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이소마. 신용불량까지 걸어 놓고, 난 돈 안 갚을랍니더. 아니 못 갚습니더.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죽을 때도 됐고, 갚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지 갚제. 나도 모르겠심더.”

“사장님 그래도 빌린 돈은 갚으셔야지예. 그거 국가 재산이고 국민 세금 아입니꺼. 어렵고 힘든 건 이해하는데예, 당장 갚으라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조금씩 갚으면 됩니더. 분할상환하는 방법도 있어예.”

신용보증기금(신보) 채권추심원인 조영태(38)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 업체를 방문했다가 허탕쳤다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들어온 60대 남짓의 한 남자. “어 저거 사장인데, 틀림없는데….” 조씨는 차 시동마저 끄지 않고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김철수(가명) 사장님 아니십니꺼.” 서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둘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사장님 그라지 말고, 차나 한잔 주이소. 그냥 이야기나 좀 합시더.” 조씨는 또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장 김씨도 처음엔 경계의 눈빛을 보내더니, 조씨의 웃음에 “그럼 차나 한잔 하입시더”라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지난 4일 경남 창원시 봉래동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ㅅ중소업체 김 사장과 채권추심원 조씨의 만남. <매일노동뉴스>가 동행취재했다.

 
 
“돈 좀 갚아주시소”…“법대로 하라니까”

사무실로 자리로 옮긴 두 사람은 김 사장이 신보에 갚아야 할 채무에 대한 논의를 하더니만, 곧 가족얘기로 옮겨갔다. 이리저리 화제를 돌려가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조씨의 화술이 보통이 아니다.

김 사장의 자녀들은 모두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았지만, 본인과 부인은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잘 넘겼지만, 운영하던 중소기업이 98년 부도가 나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깎아주지 않으면 못 갚는다”고 버티던 김 사장은 “자녀를 위해서라도 돈을 갚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조씨의 설득에 조금은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 사장은 곧바로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원청업체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2시간을 기다렸지만, 담당 임원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터였다. 김 사장은 “이명박이가 되면 빌린 원금도 좀 깎아주고, 도와줄 줄 알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 사장은 30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사를 다 털어놓았다. 애달프고 힘들게 살았다던 그. 부도를 이겨내고 겨우 다시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현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빌린 돈을 10년 동안 갚지 않은 악성채무자다. 97년 당시 그가 신보를 빌린 돈은 6천여만원 안팎이었다. 그동안 이자만 9천만원이 늘었다. 이제 갚아야 할 빚은 1억5천여만원이 넘는다.

“중소기업하기 어렵지요. 그래도 이겨내셨지 않습니까”라며 연신 “맞습니다, 맞습니다”라는 말로 응수하던 채권추심원 조씨. 급기야 김 사장과 신보 채권추심팀장과의 약속을 잡아낸다.

조씨는 김 사장에게 연락처를 주고 팀장과 만나겠다는 약속을 재차 받아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날은 그가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이다. 악성채무자와 팀장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으로 그의 업무는 다 끝났다.

11개월짜리 단기계약직인 조씨. 한 번의 계약연장으로 신보에서 22개월을 일했지만, 2년 이하로 근무한 계약직과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회사측의 운영방침에 따라 조씨는 이날자로 계약해지됐다.<상자기사1 참조>

“아들과 딸아이가 눈앞에 아른거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회사가 원망스럽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맡은 일은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1개월 단기계약직, 신용보증기금 채권추심원

“이 정도면 80% 이상은 해결됐다고 봐야 합니다.” 업체를 나서면서 그는 기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부도난 이후 재설립한 업체를 찾았고, 사장까지 만났다. 대화를 나눠보니 채무를 아예 안 갚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방문과 설득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면 해결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선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조씨는 중소기업 대출을 지원하는 신보에서 채권추심원으로 일했다. 근무지는 경남 창원시 신보 경남본부. 이곳에서 관리하는 채무건은 약 4천여건이 넘는다. 서부 경남, 즉 마산·창원·거제·진주·합천 등이 담당지다. 7명의 비정규직 채권추심원들은 한 명당 평균 600건을 담당한다. 하루 최소 5곳, 평균 8~10곳을 방문해 채권을 회수하는 일을 한다.

신보에서 일하는 채권추심원들은 오전에 출근해 전날 방문했던 업체들에 대한 채무추심 진행상황을 보고한다. 출장기록부를 작성해 팀장에게 제출하는 것이다. 이어 오후에 방문할 곳을 정하고 관련정보를 수집한다. 채무자나 업체에 연락해 약속을 잡고 오후가 되면 방문하는 식이다. 거제도 같은 경우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2명 정도가 2~3일 정도로 머물며 집중적으로 방문할 때도 있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보증을 받으러 신보를 찾을 때는 '을'의 관계이지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면 ‘갑’의 위치에 서곤 한다. 속된 말로 ‘배째라’는 식의 채무자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추심팀에 넘어오는 채무건의 경우 거의 전부가 악성이다. 채무자가 더 이상 빌린 돈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판단해 회계상에서 감가상각을 하는 경우에만 채권추심원들에게 일이 맡겨진다. 가압류할 담보(부동산 등)가 있거나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건은 다른 부서에서 처리한다. 때문에 보통 연체가 시작된 지 2~3년은 지나야 채권추심팀으로 넘어온다.

