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라기보다는 체력장에 가까웠다. "도대체 같은 골목을 몇 바퀴씩 도는 거야"라는 불평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시원한 것 한잔 드시고 가세요"라는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망우초등학교 앞 분식점 아주머니가 수고한다며 건넨 공짜 팝콘의 맛도 일품이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1일 서울중랑우체국 집배원 김종현(32·기능직 9급)씨의 CT100 오토바이 뒤를 '진짜로' 뛰어서 쫓았다.

"안전! 안전! 망우! 망우! 파이팅!"

오전 8시30분 서울 중랑우체국 3층 우편물류과. '출국'을 앞둔 집배원들이 팀별로 오늘 하루의 안녕을 비는 구호를 외친다. 오늘의 주인공 김종현씨는 입사 6년차의 신세대 집배원이다. 김씨가 속한 '비둘기팀'은 중랑구 망우동 일원의 우편물 배달을 책임지고 있다.

김씨의 하루는 오전 7시 출근과 함께 시작된다. 우편집중국으로부터 매일 아침 배달돼 오는 등기와 소포를 최종 배달지 주소를 확인하며 분류하는 것이 첫 번째 업무. 소포와 등기를 주로 다루는 '특수계'가 따로 있지만 일손이 달려 집배원들이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이때 등기와 소포 겉면에 찍힌 바코드를 스캐닝 기계로 읽으면 컴퓨터에 각 우편물의 정보가 등록된다. 동시에 누구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고 곧 배달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소포나 등기 주인에게 발송된다. 우편물 분류작업이 끝나면 김씨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짐을 싣는다. 우체국 1층 영업과에 들러 모닝커피 한잔도 잊지 않는다. 오전 9시. 자 이제 출동이다. CT100 오토바이가 '부르릉' 경쾌한 시동음을 낸다.


집집마다 배달, 등기는 주민과 1:1 작업

중랑구는 서울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다. 42만7천923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이곳은 산동네가 많고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다. 김씨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지역은 망우본동. 근심을 잊은 동네 망우(忘憂)동에서 그는 매일 80~100통의 등기와 2천300~2천500통의 편지, 20개 남짓한 택배를 배달한다. 오토바이에 채 싣지 못하는 택배는 우체국차량을 이용해 미리 '중간수취함'에 갖다 놓았다가 그 근처를 지날 때 찾아서 배달한다.

"안녕하세요~."

김씨가 인사를 건네자 주민들도 아는 체를 한다. 김씨 뒤에 따라붙은 취재 카메라가 신기한 모양. 이내 삼성부동산 주인아저씨가 말을 건다. "뭐하는 거예요?" 이어지는 김씨의 대답. "잘생겨서 사진 찍으러 왔대요."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동네 할머니가 말을 보탠다. "그럼 잘생겼지. 미남이야 미남. 인사도 얼마나 잘하는데."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CT100 오토바이가 멈춰 선다. 대부분의 우편물은 우편수취함에 넣지만 우편수취함이 없는 집은 현관문을 열어 우편물을 넣어 둔다. 우편물이 분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록우편물인 등기는 일반우편물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등기 수취인의 서명을 반드시 받아야 하고, 수취인이 집에 없으면 '내일 몇 시에 오겠다'는 내용의 '도착통지서'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달은 서울시 교육감선거 공보물과 재산세 통지서가 배달되는 달이다. 모든 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재산세 통지서의 경우 고액 납부자에게는 등기로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이 배가된다.

"배달물 대부분이 통지서예요. 연애편지는 2천통 중 1통이 있을까말까 하고요. 손으로 쓴 편지는 대개 군인들이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거예요. 옆 동네 배달할 때 수현미용실집 딸내미에게 종종 연애편지가 왔어요. 그런 날은 우편수취함에 넣지 않고 직접 아가씨한테 편지를 전해줍니다. '애인한테 편지 왔네요' 하고 아는 척을 하면서요. 요즘도 오가다 그 아가씨랑 마주치곤 하는데 요새는 왜 연애편지 배달 안 해주냐고 항의(?) 하더라고요."

"연애편지는 반갑죠. 일부러 직접 전달해요"

오전 10시 봉화중학교 행정실. 김씨를 본 이 학교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말을 꺼낸다. "어머 아저씨 오늘은 모자 쓰고 오셨네요? 아아 사진에 잘 나오려고 그려셨구나." 그러는 사이 김씨는 행정실 냉장고 문을 열어 자연스런 동작으로 냉커피 석 잔을 만들어낸다.

