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 61일만이다. 이석행(50)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 추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22일 직접 차량을 몰고 조계사에 들어갔다.

이 위원장은 조계사에서 각종 회의를 주도하는 등 민주노총의 투쟁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자신이 제안한 이른바 '반독재국민전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다. 하지만 조계사에서 끝장투쟁을 할 계획은 아니다. 이 위원장은 "반독재국민전선 구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가능한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진출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해서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현 정부와 교섭할 생각이 없다"며 "노조의 자주권 보장과 노사자율이라는 원칙하에 장외투쟁과 국회투쟁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23일 이석행 위원장을 만났다.

- 잠행을 끝내고 조계사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비록 수배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 달 정도 잠행을 계속했는데 올림픽과 추석이 겹치면서 대중들을 만나 조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를 기다렸다. 최근 무조건 22일께 대중 앞에 나타날 것을 결정하고 장소를 고민해 왔다. 그곳이 조계사다."


"자진출두 하지 않지만, 수배생활도 계속하진 않아"


- 왜 조계사인가. 여기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데 민주노총 사무실은 고려하지 않았나.

"영등포 사무실에 있으면 민주노총만 고립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있으면 총연맹과 산별연맹 상근자들이 투쟁준비는 못하고 위원장 사수하는 데 소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22일) 조계사 관계자들에게 사전협의 없이 들어온 것에 대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사과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쫓기는 몸에 탄압받고 있는 약자인 만큼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계사가 거점투쟁 장소가 되는 것인가.

"거점으로 삼겠다는 게 아니다. 그동안 제안했던 반독재국민전선을 실현하는 데 시민·사회단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곳이라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 정리되면 가능한 빨리 이동할 생각이다. 여기서 위원장 임기를 끝내면 민주노총은 망한다. 위원장이 투쟁의 현장에서 산화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투쟁이 있으면 장렬하게 전사해야 한다."

- 자진출두는 안하지만 임기만료 때까지 수배생활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 장렬하게 전사하려면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24일 산별대표자회의와 중집회의를 주재할 생각이다. 거취문제를 포함해 모든 것을 열어놓고 고민할 것이다."

- 산별대표자와 지역본부장들에게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지난달 중앙위에서 결정한 계획을 구체화할 것이다. 최고 집행단위 책임자인 그들에게 그것을 준비·집행하고 평가하는 것까지 책임있게 실천하라고 강조할 예정이다."

- 집단지도체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현재 진영옥 수석부위원장이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수석을 중심으로 각 부위원장들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순회 등의 사업이 위원장 중심이었는데, 이를 부위원장들에게 맡겨 지역과 산별을 종합적으로 묶어내겠다는 것이다. 보석으로 나온 수석부위원장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울 수는 없다. 토론과 집행 과정에서 부위원장들의 참여를 강화하되 모든 책임은 위원장이 지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집단지도체제가 무슨 '만장일치제도'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런 게 아니다."


"범국민운동체 조만간 가시화"


- 반독재국민전선 구성을 시민·사회단체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22일 이곳에서 반독재국민전선 구성을 위한 2차 포럼을 했다고 한다. 조만간 관계자들을 만나 함께 토론할 것이다. 조금 느슨하지만 곧 가시화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진정성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반제국주의 전선으로 확대하자는 분들도 있고, 반독재에 부담을 갖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명칭은 조금 바뀔 것이다. 범국민적인 운동본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 국민전선을 주도하기에는 민주노총이 상반기에 역량을 많이 소모했다는 지적이 있다.

"주도하겠다는 게 아니라 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것을 걱정한다. 많은 상설단체가 생겼지만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 이번에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상반기에 힘을 뺀 것이 아니다. 지방과 중앙의 온도차가 있었다. 지방은 크게 힘을 빼지 못했고 수도권도 아니라고 본다. 촛불투쟁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투쟁의 전선은 파업만이 아니다. 다양한 전술을 만들 것이다."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원칙은 단결권과 노사자율"


-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자주적 단결과 교섭권을 보장하는 복수노조를 계속 주장해 왔다. 전임자 임금은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 법으로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런 원칙을 제기하고 가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 정부는 노사정 대화없이 밀어붙일 태세다. 치밀한 대응이 필요할 것 같은데.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소원 등 투쟁명분은 충분하다. 정부에 노사정 교섭을 요구할 생각도, 교섭제안이 와도 응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문제를 포함한 100대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섭대상인 지도부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정부와 무슨 교섭을 하겠나."

- 장외투쟁으로 나가는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장외투쟁밖에 더 있나. 다만 국회투쟁은 병행할 것이다. 26일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민주노총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래서 조계사로 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회 안에서 민주노동당을 포함해 민주노총과 국민이 제기하는 문제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 한국노총과 연대할 생각은.

"한국노총은 복수노조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찬성이다.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를 주장하겠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내용이 같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연대투쟁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 미국발 금융위기가 사회적인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노동자들의 희생이 클 수 있다.

"노동자들이 힘들어진다는 것보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끝이 보인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평등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전환점에 온 것이다. 노동계 내부적으로 그런 준비를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한 투쟁을 새롭게 고민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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