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심각한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세밀한 부분까지 배려하지 못했다. 기업은행 민영화 계획도 여러 차례 수정되면서 불신을 키웠다. 민영화 이후 중소기업 자금시장은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면밀한 검토를 통해 민영화 여부를 결정하고 후속대책까지 내놓아야 최소한 고려라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현 정부의 기업은행 민영화 계획은 47년 동안 쌓은 노하우마저도 없애버리는 정책일 뿐이다.”

김형중(45)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14일 “정부의 일방적인 민영화 정책이 기업은행을 도태시키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 자금시장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책은행으로서 기업은행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운데 중소기업 자금시장에 대한 대책 없이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그 피해가 중소기업에 돌아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민영화에 대한 내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기업은행이 독자생존 방안을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금융시장에서 다른 기관에 인수합병될 매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인식도 깔려 있다. 김 위원장은 “기업은행 민영화 추진은 다른 기관과의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기업은행 민영화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그는 “기업은행의 강점은 지난 47년 동안 쌓아온 중소기업 대출·심사·지원 기능”이라며 “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민영화 방안이 마련돼야 검토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기업은행의 생존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국가정책적 목표에도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2011년까지 기업은행 보유지분 67% 중 소수지분 15.7%를 팔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단계를 거쳐 2011년 이후 나머지 51%(경영권)의 지분을 팔아 기업은행을 완전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 정부가 기업은행 민영화를 공언하고 있는데.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면 민영화든, 독자생존이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 역할이 남아 있다. 설사 민영화되더라도 기업은행이 했던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노하우는 살려야 한다. 기업은행이 47년 동안 쌓아온 무형의 자산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방식은 중소기업 자금시장에 대한 별다른 대책도 없고 그동안 쌓아온 자산도 버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영화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분부터 팔겠다는 것은 다른 기관과 인수합병을 추진하겠다는 논리밖에 안 된다. 기업은행의 가장 큰 자산인 중소기업 대출·심사·지원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민영화가 추진돼야 한다.”

- 민영화에 찬성한다는 것인가.

“현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민간이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시장화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민영화 논리인데 그건 틀렸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 대출에 시중은행이 뛰어들고 있지만, 정부가 육성해야 할 중소기업은 시중은행이 대출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다른 부분도 있다. 시중은행들은 안정성과 수익성이 보장돼야 대출을 한다. 우리는 정부 정책에 따라 우량이든 비우량이든 자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것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소기업 연체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 자금시장이 경색돼 있는 것이다. 수혈이 필요한 시기다. 중소기업들이 어려울 때 시중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몸을 사린다. 반대로 기업은행은 최근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1조원을 풀기로 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수익성과 효율성의 잣대만 들이댄다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중소기업 대부분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설령 기업은행이 민영화되더라도 중소기업 지원 역할을 살려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기업은행 업무가 시중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민영화 논리 중 하나다.
 
“기업은행은 공적기능을 수행하긴 하지만 이익을 내고 있고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 중소기업 대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계금융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시중은행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크다. 우리는 국책은행으로 커왔고 중소기업 대출을 핵심업무로 하고 있다.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기업은행의 가계금융은 하위권이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 민영화하면 시중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인 경쟁력이 떨어진다.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민영화에 쉽게 찬성할 수 없는 이유는 중소기업 지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이 민영화된다면 수익성과 안정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중기업들이야 시중은행 대출도 받겠지만, 소기업들은 제도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힐 수도 있다.”

- 기업은행이 어떻게 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정부가 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부터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이유가 명확해야 목적도 분명해진다. 그렇지만 정부는 일반 공기업 민영화를 전제로 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영화 이후 중소기업 자금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를 검토해야 한다. 기업은행 민영화 후 중소기업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 그 책임은 결국 정부가 져야 할 몫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인위적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한다든가 하는 정책을 펴지 않아야 한다. 민영화는 독자생존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중소기업 지원정책도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업은행지부는 지난달 30일부터 김준호 신임 감사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김 감사가 고려대와 영남지역 출신으로 이른바 '고소영'에 해당하는 낙하산 인사라는 주장이다. 특히 지부는 김 감사가 기업은행을 인수하려던 하나은행의 부행장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은행 간 인수합병을 위해 김 감사를 기업은행에 파견한 것 아니냐는 정서가 내부에 많다는 설명이다.

- 김준호 신임감사가 임명된 이후 지부가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데.

“정부는 임기가 보장된 감사를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잘랐다. 그렇다면 후임 인사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 전임 감사의 사표가 수리될 때 우리는 인사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인사기준이 바로 서야 잡음을 줄일 수 있다. 금융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김 감사 임명 당시의 회의록을 공개하라고 했다. 말로만 공정하다 투명하다 하지 말고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고 김준호씨를 감사로 임명했다. 우리는 이번 인사가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다.”

- 김준호 감사가 낙하산 인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김 감사는 ‘고소영’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고 현 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많다는 풍문도 떠돌고 있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하는데, 낙하산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감사는 기업은행을 인수하려 했던 하나은행의 부행장이었다. 하나은행의 기업은행 인수를 돕기 위해 파견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직원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감사라는 자리는 직원들의 잘못을 묻고 벌을 줄 수도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도덕적 시비에서 자유로워야만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직원들을 통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 그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를 하고 벌을 줄 것이며 그것을 따르는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면 물러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지부가 생각하고 있는 해결방안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김 감사가 낙하산 인사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고 기업은행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이든지 아니면 자진사퇴하라는 것이다. 김 감사가 이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계속해서 출근저지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적당히 타협해서 들여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부 역시 이번 투쟁에 당당하기 때문에 물러설 이유가 없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15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