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숨죽여 있던 노동자들이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3일 전라북도 전주시 팔복동에 있는 한국노스케스코그 전주공장. 잘 정돈된 잔디 축구장과 분수대만 봐선 공장 분위기는 마냥 평화롭다. 하지만 공장 내 분위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장 정문을 조금 지나자 '단결 투쟁 서약서'라는 제목 아래 노조 조합원들의 서명이 가득 찬 게시판이 서 있다. 전주공장 노동자들은 지난달 20일 노조를 결성해 같은 달 24일 설립신고필증을 받았다. 노조 결성 사흘 만에 가입 대상 직원의 약 95%가 노조에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17일 현재 조합원은 495명이다. 전체직원은 520여명. 23일 노스케스코그 전주공장 노조 사무실에서 김영서(37) 초대 위원장을 만났다.

노동자가 모르는 사이 매각 본계약 체결

지난달 23일은 회사 대표가 매각 진행 과정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브리핑을 하기로 예정돼 있던 날이었다.

"재무구조가 튼실한 회사에 인수되니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달라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었습니다. 인수자로 모건스탠리PE-신한PE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어요. "

브리핑이 예정된 하루 전날인 같은 달 22일, 회사측은 모건스탠리PE-신한PE 컨소시엄과 매각 본계약을 체결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도 없이 노동자들은 모르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매각이었다. 노조는 "매각이 진행되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밝힌 회사 경영진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벌였다. 조합원 476명이 불신임 표를 던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조합원들은 여름 휴가를 반납했다. 휴가비는 노조 활동비로 쓰고 있다.

10년 사이 임금·복리후생은 꼴찌로

전주공장 노동자들은 4조3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다. 원료투입부터 생산·제품 포장까지 모든 생산 공정이 하나로 맞물려 있다. 98년 한솔그룹에서 외국 자본에 인수되기 전까지 임금과 복지수준은 업계 1위었다. 올해 1사분기에도 국내 신문용지 판매량은 내수용과 수출용을 모두 합해 전체의 54%를 차지한다. 나머지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대한제지·페이퍼코리아·보워터코리아의 판매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조·중·동·문화일보 등 국내 주요 일간지에 신문용지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복지 수준은 업계 꼴찌가 됐다.

"외국 자본에 인수된 후 10년 동안 세 번의 구조조정이 있었습니다. 1천200명에 달하던 노동자가 현재는 청원공장 직원까지 포함해 730여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회사측에 얘기하지 못했어요.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까봐서요."

'숨죽여왔던' 노동자들이 매각을 계기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영서 위원장은 지난 40년 간 억눌려온 노동자들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매각까지 일주일 남짓

이달 31일 이후 회사의 경영진이 바뀐다. 지난 92년 한솔제지에서 팝코전주,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 한국노스케스코그로 바뀐 회사 이름이 또 바뀔 수 있다. 현재 노스케스코그 노사는 임금·단체 교섭과 매각 특위 교섭을 따로 갖고 있다. 매각 절차가 마무리돼 경영진이 바뀌어도 매각 특위에서 고용승계 부분 등을 계속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서울사무소와 청원공장노조도 동일한 요구안으로 교섭에 임하고 있다.

노조는 현재 △임금인상 협의 △법령에 의한 통상임금 적용 △가족수당인상 △근속수당 복원 △매각 후 근로조건과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입장에선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매일 교섭을 하고 싶죠. 지난 10년 동안 저하된 임금과 노동조건을 복원하자는 것이 저희의 요구입니다. 노조를 결성했으니 이제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야죠."

23일 현재 노조는 13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사측이 교섭에 불참하거나 대표이사의 위임장 없이 임원들이 참석해 여러 차례 파행을 겪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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