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도 정부가 수매하잖아요. 석탄도 정부가 많이 사놨더라면 이럴 때 얼마나 좋습니까. 석탄은 곡식처럼 썩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유가 급등으로 석탄 수요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정부가 보유한 석탄 비축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5월 말 현재 정부의 무연탄 비축량은 271만7천여톤에 불과하다.

지난 90년대 초부터 "석탄을 캐 놓을 수 있을 때 비축해 놓으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사람이 있다. 한국노총 전국광산노조연맹의 김동철(57) 위원장이다. 지난달 28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7선에 성공한 김 위원장을 지난 11일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 최근 석탄수요량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정부 비축량이 얼마 안 된다고 하는데.

"90년대부터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 있다. 기회가 될 때 석탄을 비축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유가가 배럴당 20~25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했다. 360여개에 이르던 광업소가 현재 7개로 줄어들었다. 현재는 석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폐광된 곳을 다시 재개발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정부가 비축해 놓은 석탄은 올해면 바닥날 것이다."

- 주로 어디서 석탄을 쓰고 있나.

"석유 대신 연탄 보일러로 교체하는 화훼농가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기름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연탄이 그나마 싸게 공급되니까 화훼농가가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석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화훼농가가 다 죽는다. 연탄을 난방으로 사용하는 절대빈곤층도 35만 가구가 넘는다."

석탄은 무연탄과 유연탄으로 나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무연탄이고, 해외에서는 주로 유연탄을 수입한다. 국내 화력발전소에서는 원래 무연탄을 쓰다가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해외에서 유연탄을 수입해 쓰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의 수요 증가로 수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반가정에서 쓰는 연탄 등은 무연탄으로 만든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전국의 화훼재배 농가는 1만2천859가구에 이른다.

- 탄광 재개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비용이 들어도 개발해야 한다. 석탄산업만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산업이 어디 있나. 석탄은 주로 산간 오지에서 생산한다. 탄광이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석탄 생산을 안하면 지역경제가 폐허가 된다. 탄광을 개발하면 고용도 유지되고 달러도 유출시키지 않을 수 있다. 폐광되면 육체노동을 하던 탄광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해외자원을 개발한다고 수천억씩 쏟아붓고 있다. 그럴 시간에 국내 자원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에는 외국자본이 광물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에 진출하고 있다."

- 최근 중국으로부터 석탄을 수입하기도 여의치 않다고 들었다.

"지금 국내에서 석탄을 캐는 것보다 수입하는 비용이 더 들어간다. 수입을 하려고 하는데 마땅한 수입처가 없다. 중국에서도 자국의 소비량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저질탄을 쓰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 있는 광업소는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광업소 3개와, 민간기업인 경동·태백·태안 등이 운영하는 광업소 4개가 있다. (주)태안광업의 한보광업소도 폐광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7선에 성공했다. 임기 안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만 쉬고 싶었다. 그래도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선택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산노동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석탄을 사용하는 빈곤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광산노동자들의 처우는 다른 산업 종사자에 비해 빈약하지만 여러가지 제도개선의 성과는 있었다.

탄광을 개발하려면 2년 정도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50미터 간격으로 산을 뚫어서 통로를 만들고 또다시 50미터 간격으로 터널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해야하기 때문이다."

김동철 위원장은 그동안 노조가 앞장섰기 때문에 그나마 석탄산업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철 위원장은 누구
김동철 위원장은 지난 72년 대한석탄공사의 장성 탄광광업소에서 광부로 일을 시작했다. 노동조합 활동은 76년부터 시작했다. 82년 광산노련 부위원장을 거쳐 90년부터 현재까지 광산노련 위원장을 맡고 있다. 현재 산업재해보상심의위원회 근로자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진폐심의위윈회 위원, 한국노총 부위원장, 폐광지역개발지원위원회 위원, (주)강원랜드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량, 바닥 드러나는 재고량
국내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무연탄이다. 무연탄으로만 가정과 식당 등에서 쓰는 연탄을 만들 수 있다.
 

무연탄 수요는 연간 300만톤에 이른다. 지난 95년 이후로 계속 줄어들긴 했지만 지난 2006년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국내 무연탄 생산량과 재고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95년 연간 560만톤 정도에 이르던 무연탄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약 290만톤 정도가 생산됐다. 국내 수요량보다 적은 양이었다.<그래프 참조>
 

최근 유럽에서도 치솟는 석유와 가스 가격,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화력발적소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중국도 대규모 석탄기지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석탄산업 육성정책을 고려할 시점이다.

 
'삭발의 추억'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7만여명에 달하던 광산노련 조합원은 최근 4천700여명으로 급감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연맹 산하 노조들의 가장 큰 역할은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360여개에 이르던 광업소가 90년대에 급속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는 공급이 많은 상태에서 업체들이 판매경쟁에 들어가면서 체불임금이 발생했던 것.
 

80년대에 광산노동자는 한 달에 겨우 이틀을 쉴 수 있었다. 당시에는 석탄산업이 공익사업으로 지정돼 파업을 할수도 없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필수유지업무 사업장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파업을 한다해도 탄광노동자들은 장기파업을 할 수 없었다. 갱도 안은 굴을 뚫고 나무로 지탱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기 때문이다. 또 지하수까지 계속 차올라 작업장을 유지 보수하는 데만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99년 한 탄광이 폐광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노조간부 300여명이 집단으로 삭발했다. 심지어 노조 대표자 부인 10여명까지 삭발을 했다. 노조가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자 정부가 두 손을 들고 합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비록 석탄사업의 사양화로 조합원은 급속히 줄었지만, 연맹은 자체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등 재정자립도가 다른 연맹에 비해 상당히 높다.
 

대한석탄공사도 연맹 건물에 세들어 있다. 탄광노동자와 지역주민의 복지사업을 위해 설립한 탄광복지재단도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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