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기는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는 과도하고 일방적이다. 노조든 사용자든 자신의 입장만을 관철시키려 하면, 실질적인 교섭은 이뤄질 수 없다. 노조는 사용자협의회가 의결절차를 거쳐 부대표로 선임한 노무사를 교섭에 참여시키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는 '불법 노동탄압을 주도한 악질노무사'라는 격한 표현까지 사용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불법 행위가 용인되는 사회가 아니다."

사진=정기훈 기자
정진명(53·경상대병원장)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이하 사용자협의회) 공동대표는 2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줄곧 '교섭의 일반 원칙'을 강조했다. "교섭은 거래"라고도 말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고, 노조와 사용자가 각각의 요구안을 내놓고,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선택한 노무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자, 소모적 논쟁 대신 본격적인 거래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3일 현재까지 보건의료 노사는 10차례의 본교섭과 1차례의 축조교섭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노사가 '주고 받은' 건 없다. 사용자측 노무사의 교섭 참석을 둘러싼 노사 간 거친 언쟁이 매번 교섭에 빠짐 없이 등장했고, 최근엔 '사용자 요구안'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추가됐다.

정진명 공동대표는 "교섭의 일반 원칙에 비춰 볼 때, 사용자가 요구안을 내는 것이 정말로 노동자의 노동3권을 침해하는 것이냐"고 반문한 뒤,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남은 교섭을 원만히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4월 경상대병원장에 취임한 후 곧바로 사용자협의회 공동대표라는 중책을 맡았다.

"협의회에 104개(회비 납부 기준 98개) 병원이 회원사다. 산별교섭의 결과가 회원사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동대표로서 어깨가 무겁다. 노사관계는 일반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임하고 상호간 입장을 존중한다면 못 풀 문제가 어디 있겠나.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실질적인 교섭이 진행되지 못했다. 20년 전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는 병원 사용자들이 번번이 노동법을 어겼다. 노동자들의 거친 저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교섭관행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노동자들이 굳이 언성을 높이 않아도, 사용자들도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

- 매번 교섭에서 공인노무사(사용자협의회 부대표)의 참석 여부를 둘러싼 노사 간 공방이 치열하다.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얘기하자면, 교섭에서 막말하고 고함치는 노조 간부들에게 퇴장을 요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노조측 내부 운영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노조는 해당 노무사가 불법적인 노동탄압을 일삼았다고 주장한다. 요즘 세상에 불법 탄압이 가능한가. 지난 몇 번의 경험(영남대의료원 노사 갈등 등)에 의해 노조가 해당 노무사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노무사 안 빼면 교섭 못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해당 노무사는 사용자협의회 평의회를 거쳐 선임됐다. 지금 와서 해당 노무사를 빼려면 별도의 의결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그렇게까지 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본다."


 
사진=정기훈 기자
 
 

- 사용자협의회가 내놓은 '교섭원칙 요구(안)'과 '산별중앙협약 사용자협의회 요구(안)'을 둘러싸고 노사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용자측이 요구안을 내는 것이 노사교섭에 있어 일반적 관례는 아니다. 노조는 '노동3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노동3권은 건강하게 유지·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사용자가 요구안을 내는 것이 정말로 노동3권 침해하는 것인가. 교섭의 일반원칙은 '거래'다. 얼마에 사고 팔 것인가를 흥정하는 것이다. 관련된 판례를 찾아보니, 법원도 사용자가 요구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조가 노동3권을 이야기하려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노조 태동기에 노조를 보호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임금을 지급키로 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노조 스스로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을 벗어버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올해 교섭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48개 병원 노사가 환자식에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노조는 산별교섭 차원의 공동선언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쇠고기 문제는 임의적 교섭 대상이기 때문에 산별교섭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노조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 여부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노사 공동선언을 하려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것이 '진리'일 때 해야 한다."

- 노조가 올해 임금 10.2% 인상안을 들고 나왔다. 노조는 병원별 편차를 감안, 지부별 보충 교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교섭에서 심민철 사용자협의회 공동대표(영남대의료원장)가 '임금보다는 고용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 직원들의 일자리가 위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산업계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경영이 어렵다고 해도 임금협상은 진행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임금에 대해서는 각 병원 사용자간 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진 상태다. 다만 노조가 얘기하는 '이중 교섭'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 노조의 핵심 요구안 중 하나가 인력충원이다. 인력 문제는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한 병원 사용자들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충분한 인력을 확보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데에는 사용자들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인력충원은 곧 재정 부담이다.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장롱면허'라 불리는 유휴인력을 인력시장으로 유도해내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 지난해 보건 노사의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3분의 1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처우개선에 사용키로 합의했다. 올해 노조는 노-사-정 각각 100억원씩 출연해 ‘산별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노동 양극화를 해소하고 고용안정과 직업훈련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자는 취지다. 올해 또 한 번의 '아름다운 합의'를 기대해도 좋은가.
 
"기금을 조성하자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현실적 조건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소용 없는 것 아닌가. 재정적 부담이 크고, 조성된 기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돈 내는 사람 따로, 돈 쓰는 사람 따로'의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 노조가 오는 23일 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파업 전 각 지부별 필수유지업무 교섭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명백한 것은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도, 이를 이유로 피해를 보는 환자는 없거나 최소화돼야 한다. 병원별 규모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산별노조에서 이 문제를 일괄적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각 병원별 자율교섭이 진행 중이며, 타결 소식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 외에 일반병실에 입원 중인 환자를 돌보는 인원까지 필수유지인력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병원 업무가 전산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전산업도 포함돼야 한다."

-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다.

"영리성이 일부 인정되더라도 의료공공성의 근본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조를 포함한 의료시민단체들은 제주도에 국내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전국의 병원이 영리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 전체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인데, 병원들이 어떻게 국민들을 외면할 수 있나.

개인적 견해를 밝히면, 미국식 의료체계는 반대한다.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국민 의료비 부담이 제일 큰 나라다. 하지만 서구 일부 국가의 '의료사회주의'에도 반대한다. 이 역시 엄청난 비용부담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 보험료율(현 5.08%)을 높이는 데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부담하는 보험료율이 8~9%선까지만 올라가도, 많은 국민이 치료비 걱정을 덜 수 있다."

- 경상대병원장에 취임하며 '세계로 뻗어가는 선도병원'을 장기 비전으로 내세웠다. 이와 함께 노사화합 경영을 강조했다.

"경상대병원이 올해로 개원 21주년을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의 나이다. 시설과 서비스 개선을 위해 임직원들의 뜻을 한데 모으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합적 노사관계가 필수적이다. 투명하게 경영하고, 노사 상생을 위해 상시적으로 대화할 것이다. 종종 노조 사무실에 들러 커피도 얻어 마신다. 노동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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