"이 동네에서만 6년 간 배달을 하다보니 냉장고 문 열어 물 한잔 꺼내 마실 정도의 뻔뻔함은 생기더라고요. 처음 배달할 때는 어색했죠. 그래서 일부러 배달할 때 모자를 잘 안써요. 주민들에게 얼굴을 알리려고요. 근데 이거 규정 위반인데, 기사엔 안 쓰실 거죠? 하하."

김씨가 모자를 즐겨 쓰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요즘 집배원들은 예전과 달리 우체국보험 영업활동까지 겸하고 있다. 우체국은 일반 관공서와 달리 '스스로 벌어 스스로 쓰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집배원들의 월급은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우편요금과 우체국보험료·예금수수료 등에서 지급된다.

김씨는 "요즘 집배원들은 각자 명함을 새겨서 들고 다닌다"며 "평소 주민들에게 얼굴을 알려 놓으면, 주민들이 명함을 보고 연락을 해온다"고 귀띔했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이다.

"우체국보험이 다른 보험보다 좋은가요"라고 묻자, 김씨는 "계약서 펴놓고 얘기할까요"라고 답해 일순간 기자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보험까지 겸업, "계약서 펴놓고 얘기할까요"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과정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이날 역시 섭씨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계속됐다. 지나가던 요구르트 배달 아주머니가 물병에 담긴 보리차 한잔을 건넨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요. 여름엔 이렇게 물 한잔 얻어 마시고, 겨울에는 옷을 여러 벌 껴입는 식으로 날씨를 이겨내죠. 정작 힘든 건 비오는 날이에요. 우편물이 젖으면 안되니까 아무래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그런 날은 길바닥이 미끄러워서 오토바이 사고위험도 높아요."

오전 11시 ○○약국. 약국 주인은 택배를 많이 보내는 고객 중 한 명이다. 지방으로 약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많다. 약국 주인이 전날 우체국으로 전화해 '내일 몇 시에 와 달라'고 접수를 하면, 다음날 오전 김씨가 약국을 찾아가 주문 사실을 재확인한다. 주문이 확인되면 김씨는 그날 오후 우체국으로 들어가기 전 약국에 들러 물건을 받아간다. 이같은 과정을 '픽업'이라고 부른다. 픽업이 늘수록 집배원들의 업무시간도 늘어난다.

예전엔 소형화물을 줄여 '소포'라고 부르던 것을 최근엔 '택배'라는 말로 통칭한다. 소포는 제한용량이 5㎏이었지만, 택배의 제한용량은 30㎏이다.<상자기사1 참조>

택배 물량이 늘면서 허리통증 등을 호소하는 집배원이 부쩍 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체국은 택배배달 물량 중 일부를 민간기업에 위탁하고 있다. 택배위탁 직원들은 매일 아침 우체국으로 출근, 우체국차량을 이용해 택배를 배달한다. 김씨와 같은 동네에서 택배배달을 하고 있는 임주순(62)씨는 "30㎏에 달하는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이 여간 고된 게 아니다"라며 "우체국 직원들은 공무원신분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근무여건이 나은 편"이라고 부러워했다.

택배 증가, 업무도 증가

드디어 점심시간. 오전 내내 CT100 오토바이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김씨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를 본 식당 주인이 "식사하러 왔어요?"라며 반색을 한다.

김씨는 이날 다른날에 비해 매우 이른 시간에 점심식사를 했다. 평상시에는 배달업무를 마치고 오후 2시30분께 우체국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다른 집배원들도 마찬가지. 이른 출근시간 때문에 아침밥을 거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배원들이 이 시간에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한다. 밥을 제때 챙겨 먹으면 그만큼 배달시간이 늦어진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CT100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 김씨를 뒤로하고, 기자는 중랑우체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시간 우체국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상자기사4 참조>

오후 1시20분 중랑우체국 우편물류과. 후텁지근한 사무실 안에서 직원들이 우편물 분류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때 작은 소동이 일었다. 서울시는 최근 각 관공서에 '실내온도가 27도 이상일 때 에어컨을 가동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내려보냈다. 고유가 여파 때문이다.

권유선(49) 집배주임이 목소리를 높인다. "직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해야 민원인들에 대한 질 높은 서비스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때 민원실 전화벨이 울린다. 권 주임이 잽싸게 수화기를 들었다. "행복가득 중랑우체국입니다."

최근 들어 신종 사기수법인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를 신고하는 민원전화가 급증했다. 권 주임은 "우체국에서는 택배나 소포가 왔다고 전화를 하지, 우편물을 반송한다는 내용의 전화를 별도로 걸지는 않는다"며 "민원인들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물량과의 싸움, 우편물 분류

오후 2시. 홈쇼핑 전단지·각종 고지서·주간지…. 우편원과 이들을 지원하는 공익요원, 일용·파트직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엄청난 양의 우편물을 대형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는다. 이날 분류된 우편물 중 단연 압권은 7만통에 이르는 재산세 고지서.

