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칙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민영화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노동조합은 사활을 걸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노조 입장에서는 민영화냐 아니냐보다 조합원의 생존권인 고용을 보장받고 조직의 장기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은행과 직원들에게 현재는 격변의 시기다. 노조는 견제와 보완의 역할을 하면서 대안을 마련해나가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김명수(45)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18일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시작단계”라며 “노조는 대안을 찾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거창하게 계획을 발표하고 일정은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게 없다는 것이다. 민영화를 하더라도 세부적인 방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매수자가 없어, 정부의 계획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때문에 노조의 대응도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대해선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조직의 장기적 발전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 남든, 투자은행으로 전환하든 국민과 국민경제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임을 강조했다. 계획된 일정에 맞추려고 산업은행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헤지펀드 등 외국투기자본에 넘기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단기업적을 위해 산업은행 민영화를 졸속으로 성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노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과 일정은 제시했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계획대로 투자은행으로 전환하려 해도 조직구조개편 등 구체적인 사항들에서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결국 매수자가 없어 한낱 꿈에 불과한 내용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지금은 격변의 시기이고, 조직의 장기적인 발전을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고용불안에 떠는 일도 없어야 한다. 노조는 견제와 보완의 역할을 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할 것이다.”

-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지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은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침해하거나 조직의 장기적인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 비전 없는 민영화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현 정부가 단기업적을 위해 산업은행 민영화를 졸속으로 성급하게 추진한다면 노조는 반대투쟁에 나설 것이다. 헐값매각이 되거나 헤지펀드 등 무분별한 해외투기자본에 매각되는 것도 안 된다. 궁극적으로 조직발전을 헤치고, 직원들의 생존권을 앗아갈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가 금융공기업 민영화 반대 투쟁을 하고 있는 만큼, 보조를 맞춰가면서 투쟁을 벌일 것이다. 물론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 그럼에도 지부의 입장이 불명확하다는 지적들이 많다.

“반대냐, 찬성이냐라는 식의 이분법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노조에겐 직원들의 생존권인 고용을 보장받고 조직의 장기적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일을 풀 것이다. 조직의 안정과 미래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현 단계에서 전면적인 반대투쟁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단계적으로 경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민영화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하면서 방향성과 주된 내용에 대해 노조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나갈 것이다. 우선은 신임총재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틀에서 새롭게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최근 민유성 새 총재 취임반대 투쟁을 벌였다가 접었는데.

“민 총재에게 세 가지 사항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현 직원들의 고용안정은 반드시 보장하겠다는 것이 첫 번째 약속이다. 민영화가 되더라도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조직의 양적·질적인 확대가 불가피하다. 구조조정보다는 오히려 인원확충이 필요한 시기다.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떨쳐내고 있지 못하다. 민 총재는 내부인력을 육성해 고용을 보장하고 산업은행을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노사공동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민영화 등 은행발전과 경영에 관한 사항들을 노조와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직원에게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도록 임금·복지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취임반대투쟁을 철회했다.”

- 약속이 제대로 이행될 것으로 보는가.

“민 총재를 막상 만나보니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전문경영인 같은 인상을 받았다. 과거 산업은행 총재는 직원들 위에 군림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권위주의적인 느낌이 많았다. 첫 만남에서는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이번 새 총재 선임은 처음으로 전문경영인을 최고경영진(CEO)으로 선출한 것이다. 경력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능력에서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산업은행을 발전시키겠다는 열정만큼은 존중해줄만 했다. 때문에 약속도 제대로 이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다 해도, 지부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다.

“지부는 현재 은행발전위원회(가칭)를 자체적으로 구성해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노동조합의 입장과 대안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지부 간부와 직급별 대표들을 선발해서 은발위에 참여시키고 있다. 전체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거기에서 대안을 찾을 것이다. 노사 공동으로 구성한 태스크포스팀에서 민영화나 산업은행의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의 전환, 자회사와의 시너지 창출 등 조직의 비전과 직결된 문제에 관해서는 은행측과 협의해 나갈 것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물론 산업은행 직원들뿐만 아니라 국민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 민영화가 진행되면 구조조정이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투자은행 업무 같은 경우 전문가가 필요한 만큼 외부인력을 영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의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이점은 파생상품 분야나 리스크관리 분야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현재도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직원들의 교육과 연수는 필수적인 일이다. 다만 조직의 안정성을 헤칠 정도로 전 영역에서 외부전문가 수혈을 시도하는 것은 반대한다. 외부 전문가 유입의 폭을 넓히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노사가 긴밀히 협의해야 할 부분이다.”

- 민영화에 찬성하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이 상당수준의 이익을 거두고 정부에 엄청난 금액을 배당했음에도 직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거의 없었던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또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인해 정부 감사나 국회의 국정감사 등 견제와 간섭도 심하다. 특정사업에서는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직원들의 불만이 높고, 이번 기회에 자율경영을 쟁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의견들이 민영화 찬성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 산업은행이 민영화를 통해 투자은행이 된다 하더라고,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들도 있다.

“국내 금융회사에서 투자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하고 관련 노하우를 쌓은 곳은 산업은행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의 실력도 뛰어나고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쌓았다. 최근 산업은행이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자금은 전체 조달금액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의 자금을 우리 스스로 조달하면서 투자나 대출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 최근 3년 간 순이익이 2조원을 넘었고, 정부에게 배당한 금액만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경쟁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산업은행의 국책은행으로서의 운명을 다한 것인지,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위기가 왔을 때 안전판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 직원들의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는 것 같다. 노조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과 매달 두 차례에 걸쳐 정례적인 회동을 하기로 했다. 노조는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노사가 동반자로 한배를 탔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노조도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주체는 바로 우리지, 정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6월 19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