중소기업체 사장들은 자신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부인이나 친척 명의로 다른 사업을 시작하거나 위장전입을 통해 주소지를 속여 채권추심을 피하는 방안을 쓰곤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악성채무자들이 보통 쓰는 방법이다. 채권추심원들은 조세원들이 수천만원대의 세금을 내지 않은 악덕체납자를 찾아다니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한다.<상자기사2 참조>

 
 
욕설에, 무시에…유일한 무기는 '웃음'

조씨는 “채무자를 만나면 제일 처음하는 말이 ‘법대로 하자’는 말”이라며 “우리가 채권을 추심할 수 있는 별다른 권한이 없다는 것을 중소기업 사장들이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김 사장도 예상대로 조씨가 신분을 밝히자마자 건넨 말이 “법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는 양반이다. 욕을 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며 공장에서 밀어내는 채무자들도 허다하다.

채권추심원들의 유일한 무기는 ‘웃음과 화술’이다. 조씨는 “빚을 지고도 미안한 표정하나 없이 오히려 역정을 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면서도 “재산이 없거나 숨겨 놓았을 경우에는 추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만큼 나중에라도 갚을 수 있도록 웃으면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보 채권추심원들은 규정상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에 퇴근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채무자와 약속만 잡을 수 있다면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채무자들은 쉽게 채권추심원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때론 채무자와 채권추심원은 쫓기고 쫓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방문·탐사가 주업무가 될 때도 있다.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다. 그는 “채권추심원들은 각자의 할당을 채우기 위해 같이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며 “외로운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은 채권추심을 해야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월마다 나오는 기본급 85만원(6월 현재)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성과급으로 채워야 한다. 월 200만원이라도 움켜쥐려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들이 받는 월 성과급은 상환액의 7%. 매달 1천500만원 이상을 받아내야 200만원에 근접한 월급을 손에 쥘 수 있다. 상·하반기를 마감할 때마다 반기별 목표를 달성하면 3%, 못하면 2%의 성과급을 준다. 조씨는 "계약할 때 상환액의 10%를 주겠다고 했지만, 7%를 먼저 주고 나머지 반기별 결산이 끝나면 3%를 특별성과급식으로 주고 있다"며 "목표치가 너무 높아 사실상 달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9%를 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재기를 도와야 돈도 받아요”

오후 3시쯤, 그는 창원시 신월동에 있는 한 가정집을 찾았다. 이 집에 살던 채무자가 채무를 분할상환으로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며칠 전부터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심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채무자가 걱정돼서다. 조씨는 “이 채무자는 빚을 갚겠다는 진정성이 느껴졌는데 연락이 두절돼 걱정스런 마음에 마지막으로 찾아보려 왔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는 채무자에게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많다. 업체가 부도 나면, 사채를 통해서라도 부도 직전까지 돈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돈뿐만 아니라 가족관계도 어그러지기 십상이다. 어떤 나쁜 일이 갑자기 생길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경우에는 만나서 얘기도 들어주고, 해법을 찾아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줘야 한다”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그 사람의 인생도 나아지고 나중에라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싸워야죠. 언제까지 이렇게 살순 없잖아요”

빚을 받아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기준은 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빚을 받아내기보다는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다. 또한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수준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조씨는 “가정집을 방문하면 부모들이 없고 아이들만 있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는 빚을 갚기 위해 돈 벌러 나가고, 아이들은 학원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는 마음이 먼저 들곤 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찾은 가정집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날이라서 그런 걸까. 그는 또 한곳을 방문 한 뒤, 부산으로 향했다. 경남·부산·광주에서 일하는 신보 채권추심원 노동자들의 모임이 있다고 했다.

한참을 묵묵히 운전만 하던 그는 "오늘 하루 같이 있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불쑥 꺼냈다. 하루 동안 기자일행을 안내하며 활발한 모습으로 이것저것 설명하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퇴근시간이 됐고, 이대로 일을 끝내면 그는 더 이상 신보 채권추심원 신분이 아니었다.

조씨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오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힘내라"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도 해주고 다독거려줬지만,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오늘 하루 저를 위해 마음 써주고, 같이 아파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런데 다음주에 출근하면 하루하루 일하고 여름휴가 계획도 짜고 그러겠죠?"

그의 가슴속에 들어찬 먹먹한 감정이 느껴진다. 생계에 대한 막막함,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 이날 하루 그의 마음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그에게도 자부심은 있었다. 기아차 채권추심원으로 일할 당시, 한 임원이 “차를 10대 파는 것보다 채권 하나를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차를 한 대 팔면 100만원이 남지만, 채권 관리 하나를 잘못하면 자동차 한 대 값인 1천만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조씨는 줄곧 자신이 자동차를 파는 일보다, 신용보증을 한 번 서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11개월짜리 단기계약노동자였고, 계약해지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비정규 노동자였다. 누구나 말은 ‘네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하게 써야 할 텐데, 이렇게 썼다 버렸다 하니…."