원래 우편분류는 정규직 우편원의 전담 업무다. 그러나 매일매일 쏟아지는 우편물을 6명의 우편원이 전부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중랑우체국은 비정규직인 일용·파트직원을 별도로 채용하고 있다. 봉사 점수를 받기 위해 우체국을 찾는 중·고등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길도 우편분류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후 4시. 배달업무를 끝낸 김씨가 우체국으로 돌아왔다. 우편원과 일용·파트직원들이 1차로 분류해 놓은 우편물을 재분류하기 시작한다. 보통 일반우편물은 우편집중국에서 초벌 분류작업을 거쳐 우체국으로 보내진다. 그것을 우편원 등이 동별·집배원별로 '대구분'을 하고, 집배원들이 이것을 다시 번지별로 '소구분'한다. 책꽂이처럼 생긴 구분칸에 소구분된 우편물들은 배달될 순서대로 재구분된다.

우편물 양에 따라 구분시간이 달라지지만 평균적으로 짧게는 4시간, 길게는 7시간이 걸린다. 우체국 직원들이 혀를 내두르는 날도 있다. 매달 중순 휴대전화 요금고지서가 들어오는 날이다. 이런 날은 분류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김씨는 매일 밤 10~11시 사이에 퇴근한다. 이같은 고된 일상 속에서도 김씨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편물 배달원이 아닌 행복 배달원이 되고 싶다"는 그다.

언젠가 그의 관할구역에 있는 한 중소기업이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법원 등기를 배달하며 업체 사장에게 김씨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회사가 안 좋아졌나봐요. 그래도 힘내세요." 그랬더니 사장이 "열심히 살게요"라며 웃어 보이더란다. 김씨는 이럴 때 집배원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언제까지나 '희망의 전령사'로 불리길

정권이 바뀐 뒤 우체국은 뒤숭숭하다. 우체국 공사화(민영화) 얘기가 다시 나왔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체국은 한차례씩 구조조정 홍역을 앓는다. 매사에 긍정적인 김씨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집배원들이 반대하면 뭐합니까. 윗분들이 결정하고 집행하면 끝인데요. 일단 지켜보자 하는 심정입니다."

'힘든 점은 뭐냐'는 질문에 김씨는 "매일 밤늦게까지 초과근무를 하는데 시간외수당은 오후 8시까지밖에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점이 개선되면 좋겠지만, 그러면 우체국 사정이 어려워지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한때는 '사랑과 희망의 전령사'로 불리기도 했던 집배원. "이제는 고지서 배달원이 다 됐다"며 집배원 스스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있어 오늘도 우리는 세상과 소통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손으로 쓴 연애편지를 받아보는 애틋함은 사라지고 있지만 '오배달 0%'에 도전하는 집배원들의 땀방울은 여전하다.

오늘부터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CT100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누비는 집배원들에게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물 한잔 건네는 것 말이다.
 
<상자기사1> 집배인생 30년 이종기 집배실장이 말하는 '우체국 공사화'
"보편적 우편서비스 약화 안돼"
건강악화를 이유로 명예퇴직한 한 집배원은 최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 정년연장 소식이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나이 60세에 30㎏짜리 택배를 실어 나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는 또 "툭하면 집배원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서는 정부도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청난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근무하고 있는 집배원들의 근무의욕을 떨어뜨리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다. 이 집배원은 30여년을 근무했지만 오토바이 사고 후유증이 악화돼 50이 안 된 나이에 스스로 배달 일을 그만뒀다.
이종기 중랑우체국 집배실장(49·기능직 5급)도 올해로 입사 30년째다. 스무살에 입사해 20년을 집배원으로 일했고, 현재는 집배원들의 중간관리자인 집배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5급으로 승진하기 전 체신노조 지부장도 거쳤다.
 

"우정사업본부 직원이 4만여명이에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 명단에 올라가죠. 살아남기 위해 수익사업을 시작했는데, 택배와 우체국보험 등이 그것입니다. 우편업무는 노동집약적 산업이에요. 인건비 비중이 높죠. 정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우리가 벌어 우리가 쓰기 위해 수익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급증하는 택배업무만 보더라도 집배원의 업무하중을 가늠할 수 있다. 체신노조는 인력충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공무원을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기 팽배해 정부에 인력충원을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또 공무원인 집배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합니다. 앞으로 인력충원은 점점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대신 비정규직이 늘겠죠. 효율성의 잣대로 보면. 나 같은 사람 자르고 비정규직 여럿 쓰는 게 나을 수도 있죠. 그러나 고용의 질이 낮아지면 서비스의 질도 낮아진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실장은 우체국 공사화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할 말이 없지 않지만, 현재의 위치에서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그다. 이 실장은 다만 "보편적 우편서비스가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30년 집배인생을 살아온 이 실장은 아기자기한 경험담도 풀어놓았다. 30년 전 그의 우체가방 속에는 연애편지, 부모님 전상서, 중동으로 돈벌러간 남편이 한국의 아내에게 보내온 편지 등 온통 반가운 소식들로 가득 했다고.
 

