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3기 지도부 선거전에 돌입했다.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분당·탈당 이후 위기국면을 헤쳐온 혁신비대위도 막을 내리게 된다. 비대위 ‘선장’으로서 힘겨운 항해를 해온 천영세 대표를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당사에서 만났다. 천 대표는 그동안 모두 3번의 비대위원장을 맡아오며, 당의 위기국면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당을 위기에서 건졌지만 아쉬움 남아”

- 분열·분당의 여파로 지난 2월 출범한 혁신비대위가 이제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 4개월의 소감은.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집단탈당과 분당으로 당원은 자괴감과 아픔을 겪었고, 핵심지지층과 국민들도 실망으로 상처를 입었다. 당의 존립의 위기와 혁신과 재창당, 총선 등 뒤범벅된 과제 속에서 비대위가 당을 구했다.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 비대위 구성은 당내 주류세력의 배제와 외부인사 영입이란 특징을 보였다. 비대위 구성의 이유와 효과는.

“우선 비대위 구성은 저를 포함해 7명으로 했다. 날렵하고 단촐하면서 책임감 있게 갈 수 있도록 했다. 1·2기 지도부 중에는 정치적이든 도의적이든 책임 있는 인사들은 한 발 물러나게 했다. 권위와 형식에서 벗어난 (외부) 색깔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비대위원들은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임했다.”

- 그러나 전략공천 등을 두고 비대위에선 잡음도 있었다.

“중앙위원과 당원들은 전략공천이라는 인사권을 비대위에 맡겨주었다. 당내·외를 아울러서 잘 선임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전략공천 당선자들이) 원내에서 잘 할 수 있으리라 본다.”

- 비대위의 우선적 과제는 위기돌파였다. 핵심적 과제가 무엇이었나.

“탈당·분당사태로 빚어진 위기라는 고려할 때 빠른 시간 내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단 당을 존폐의 위기에서 건졌다. 물론 탈당·분당으로 인한 진보진영 분열의 여지는 남아있다. 혹은 잠복해 있거나.” 

“혁신이 실천운동을 이어지지 못했다”

- 총선평가는 엇갈린다.

“분당·탈당만 아니었다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선 수도권에서 진보신당으로 나간 후보들이 당선됐을 테고 울산·거제·진주 등에서도 욕심을 낼 수 있었다. 비례대표도 이 전보다 더 많이 당선시킬 수 있었다. 현실은 ‘반타작’이었다. 단, 창원 수성과 불모지인 사천에서 당선은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진보신당의 수도권 약진도 이후 진보정당 운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후 두 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은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과제라고 볼 수 있다.”

- 지난달 22일 통과한 혁신-재창당안은 당초 의지보다 후퇴라는 지적도 있는데.

“물론 일정부분 그렇다. 하지만 창당 이래 혁신안은 모두 4번 마련됐으나 공식의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자체도 성과다. 그동안 당이 너무 폐쇄적이고, 무겁고 어려웠다. 내용적으론 국민과 가까이 소통하고 당원의 참여를 넓히고, 정파담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다. 그것이 이번 지도부선거에서 1인1표제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엔 명부를 여러개 둬서 특정정파가 대표·사무총장·최고위원·여성부문도 휩쓸었다. 공직후보에서의 개방형 경선제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 앞서 지난 4개월을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 어떤 점인가.

“당시 안팎의 화두는 ‘혁신’이었는데 당장의 과제인 위기수습과 총선에 집중하다보니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풍운동이든 쇄신운동이든 ‘운동’이 됐어야 했다. 나부터, 비대위부터, 중앙당, 지역시도당 논의단위에서 뼈저린 진정성을 갖춘 비판과 성찰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당원과 지지층에게 감동을 일으키면서 당의 수습과 총선도 의미 있는 성과로 남길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렇게 됐다면 지도부 선출과정도 보다 높은 열기와 관심 속에 치러졌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처절한 자기반성과 비판을 통해 변화와 혁신, 실천운동을 더불어 해야 한다.” 

‘원내외투쟁과 내부혁신’ 새지도부 과제

- 차기 지도부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다.


“복잡한 이유는 없다. 혁신이란 것은 제도나 당의 기풍 이외에도 사람의 얼굴도 있다. 내가 지도부 선거에 나간다면 ‘또 그대로 가는구나’라고 비쳐질 수 있다. 비대위의 비상시기 탈출은 그 자체로서 분명한 획을 그어야 한다. 더 이상은 내 몫은 아니다.”

- 새 지도부 경선이 막을 올렸다. 새로운 지도부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은 선거시기라서 왈가왈부 하기 어렵다. 다만, 쇠고기 싸움 이후 한미FTA·민영화·양극화 문제가 정치의 주요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아니면 못할 역할을 분명히 해내야 한다. 앞으로 2년을 그냥 가다보면 중요한 것 다 놓치고 2010년 지방선거가 온다. 진보정당이라면, 이런 문제에 대해 이슈화하고 법제도로 관철하기 위해 원내외 투쟁을 과감히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적 투쟁과 내부혁신이란 두 축으로 확실한 대안세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 여러 자리에서 ‘국민적 진보정당’을 강조해왔다.

“‘오른쪽’으로 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닫혀져 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왔다. 국민과 올바른 소통을 하는 정당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한다는 것이 계급성과 정체성 약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대안세력으로서 광범위한 대중들의 지지기반을 확실히 만들어가야 한다.”

-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본질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경제살리기인가. 서민과 대중을 위한 경제살리기가 아닌 재벌과 1% 소수를 위한 것이다. 물·의료·가스 등 사회공공성을 소수의 경제살리기에 종속시키고 있다. 한미동맹의 상대국인 미국의 가치이기도 하다. 쇠고기 협상을 계기로 반대여론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촛불민심은 누구를 위한 정부냐라는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민심 아우르는 대안세력 우뚝서야”

- 촛불정국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활약했지만 여전히 대중정당으로서 각인되지 못하고 있다. 촛불 이후 민주노동당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렇다. 촛불민심을 아우르는 정치조직체로서 인정을 받진 못했다. 강기갑 의원 등 상징적 영향도 발휘했으나 언제 거품이 빠질 지 모른다. 완전한 위기가 극복됐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다시는 이런 분열을 반복한다면 민주노동당은 가망이 없다. 민주노동당 당원과 활동가는 놓쳐선 안 된다. 촛불 이후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 이번 주 한나라당의 등원압박이 최고 수위를 이룰 것 같다.

“야권과 공조하면서 장외정치로 대응한다는 기조는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계산하면 안된다는 게 중심이어야 한다. 촛불민심을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 한다. 가축전염법예방법 개정 요구에 대해 한나라당이 빗장을 걸고 열지 않는다.”

- 7일 단행된 개각도 당초 약속에 못미치는 것이다.

“소폭으로 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전면적으로 해야 한다. 자유선진당 등 보수정치권도 총리를 포함한 거국내각을 요구하는 게 헛소리는 아니다. 여전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곤란하다.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이 가능한 인사들이어야 한다.”

- 창당 이후 지난 8년에 대한 개인적 소회는. 이후 활동계획은.

“좀 더 잘 하고 헌신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역사의 한 복판에서 진보정당 운동에 몸 담아 와서 의미가 크다. 당원들에게 한말씀 하고 싶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교훈을 새겨 혁신하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길 바란다. 더 크게 단결해야 한다.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라.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잔욕심을 버려라.

개인적으로는, 장기간 운동해오다보니 몸과 마음이 너무 마모돼 버렸다. 이후 어떤 당직에서 매이지 않고 평당원으로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여유 있게 당을 바라보며 당원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당장의 계획은 없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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