조씨는 "이제는 삶이 어렵게 느껴지고 미래가 불투명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들 정민(9)이와 딸 나영(5)이의 아버지였고, 부인 김영희(38)씨의 남편인 가장이었다. 또한 자신에 이어 다음달에는 3명의 신보 채권추심원들이 계약해지를 앞두고 있다. 쉽게 무너질 수 없는 처지다.

“이번엔 싸워야죠.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감에 떨며 살순 없잖아요.” 지난 5월 그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가입한 노동조합. 이제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 된 그 모임. 조씨는 기자일행을 기차역에 내려주고 마지막 희망의 끈인 '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상자기사1>
신용보증기금, 채권추심원 120명 중 48명 계약해지할 듯
노동계 “법망 빠져나가려는 공공기관” 비난
신용보증기금에는 전국적으로 120여명의 비정규직 채권추심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고 성과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지난 5월, 신보 채권추심원 100여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사무금융연맹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조에 가입했다. 지금은 사무연대노조 신용보증기금비정규지부다. 채권추심원들은 "신보가 채권추심 비정규직을 11개월 단위로 고용한 뒤 한 차례만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부에 따르면 신보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은 반복 갱신하지만, 2년 미만인 경우에는 계약해지를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2005년 이후 입사한 비정규직은 120명 중 48명에 달한다. 지난 4일 계약해지당한 조영태씨를 비롯해 다음달에도 3명이 일을 그만두게 될 상황이다.
 

지부는 "신보가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이 2년이 넘을 경우 무기근로자로 간주한다'고 정한 비정규직법을 피하기 위해 편법 조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무금융연맹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7년 6월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의해 9천여개에 달하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무기계약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켰지만, 신용보증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소수의 공공기관만이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주택금융공사에도 지난달 30일까지 16명의 비정규직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11개월짜리 근로계약은 민간업체에선 보통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많이 쓰인다. 1년(12개월)이 넘는 근로계약을 맺을 경우 회사측이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 비정규직법이 아니더라도 1년짜리 근로계약을 반복 갱신할 경우 법원에서 무기계약노동자로 간주하는 사례도 많아 계속고용의무가 발생할 여지도 있다.
 

계약기간을 1개월만 줄여도 이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 11개월짜리 단기계약의 이점이다. 기업은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는지는 몰라도, 노동자 입장에서는 악의적이고 부도덕한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연맹 관계자는 "공공기관이고 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과 주택금융공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계약해지당한 비정규직들이 복직되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까지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상자기사2>
정보파악→분류→탐방조사→설득, “끈기 있어야”
채권추심업은 쉽게 말해 돈을 받아내는 일이라서 특별한 업무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신보 채권추심원 조영태(38)씨는 지난 95년 기아자동차 계열사인 기아산업에서 채권추심업무를 시작한 13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가 밝힌 채권추심 노하우는 이렇다.
 

먼저 채무사건이 주어지면 일단 신보가 보증을 설 때 작성한 문서들부터 살펴본다. 자신의 손에 넘어온 채무건은 거의 대부분 기업이 부도난 상태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정보부터 살펴보는 것이다. 그 다음 채무자의 신용정보와 다른 채무관계를 살펴본다. 여기서 1차 분류가 이뤄진다. 신보 외에도 다른 채무가 많은 경우 일단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업종도 중요하다. 유통서비스업의 경우는 새로 생기는 업체들도 열악한 조건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업체가 부도나면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일단 후순위로 밀린다.
 

제조업체들은 기술력을 갖춘 곳이 많기 때문에 부도가 났더라도 다른 명의의 기업을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업체 사장인 채무자의 나이도 중요하다. 너무 젊으면 재기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너무 많으면 자포자기하는 수가 많다. 40~50대가 적당하다.
 

일단 서류와 신용 등 정보파악을 통한 분류가 끝나면 채권회수가 '가능할 것 같은' 채무자를 찾아 나선다. 제조업체들은 부도가 난 옛 공장 주소지 주변에서 다시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옛 주소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장 이름이나 옛 기업이름과 비슷한 업체를 찾는다. 운이 좋으면 한 번에 찾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집 주소지를 찾아가 기다렸다 만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장전입된 주소지라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아직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경우 채권회수는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빚을 상환할 능력이 있음에도 재산을 이리저리 숨겨가며 갚지 않은 채무자들이 적지 않다. 조씨는 “언론에는 채권추심원들이 채무자를 협박하는 모습이 주로 비춰지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며 “직업과 상관없이 재산을 숨겨놓고 오히려 역정을 내는 채무자들을 보면 '끝까지 증거를 찾아내 돈을 받아야겠다'는 사명감까지 생기곤 한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7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