 소유 규제 완화와 2단계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완화를 동시에 추진했다.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글로벌 은행산업의 대형화 추세를 따라잡을 수 있고, 은행이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은행산업의 경쟁력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규제완화로 인해 글로벌화된 금융경제가 오히려 위기를 더욱 촉진·확장시키고 있고, 대형화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있어, 정부의 바람이 뜻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반대로 금산분리 완화가 리스크를 가중시켜 산업·금융의 동반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이한진 사무금융연맹 진보금융네트워크 준비위원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합쳐지면 서로가 가진 리스크를 상호 떠안게 되면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리스크 분산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동반몰락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명희 금융노조 국제부장도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규제 정책마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금산분리 완화 반대 목소리가 더욱 높은 것"이라며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속 규제 강화 추세와는 다른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도 정부가 금융위기 해법보다는 규제완화에 힘쓰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상장기사 참조> 우리나라 금융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산분리 완화는 이전 정부부터 금융의 대형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목적 아래 추진됐지만 지금은 글로벌 대형금융그룹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정부가 추진하던 금융정책을 전면 재검토 해보면서 방향을 새롭게 설정한 후 그에 맞는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뜨거워지는 '금산분리 완화' 논란
노동계·시민사회단체 "철회하라"…경영계는 환영
야권 등 정치권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13일 "정부가 발표한 금산분리 완화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위기를 더욱 큰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며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경영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권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금산분리 완화조치는 사실상 재벌은행의 탄생을 허용, 1% 특권층과 재벌만을 살찌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본색을 드러내는 정책"이라고 비난했고,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외환위기 당시 30개 재벌 중 17개가 쓰러지는 등 취약성을 드러냈는데,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산업자본의 취약성이 금융산업의 위험으로 직결돼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금융노조는 성명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뒤늦게 금융산업의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정부 개입을 통한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이 유일하게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든 꼴"이라며 금산분리 완화를 담은 입법예고안 철회를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은 금융-비금융 혼합 기업집단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용인하는 삼성그룹을 위한 제도일 뿐"이라고 주장했으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해법은 모색하지 않고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는 금산분리 완화조치를 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영계는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의 개정안은 금융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 금융시스템 및 금융산업 발전에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은행주식 보유제도 완화를 통해 은행의 자기자본 확충이 원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금융과 산업 간 칸막이가 허물어짐에 따라 경쟁력 강화와 신규사업 추진을 위한 두 부문 간의 공조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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