그는 "전화도 카드도 없던 시절, 좋은 소식만 싣고 다니는 집배원은 주민들로부터 대접받는 직업이었다"며 "집배원은 곧 소식의 전령사라는 이미지가 퇴색하고, 화물운반종사자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상자기사2> 집배원이 "죽이겠다"고 말해도 놀라지 마세요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집배원들도 즐겨 쓰는 은어가 있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치다'. '배달한다'는 의미다. '편지를 치다'는 식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편지만 잘 친다고 좋은 집배원이 아니다. 서비스를 잘해야 한다'는 식으로 쓰인다.
 

'꺾다'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엄청난 물량의 휴대요금 고지서가 우체국에 도착하는 날이면, 집배원들은 해당 고지서를 잘 분류해 놓았다가 이틀 정도에 나눠서 '친다'. 이처럼 양이 많은 우편물을 순차적으로 배달하는 행위를 '꺾는다'라고 부른다.
 

은어는 아니지만 우체국에서 출근·퇴근이라는 말을 대신해 사용하는 '출국·귀국'이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죽인다'는 표현이다. 집배원들은 주소불명 또는 수취인불명 등의 사유로 우편물을 '반송처리'하는 행위를 '죽인다'고 말한다. 중랑우체국 집배원이 직접 겪은 일 중 이런 일도 있었다.
 

채권·채무관련 법원 송달서를 배달해야 하는데 수취인의 어머니가 이를 막고 나섰다. 혹여 자식이 잘못될까봐 "그런 사람 여기 안 산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때 집배원이 이렇게 말했다.
 

"죽여버려야겠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아주머니는 "집배원이 우리 아들을 죽이려 한다"며 우체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집배원 그들만의 언어가 빚어낸 웃지못할 에피소드다.

 
<상자기사3> 교통사고·과로사에 노출된 집배원
우편물을 나르던 집배원이 돌연사했다는 언론보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체신노조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9명의 체신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중 공무상재해로 인정돼 순직처리된 인원은 모두 10명. 7명이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 등 안전사고로 숨졌고, 나머지 3명은 급성심근경색·과로사·뇌출혈 등의 사유로 숨졌다.
 

지난 96년부터 12년 간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325명. 매년 평균 27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셈인데, 사망자의 약 80% 정도가 집배원이다.
 

집배원은 근속연수와 무관하게 각종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427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는데, 전년 대비 88건(26%) 늘어난 것이다. 사고비율이 두 자릿수로 증가한 것과 달리 같은 기간 종사자수는 1.1%, 차량(이륜차 포함) 대수는 2.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인력부족이 안전사고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충돌·미끄러짐·뒤집힘(전복)·넘어짐·떨어짐(낙상) 등으로 나타났다.
 

숙련도가 높은 장기근속자의 사고 경험률이 높다는 점도 눈에 띈다. 6년 이상 근무자의 사고 경험률은 55.1%로, 5년 이하 근무자(44.9%)보다 높았다. 숙련도와 상관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체신노동자의 평균 재해율(0.82%)은 산재 평균 재해율(0.72%)보다 높았다.

 
<상자기사4> 우체국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매일노동뉴스>가 찾은 서울중랑우체국은 서울 시내 우체국 중 규모가 제일 작은 곳이다. 이곳의 집배원수는 70명. 서울 시내 최대 우체국인 강남우체국의 집배원수는 270여명이다. 우체국에는 우편물을 직접 배달하는 집배원 외에도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일반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행정직, 창구업무를 담당하는 계리원, 우편물을 분류하는 우편원, 집배원 등은 정규직 직원이다. 계리원은 집배원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 대부분 여성이며 일반 은행창구업무와 비슷한 일을 한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40대 중반. 보험 등 영업량이 할당되다보니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원이 적지 않다.
 

우편원의 업무를 지원하는 일용·파트직, 위탁택배원, 비정규직 집배원인 상시집배원 등은 비정규직 직원이다. 상시집배원은 2~3년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뒤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정식 집배원이 된다. 하는 일은 정규직과 동일하나 정규직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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