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승리도 잠시, 이판규(45) 건강보험공단 직장노조 위원장은 지난 9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5월 위원장선거에서 성광 전 위원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달 27일 취임했다. 임기 2년 동안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당장 4대 보험 징수통합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건강보험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 또 공공기관 구조개편 문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지난 집행부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유임된 집행부가 많아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흡한 부분은 보완하되 큰 틀에서는 같이 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규업무 개발·인원재배치로 돌파

4대 보험 징수통합과 관련해 한나라당과 정부는 건강보험공단 중심으로 징수업무를 통합하기로 합의했다. 노조의 요구가 관철된 셈이다. 그렇지만 노조 간 이견 조율과 입법 과정이 남아있다. 앞으로 더 험난한 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큰 틀에서 근로복지공단노조, 민주노총 공공노조 사회보험지부와 사회연대연금지부 등 해당 노조 간 합의는 이뤄졌지만 세부사항과 관련해서는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하는 게 맞습니다. 지사가 가장 많고, 민원과의 접촉도 가장 빈번한 곳이 바로 건강보험공단이에요. 징수업무는 민원처리가 주 업무죠. 30년 간 노하우를 발휘할 경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민감한 인원 재배치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노조와 조합원들은 통합으로 인한 구조조정과 전환 배치된 직원에 대한 차별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신규업무 개발과 재배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많은 인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노인요양보험이 시행됐지만, 투입인원이 턱없이 모자라 직원들의 업무강도가 너무 높다는 게 이 위원장의 얘기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온전히 시행하려면 2천500명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건강보험공단 직원 1천200명이 전직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단업무도 차질을 빚고 있고, 신규업무 진척도 더디다는 것이다.

“통합으로 인한 구조조정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징수업무는 단순업무가 아닙니다. 악성민원이 가장 많은 분야죠.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업무이기도 하고 관록이 필요합니다. 4대 보험 징수업무를 같이 할 경우 업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재배치 인원 불이익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서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고 말했다. 징수통합과 관련해 진행되는 노정협의와 별도로 노조 간 실무협의를 통해 서로간 이해를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임금저하는 없어야 하고 차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활 걸고 ‘건강보험 민영화’ 막을 것

이 위원장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또 한가지는 건강보험 민영화다. 공단의 존립과 나아가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고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건강보험 민영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환자들은 본인부담 감소로 과잉진료를 받게 될 것이고, 건강보험에서 불필요한 급여가 지출될 수 있다. 건강보험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되면 보장성이 떨어지게 되고 건강보험은 반쪽짜리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저렴한 보험료로 많은 혜택을 받는 나라는 없다”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공보험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료체계가 무너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이명박 정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의료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성격을 감안할 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라며 “노조의 사활을 걸고 건강보험 민영화를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인원충원도 시급하다

이 외에도 공단 내부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당장 인력충원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사회보험노조와의 통합도 준비해야 한다.

“창립기념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각 지사들은 민원인 전화를 받느라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 통합 후 7천여명이나 인원이 줄었어요. 업무는 늘고 서비스도 높아졌는데, 정작 노동조건은 많이 열악해졌죠. 공단은 맹목적으로 업무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정부와 공단에 필요한 인원충원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조합원이 만족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조 통합과 관련해서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다른 길을 달려왔다. 상급단체도 다르고,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이견을 생긴 골이 너무 깊다. 심지어 노조형태도 다르다. 사회보험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공공노조에 가입돼 있다. 직장노조는 기업별노조로 한국노총 공공연맹에 소속돼 있다.

이 위원장은 “제반 조건이 성숙돼야 통합을 고려할 수 있다”며 “조합원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통합을 강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언젠가는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상생을 위해서는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징수통합문제에 대한 대응이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과의 약속, 철저히 지킨다

이 위원장은 조합원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서울지역본부장 출마 당시 단임을 약속했다. 그리고 2005년 미련 없이 현장으로 돌아갔다. 2년 간 현장에서 근무하며 조합원들과 호흡을 함께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위원장에 당선됐다.

노조 한 간부는 “노조활동을 활발히 해 조합원들에게 인지도가 높았고 출마를 결심했다면 충분히 재선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사실 재선을 고민 안했다면 거짓말”이라며 “미련이 있었지만 조합원과의 약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제 2년 동안 쉼없이 달려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현장순회부터 시작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해결책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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