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금융·공공부문 등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다. 정부는 2월말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정부가 다소 소홀했던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구조조정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결국 ‘노동’의 문제로 귀결된다. 노조 입장에서 보면 구조조정은 바로 인원 정리를 의미하고, 그것은 노조원들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못한 실정에서, 누구도 노동자에게 그냥 물러나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노동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절박하고 무리한 요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작년 후반부터 잇따른 ‘위기론’을 지연시키며 연명해 오고 있는 형편이다. 11월 위기설이 1월 위기설로, 다시 2월 위기설, 3월 위기설로…. 보트에 탄 인원이 넘쳐 도저히 보트가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누군가가 내리지 않는 한 모두가 다 죽어야 할 형편이라면, 다수가 살기 위해 누군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인원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일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할 몫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그만한 힘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권 출범 초기의 의욕도, IMF사태 초반의 전국민적 위기의식도 이제는 엷어졌다.

더구나 현정부는 노동자들의 표를 주요 기반으로 하여 탄생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노동자들에게 해야 할 말을 과감히 하지 못하며 많은 시간을 허비해 왔다. 게다가 여당도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해,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현실적 힘을 결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적극 나서고 있지도 않다. 우리 여야는 아직까지 이런 국가적 과제에 대해서조차, 상대의 손실이 나의 이득이라는 식의 ‘제로섬(zero-sum) 게임’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수적이고 그걸 위해서는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 도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서의 여야 합의 유무가 노동문제 해결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상균 국제경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

고려대 서진영 교수는 “지금 국가적 과제들을 추진해 나가는 데는 여야 합의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돼야 정책추진에 따른 반발 등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야당의 역할(한나라당 김만제 의원)이란 주문도 나온다. 야당이 사회적 합의로부터 이탈한 반발세력을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력 민영화도 여야가 정부 원안대로 관련법을 통과시켜주자 야당에 기대를 걸었던 노조가 이를 ‘국민적 총의’로 받아들이면서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야당의 협조’에는 ‘여권의 유연한 자세’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연세대 정갑영 교수는 “먼저 여당이 열린 마음으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정쟁을 말라는 요구는 무리지만, 상황을 잘 감안해서 피할 때는 피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경제살리기가 정말 중요하다면 정부·여당은 야당과의 정쟁 중단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야당에 대한 국정협력을 요청하기 전에 영국 정부가 야당의 예비내각에 국정정보를 100% 제공하는 것처럼 우리도 야당에 충분한 국정브리핑을 해주는 것이 협조체제 구축에 필수요건이란 지적도 나온다. 미국 행정부가 중요정책을 추진할 때는 대통령부터 나서서 국회의원 및 이해 당사자들과 만나 설득하고 협조 요청을 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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